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2
일요일 오후, 6년 만의 루브르를 다시 관람하는 날이다.
금요일 밤의 황금빛 루브르는 로맨틱한 파리를 느꼈다면, 오늘은 명작들에 둘러 쌓여 역사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흐린 하늘이다.
아침 잠깐의 산책으로 마음은 가볍다.
한 번 와 본 길이라고 제법 익숙하다.
방대함의 루브르, 그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 또한 많아 보기에 가깝고 한산해 보이는 입구로 들어가기로 했다.
저곳을 통과하면, 얼마 가지 않아 투명한 다이아몬드 피라미드가 우리를 환영할 것이며, 그곳을 통과하면 서양의 역사를 눈으로 담는 위대한 기회가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길 기대했다. 그렇게 하려고 파리에 왔다.
그 문을 통과하면서 기대는 무너졌다.
소위 말하는 싸인맨들에게 당했다.
두세 년과 한 새끼가 한 손에는 기부 명단 사인 같은 용지를 들고 볼펜을 들이밀며, 그 새끼가 내 앞을 가로막더니 두 년들이 우릴 애워쌌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로 정신을 빼놓았다. 우리는 핸드폰을 손에 꼭 쥔 채 가방은 앞 쪽으로 하고 둘이 거의 붙어 한 몸처럼 그 년 놈들을 뿌리쳤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닥친 불운은 금방 알게 됐다.
내 가방이 열려 있다.
오늘따라 가지고 나온 유로화가 다 없어졌다.
그 연놈들이 한 짓이 분명 하나 보복이 두려워 그 연놈들과는 점점 멀어지며 눈앞에서 코가 베인 상황이 됐다.
방금까지의 파리가 아니다.
범죄 도시 파리다. 한 순간에 꿈꾸던 파리는 악몽으로 변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의심 스러 몸은 위축된다.
수빈이 앞에서 어른스러움을 보여야 하나, 잃어버린 현금이 너무 큰 액수다.
더 자책하게 된다.
잘못은 그 연놈들이 한 것인데, 원인 제공을 내가 한 것 같은 생각에 자책을 한다.
아비에게 소매치기당한 일을 알리고, 전화를 받았다. 그냥 눈물이 난다. 진정시키지만 진정되지 않는다. 잃어버린 액수의 문제가 가장 속상하다. 너무 미안한 마음이 커서 눈물이 나도 모르게 나온다. 흐르지 않길 바랐는데 또르르 흐르는 눈물. 당황한 엄마 진정시키느라 의연한 수빈이를 보며 꾹 참고 미리 예약한 티켓이 있어 줄은 서야겠는데, 여전히 정신은 없다.
패스트 트랙권을 끊어 대기가 없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줄은 서야 한다.
그럭저럭 많이 기다리지 않고 입장했다. 드농관을 얼마나 꿈에 그렸는데, 처참한 기분으로 이곳을 다시 찾을 줄이야. 회화관을 먼저 가기로 하고 계단 앞 잠시 수빈이의 얼굴을 살피니 안색이 좋지 않다. 수빈이는 또 얼마나 놀랬을까? 부끄럽게도 이제 수빈이를 챙긴다. 처음의 루브르서 목격한 소매치기범과 가드들의 추격전 때문에 수빈이게는 백 퍼센트의 좋은 기억이 아닌 곳인데, 우리가 그 범죄의 당사자가 되었으니 그녀는 이곳이 싫어졌다. 애초부터 나를 위해 찾아 준 곳인데 이제 루브르는 수빈이에게 범죄 현장 그 이상은 아닌 곳이 돼버렸다.
이 기분으로 모나리자를 다시 본 들 어제의 파리가 되진 않을 것이다.
일단 나가자! 숙소에서 뻗고 싶다.
박물관을 빠져나가는 길은 우리가 6년 전 추격전을 보았던 곳이다. 오늘 우리에게 이 일이 없었다면 웃으며 그땐 그랬지 하며, 라뒤레 마카롱을 다시 샀을 그곳인데 가시밭길 위를 걷는 듯 고통스럽다.
지상에서는 어느 문을 통과하여 루브르를 빠져나갈까? 도 고민스럽다. 트라우마다. 가까운 길을 놔두고 일부러 돌아서 처음 걷는 길을 선택했다. 한산한 길 위지만 배 앞에 꽉 붙든 가방과 길을 찾기 위해 들고 있는 핸드폰이 부서질 만큼 꽉 쥐었다.
숙소에서 받은 아비의 전화, 안 다쳤으니 아무 상관없다 한다.
새해 액땜 우리 둘 다 한 것 같으니 올 한 해 운수대통만 남았다며, 우울할 필요 하나 없단다.
어떻게 가게 된 파리인데 내일부터는 더 즐겁게 보내고 오라며 응원한다.
위로와 응원 때문에 슬프다.
내가 더 조심했어야 하는데 자책하게 된다.
추억이 될 수 없는 쓴 기억을 갖고 파리를 떠날 수는 없는 일, 이미 벌어진 일, 해결할 수도 없는 일, 잊기도 힘든 일이지만 이제 여행 중반이다.
파리!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차라리 당할 일이었으면 이쯤 당해서 훌훌 털고 나머지 여행으로 기억세척할 기회를 줄 테니까!
다행히 수빈이도 돈은 아깝지만 하루에 10만 원씩 더 좋은 호텔에 묵는다 생각하자며 오늘 푹 쉬고 내일은 한식이나 먹고 싶단다.
당해보니 참 별것 없는 파리구나!!
환상 속 파리가 현실의 파리가 되며, 더 이상 지옥의 파리가 되지 않으려면 내가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 어떻게 온 파리인데..
걱정이 되는지 계속 카톡이 온다.
멀리서도 항상 힘이 돼주는 정운의 힘을 실감한다.
돈 잃고, 마음 다치며, 그 마음은 또 그가 어루만져준다.
그래 이 정도면 됐다. 털자!!!
헤이 미스터 마크롱!
파리 올림픽이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