6살 아들이 쓴 ‘나의 역사’

by 도희

“어! 이게 여기 있었네,”

첫번째 사진을 본 순간 빵 터지는 웃음을 참기 어렵다.


아들의 어릴 적 흔적들을 발견하고는 반가움에 쓰다듬고 냄새도 맡아본다.

6살에 제 손으로 만든 앨범과 초등학교 일기장 몇 권이 서랍 속에 있었다.

보험 약관을 찾기 위해 책장과 서랍을 뒤지다가 눈에 띈 아들의 일기장.

이사 와서 짐 정리할 때 대충 넣어두면서 다음에 읽어 봐야지 하고는 이내 잊고 있었다.

20대 중반이 넘은 아들의 초등학교적 일기장을 무슨 보물 찾기에서 보물이 숨겨진 쪽지라도 주운 것 마냥 신이 나서 내방으로 들고 왔다. 미니 사진첩 하나와 1학년과 3학년 때 쓴 것이 각 한 권, 4학년 때 일기장 1권, 나머지 5권이 5학년 때 쓴 것이다. 나머지는 이사 다니면서 없어졌나 본데 못내 아쉽다.

유치원생이 쓴 ‘나의 역사’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아이가 6살에 유치원에서 만들었던 미니 앨범이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이 예쁘다’는 말이 딱 맞다. 사진 속의 아들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요즘 아이들은 걷기도, 말도 뭐든 빠르긴 하더라만 내 아들도 6살에 한글을 이 정도로 쓸 수 있었구나 싶으니 참 대견하다. 물론 선생님의 엄청난 노력과 정성 덕분이겠지만.

잊고 있었다. 아이의 어여뻤던 모습들을. 세상의 티끌 하나 묻지 않은 곱고 순수한 마음과 가슴 저 편에 간직되어 왔던 여러 추억의 조각들이 사진 몇 장으로 또렷하게 다가온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언제, 어디서 찍었는지 이렇게 생생하게 떠 오르다니 신기하다.

기억 저편에 묻혀 있던 순간들이 사진을 통해 살아나는 순간 아이는 2살, 4살, 6살이 되고 나는 30대로 돌아간다.




첫 번째 사진은 3개월 때의 아가로 동글동글, 모난 데가 없다. 야윈 모습이 아니라 다행이다.

왕초보 엄마는 책으로 아이를 키우는 바보짓을 하느라 시간 맞춰 정량의 분유만을 고집했고, 날 때부터 먹성이 좋았던 아들은 늘 배가 고파 울어댔다. 그러더니 기어 다니면서부터 스스로 이것저것 알아서 챙겨 먹었다.

각 사진마다 제법 그럴싸한 설명을 붙여 놓았다. 6살 사진에 덧붙여진 글이 눈에 들어온다. 뭐지, 이 결의에 찬 눈빛과 예사롭지 않은 문구는.

‘나는 꼭 할 거야, 나는 꼭 될 거야, 나는 꼭 볼 거야, 나는 꼭 갈 거야’라고 적혀 있다.

6살에 이렇게 적은 걸로 봐선 뭐가 돼도 될 놈 같은데, 아직 딱히 뭐가 되진 않았다.

한걸음씩 자기 삶을 향해 진행 중인 아들에게 조바심을 내지 않도록 다독인다.

일기장을 들추기 전에 카톡으로 아들의 허락을 받았다. 지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당사자의 승낙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아들의 손때 묻은 일기장을 한 권, 한 권 넘겨본다.

아들은 예나 지금이나 손글씨가 엉망이다, 부분 부분 너무 흐리게 써서 알아보기 힘든 곳도, 억지로 쓴 티가 팍팍 나는, 눈을 잔뜩 찌푸리고 봐야 겨우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악필인 곳도 많다. 읽는 동안 혼자 킬킬대다가 한숨도 쉬었다가 순식간에 8권을 다 읽었다.


