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3
하루만에 온전한 마음이 되기에는 너무 호된 일을 당했다.
진정 된 상태지만 불현 듯 떠오르면 잃어버린 돈이 너무 아깝다.
우려와 달리 잠은 푹 잤다.
몸은 상쾌하다.
암막 커튼 뒤로 숨은 하늘이 궁금하다.
파리의 며칠 중 가장 파랗다.
하늘은 높아지고, 새들은 노래하고, 공기도 달다.
파리 너란 놈, 운도 좋지, 이정도의 컨디션이면 리셋 할 수 있겠다.
파리 들어 온 다음 날, 무리 하지 않고 눈 호강도 하기 위한 갤러리아 일정 중, 구입 한 물건에 대한 택스처리를 며칠 고민 하기로 하고 그 날의 일정을 끝내버렸다.
고민끝에 택스리펀을 받기로 하고, 오늘 첫 일정은 갤러리아로 정했다.
큰 길로 나서는 길!! 오늘 이렇게 눈부신 그 길들은 마지막이다. 광장 한 가운데 떡 하니 버티고 있는, 분수도 마지막이며, 첫 날 우리의 저녁 식사를 근사하게 해결 해 주었던 이정표 같은 숙소 근처의 파이브 가이즈도, 골목골목마다 예쁜 파리의 카페와 식당들도 마지막이기에 눈에 실컷 담았다.
수빈이는 오래 걷기를 잘 못 한다. 패키지에 비하면 걷는 수준은 슈퍼 마켓 다녀가는 정도일까? 여유 있기 위해서 선택한 자유 여행이니 내 수준에서는 무리하지 않도록 극진한 대접을 했다. (아니다. 그래도 늘 만보 이상은 걸었던 듯 하다.)
상쾌한 날씨에 걷고 싶지만, 그녀를 배려해 택시를 잡아 타련다. 큰 길로 향하는 골목이 워낙 많으니 오늘도 새로운 골목으로 나와 택시를 기다려본다. 저 골목 뒤로는 무엇이 있으려나, 택시를 기다리며 목을 빼고 보니, 가보고 싶었던 퐁피두센터가 있는것이 아닌가? 마음은 당장 그 곳으로 향하고 싶으나, 여행 매이트가 반기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의 동반자의 체력을 단련하든, 다른 동반자를 섭외하든 또 그 날은 오겠지하는 생각으로 빠른 포기를 한다.
이번 큰 길에는 빈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 앱으로 택시를 예약하면 그 순간부터 초록 택시가 ㅡ파리의 택시는 택시등이 초록색이면 탑승가능, 빨간색이면 손님있어요ㅡ무수히 내 앞을 지나갈 것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일단 앱으로 배정 받아보자! 어쩐 일인지 기사 배정이 너무 빠르다. 7분 거리에 있는 기사가 콜을 승락했다. 이마트서 우리집 오는 정도의 거리니 금방 오겠구나! 역시나 콜이 잡힌 이후로, 초록 택시들이 수없이 지나간다. 택시는 꼭 그렇더라! 7분이면 우리앞에 나타 난다던 택시는 다시 8분이 되었다가, 9분도 되었다가, 다시 5분이 되었고, 곧 지도에 i will be right with you라며 기대를 한 껏 하게 하더니, 기사가 콜을 취소했다며 바로 다른 택시가 연결된다.
나도 취소하고 싶었는데, 이넘의 앱은 취소 기회를 주지 않네. 다시 배정된 택시 번호를 기억하고. 5분간의 기다림에 다 왔다는 택시는 우리 앞에 찾을 수가 없다. 번호를 기억했기 다행이지, 도로가 한산하길 다행이지, 맞은편 상가 쪽에서 우릴 찾는 기사님이 보인다.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고, 건물 사이의 도로들은 일방통행이 많아, 일부러 길을 건너 택시를 잡았는데, 기사는 자전거 도로쪽으로 정차하며 우리를 찾고 있었다.
탔으니 된거지! 며칠 안남았지만 택시는 돌아다니는 초록택시를 손 흔들어 타야겠다.
택스리펀으로 두 군데의 매장을 가야한다. 오전 중이라 그런지 한산하다. 먼저 옴므관 보테가 매장에 가서, 구매한 영수증을 제시하며, 택스리펀을 받을 수 있을지 여부와 fta서류를 부탁했다. 깐깐하게 생긴 (한국계 미국 배우 켄정을 닮았다. 목소리도 비슷하다.) 점원이 영수증을 보더니, 기일이 지나 안된단다. 왜 그날 바로 처리 하지 않았냐며, 호되게 야단한다. ( 이 친구야, 우리도 리펀을 받을지 말지를 고민하다 다시 왔단 말이다. ) 되는 말든 일단 그럼 fta 서류라도 받고 싶다하니 투덜거리며 써 주기는 하겠단다. fta서류만 일단 받고 택스리펀 신청데스크에 문의하기로했다. 샹냥한 직원이 영수증을 보더니, 매장에 가서 다시 오늘 날짜로 영수증을 발급 해 오면 처리가 가능하단다. 단!! 그 매장에서 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직원들이 호의적이지 않다는 말을 에둘러 한 것 같다.) 또 켄정을 만나러 가야지 어쩔 수 없다.
-저기요, 리펀 창구에서 오늘자 영수증으로 교체해오면 가능 하다는데요?
-(도도하다) 그래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네요.
전화를 건다. 마담! 두루방 서리능 아리슝왕 위, 위, 위
-(미간 주름 꽉) 기다리세요.
계산대 앞에서 수 분을 이러고 있으니 앉아서 기다리란다. 잠시뒤, 책임자가 오고, 문제 없다는 듯 영수증처리를 빠르게 해준다. 끝까지 켄정 아저씨는 불만 가득한 새침한 얼굴이다. 해 줄거 다 해줬으면서 말이다. 사실 fta서류 자체를 귀찮아 한다는데, 켄정씨는 얼마나 순순히 써 주셨는지.
쿠폴이 환상적인 본관으로 이동한다. 친절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디올 매장이다. 손님도 많지는 않지만 직원이 모두 응대중이라 줄을 서다 저 편으로 한가한 직원이 보이길래, 리펀 얘기를 하니 매니저를 불러 준다. 디올 매장은 꽃가루가 날리는 곳이다. 영수증 처리부터 부탁했다. 대하는 얼굴 부터 다르다. 처리 속도도 기가 막히다. 사진 하나를 보여주며 fta 서류도 부탁했다. 사진 서류가 네것이냐며 준비해 왔냐 길래, 준비는 못 해왔고 예시를 보여준 것이다 하니, 또 문제가 아니니 어서 처리 해 주겠단다. 끝까지 미소로 응대 받은게 너무 고마워“유 멕 미 해피”라는 말과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디올 매니져의 친절함에 다시금 파리는 웃는다.
배가 많이 고프다. 오늘은 고향의 맛을 보기로 했다. 백화점 근처에 있는 한식당을 미리 알아뒀다. 앱을 켜고, 길들을 건너고, 만남의 명소라는 오페라 가르니에도 지나쳐서, 골목을 누비다 대기 줄이 서있는 식당이 있다. 우리가 찾는 곳은 아니지만 온더밥, 고은등 한식당에 외국인들이 줄 서 있는 것 보니 뿌듯하다.
우리는 잔치를 하려한다. 평도 괜찮고 메뉴도 많길래 욕심부려 먹어 보려고 잔치를 선택했다.
조금 더 들어간 골목이라 그런지 대기 줄이 다행히 길진 않다.
곧 우리 자리가 생겼고 만석인 손님들 중 한국인은 우리 둘 뿐이다.
메뉴를 보자마자 김치찌개, 비빔밥, 제육볶음을 주문하고, 시원하게 물 한잔 마셨다. 미리 서브 된 나물 반찬을 각자 자기 앞에 하나씩 두고 젓가락으로 에피타이저를 즐기는 외국인들이 흥미롭다. 반대로, 우린 그들의 식사처럼 밥 먹으며 대화 시간이 늘었다. 한국에서 보다 식사 시간이 배로 늘었다. 메인 요리가 하나씩 늘때마다 수빈이는 엄지를 세운다. 맛도 훌륭하다. 제법 빨간 김치찌개의 뽀얀 두부가 이리 반가울 수가 없다. 약간 시큼한 맛의 김치찌개에는 토마토페이스트 향이 난다. 난 그 매력에 빠져 숟가락으로도 마실 수 있음을 알았다.
밥 집 이름이 잔치다. 우린 오늘 파리의 파란 하늘도 초대하고, 파리의 친절함도 초대하고, 한국 음식에 매료 된 외국인들도 초대해서 한 상 차려 잔치를 했다.
새빨간 음식으로 재충전 확실히하고, 이젠 오랑주리 미술관까지 걷는다.
오늘은 봄이다. 회색 빛 코트는 벗어 한 손에 들고, 찐한 태양 빛에 눈을 찡그리더라도 기분 좋은 파리의 이른 봄이다.