일기장 몇 권에 아들의 3년이 통째로 녹아 있었다.

햄스터를 키우던 이야기, 둘이서 북경으로 여행 갔던 추억, 학급 줄넘기 기네스 대회에서 1등 한 기쁨, 반려견 은비를 돌보면서 느꼈던 감정들, 2006년 월드컵에 대한 생생한 관전평까지.

아들의 3년이 고스란히 내게도 추억을 되새김질하게 한다.

읽을 때마다 ‘아! 그런 일도 있었지’ ‘그때 그랬었지’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토마토케첩과 소스 외에는 토마토를 먹지 않는다. 특히 생 토마토는 질겁을 한다. 햄버거나 샐러드에 들어 있는 것도 모두 빼고 먹는 아이는 토마토 향이 싫다고만 했다. 3학년 때 일기장에 그 이유가 있었다. 토마토를 먹고 심하게 체했던 적이 있었고, 아마 그 일이 트라우마가 되었던 것 같다. 억지로 먹기를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거니 넘겨 온 나의 무관심이 보인다. 아마 아들도 이 일을 까맣게 잊고 있는 듯하다.


일기장을 넘기다 보니 간혹 나에 대한 감정이 서운함으로 때로는 억울함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 당시 상황들이 선명하게 떠 오르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는 어렴풋한 기억의 조각들만 남아있기도 하다.

아이가 힘들고 지칠 때 보듬어 주지는 못할망정 윽박지르고, 나무라기나 하는 어리석었던 내가 그곳에 있었다. 아들의 눈으로 본 그날의 일기 속 나는 정말 별로인 엄마였다.

다행히 아들은 잘 성장해 주었고, 간혹 섭섭했다는 표현은 할망정 원망은 하지 않는다.


속이 깊다고만 여겼던 아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예민했다. 안으로 삭일 줄만 알았지 표현하지 않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자식이라고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지만 나의 무심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중이다.

하나밖에 없어서 그런지 아이가 어릴 때부터 잔소리가 많은 편이었다. 물론 가끔 만나는 요즘이라고 잔소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젠 학업보다 건강을 염려하고, 열 번치의 잔소리를 모아 굵은 소리 한 번으로 끝내려고 애를 쓴다. 부질없는 잔걱정도 아들이 결혼하게 되면 그것마저 비켜야겠지. 어느 며느리가 제 남편에게 아이 다루듯 잔소리하는 시어머니를 좋아하겠는가.


딸 가진 친구들이 늘 부러웠다. 딸이랑 영화 보러 가고 쇼핑도 함께 다니고, 예쁜 동네 찻집도 찾아다니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부러움이 잔뜩 묻은 시선으로 쳐다봤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 부러움의 정도가 살짝 약해졌다. 무뚝뚝하고 시크한 편이었던 녀석이 먼저 안부를 물어주고, 나이 들어가는 부모 건강도 염려한다. 이십 대 초반엔 용돈 받고 감사 인사 정도만 하더니 이제는 이것저것 먼저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부모 생일은 물론 결혼기념일도 잊지 않고 선물을 보낸다. 물론 내가 준 돈이긴 하지만. 그래도 좋다. 아들이 살가워지니 그나마 딸 없는 설움이 좀 덜하다.


추석에 잠깐 왔다 간 아들은 곧 다시 다녀갈 것처럼 말하더니 좀체 시간을 내지 못한다.

어쩌면 설이나 되어야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들이 오면 ‘용서와 화해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아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던 얼룩진 일기장 곳곳을 접어 두었다. 함께 일기장을 들춰보며 과거로 돌아가서 말해야지. ‘미안했고, 미안하고, 고맙다고.’ 아마 나는 조금은 쑥스러워하며 이 말을 할 테고, 아들은 씩 웃으며 ‘다 지난 일인데요’ 라며 따뜻한 손을 내밀 것 같다.

그렇게 만나질 우리의 시간 여행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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