튈리르 공원에 사람이 많다. 주중의 공원같지 않게 한가함을 즐기는 사람들!! 튈리르 공원을 가로지를 수록 오랑주리가 다가온다. 오렌지 저장소로 쓰인 건물이라 오랑주리라 부른단다.
규모 면에서는 작은편이지만, 모네를 좋아하고, 비록 몇 점씩이지만 피카소와 세잔, 르느와르, 모딜리아니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 오늘은 현장 구매로 입장하려했는데 대기줄이 만만치 않다.
앱을 열어 검색한다. 당일 쓸 수 있는 티켓을 찾는다. 지금 2시 18분! 2시 30분 입장하는 티켓이 있다. 클릭, 클릭, 클릭, 카드번호 입력!!! 티켓팅 성공!!! 여러분 저흰 들어 갈게요!!
오랑주리는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한 사람의 미술가를 위해 만들어준, 그리고 그 작가가 원했던 방법으로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곳, 오랑주리!
6년전 파리에 왔을 때 이곳을 알지 못했다. 이번엔 꼭 들려 보고 싶었던 가장 우선 순위에 있던 오랑주리!!
오늘은 모네가 나를 위해 파란 하늘까지 선물한다.
모네는 수련 연작을 기증하며, 흰 벽에 타원으로 그림을 걸고, 자연광 아래에서 그림을 볼 수 있길 원했다고 한다. 거대한 수련 작품은, 파노라마를 보듯 일단 내 몸을 돌려가며 감상한다. 매직 아이를 보듯 눈을 살짝 찡그리기도 하고, 눈을 다 뜨고 보기도 하며, 멀리서도 봤다가, 가장 까까운 곳까지 보기도 하고, 전체를 보았다가, 부분만을 보기도 한다. 마치 내가 지금 지베르니의 그의 정원에 있는 듯 하다. 천장에서는 은은한 태양빛이 들어오고, 변하는 태양의 위치에 따라 영원한 것은 없다는 듯 같은 방향을 보아도 달라 보이는 하루처럼, 지금의 모네의 그림도 내일의 다른 하늘이라면 어떤 느낌일지 기대된다.
조금 더 한가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쓸 데 없는 욕심이 난다.
모네의 방을 나와 쟝발터와 폴 기욤의 소장품 방에서 여러 인상파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피카소의 뒤틀려지지 않은 누드화라던지, 원근법과 소실점을 무시하고 정물화를 그린 세잔과 인물화를 잘 그리지 않지만 자신을 후원한 고마움에 그린 기욤의 초상화를 그린 모딜리아니도, 그림만 봐도 따스함과 평화로워 지는 르누와르와 20세기 초, 샤넬과 어울리며 그녀의 초상을 그렸지만 샤넬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는 일화를 가진 마리 로랑생도, 행궁동 카페에 가면 하나씩 걸려 있는 가리개 커튼의 그림 주인 앙리 마티스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수빈이는 모네의 방보다, 다양한 작가들의 그림이 전시 된 곳에 흥미를 보였고, 마지막에 보게 된 기욤의 방에 전시 된 그림들을 미니어쳐로 제작 해 놓은 곳에서 10분을 매료당했다.
수빈이랑 이번 파리 미술관은 노가이드 -심지어, 오디오 가이드 마져도 없이- 로 우리의 직관만으로 감상하기로 했다.
몇 년 전, 마드리드에서 들렀던 그 방대한 프라도 미술관을 단, 30분만에 돌아보고(고야의 그림을 봤단다, 기억이 없다) 아쉬움이 컸다.
루브르를 우리끼리 돌면서 모나리자는 패스하려는 배짱도 준비했지만... 어제의 사건으로 루브르는 몇 년 후에나 다시 보고 싶을 듯 하다.
이제, 오르세가 남았다. 오르세는 파리 떠나기 직전에 들르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오늘의 오랑주리는 오렌지 창고처럼 아늑하고 달콤한 사이즈라서 우리의 직관 만으로도 충분한 감상이 이루어진것 같다. 오르세는 오디오 가이드까지는 고려해 봐야 겠다.
따뜻한 햇살 받으며, 여유롭게 그림보고, 한 결 가벼운 퇴장!!
입장 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구름 걷힌 좋은 날에 행운처럼 볼 수 있었던 모네의 정원을 가슴에 품고. 잠시 센 강을 바라보니 황금 동전 수백개가 아른 거리는, 이 강가에서 캔버스 하나 놓고, 유화 물감 팔레트에 준비 되면 누구든 인상파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늘 하루!!
어제는 없어지고 다시 리셋했다.
오늘의 파리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