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4
수앤수 대이동이 있는 날이다.
먼 거리 이동은 아니지만 대형 캐리어 두개가 꽉 차있다.
이삿짐 무게가 만만치 않아 걸어 이동하기엔 벅찬 거리다.
지나가는 택시만을 타겠다 다짐했지만, 다시 한 번 프리나우로 택시를 잡아 보기로 했다. 역시 바로 배정 되지는 않는다. 시타딘 호텔 바로 앞, 주차가 가능하나, 호텔로 향하는 방향이 워낙 많다 보니, 콜택시를 잡으면서도 과연 입구 앞 주차 방향으로 택시가 들어 올까 걱정스러웠다.
8분 정도 거리에서 배정 된 택시가 5분 거리에 다가왔을 때, 혹시나 엇갈릴까 호텔 앞에서 기다리는 중이라는 메세지를 보내고, 이삿짐 두 덩이를 끌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들어 오는 방향은 4곳, 과연 기사님은 어디에서 나타날까? 도착했다는 메세지를 받았지만, 우리는 그를 찾을 수 없다. 지도상에서 보면 엎어지자마자 코가 닿을 것만 같은 데, 우선 급한대로 호텔 직원과 통화를 시키려는데, 앱 전화 연결이 되지 않는다. 전화하기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통화는 되지 않고, 아직 기다리는 중이라는데 그 쪽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서로 답답한 상황에서 취소 당했다.
어쩔 수 없다. 대로까지 이삿짐을 굴리는 수 밖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혼잡한 거리. 지나가는 택시들은 모두 빨간등을 켜고 시간 꽤 걸리겠구나 생각하자마자, 사거리 맞은 편에서 녹색등 택시가 보인다. 짧은 팔을 최대한 뻗어 우리가 여기 있음을 알렸다. 기사가 알아챈 느낌이다. 꼭 잡아야 한다. 신호는 바뀌고, 우리 쪽을 향해 오는 택시, 주차하기 편한 곳으로 이삿짐을 사력을 다해 굴렸다. 캐리어 넣어 주시려 나온 기사님께
-캐리어가 헤비해요.
-당신이 해피 하다구요?
-헤비하다구요!!!
연세가 있으신 관계로 우리 짐을 혼자 들지 못 한다. 내가 힘을 쓸 수 밖에 없다.
-아, 당신 헬씨~~
헤비가 해피로 , 다시 헬씨가 되었지만, 드디어 카 플러스 카 호텔로 갈 수 있구나!!!
옮기는 숙소는 카 플러스 카 호텔 케이레 생 제르맹 데 프레라는 풀네임을 갖고 있으며, 6구 생제르맹 거리에 위치 하고 있다. 원래는 이 호텔을 여행 초반에 묵으려 하였으나, 잠시 망설이던 사이 예약이 차 버렸고, 숙박 순서를 바꿔 시타딘에 먼저 묵게 되었다.
4차선이 지나가는 도로를 끼고 위치한 고건물들. 그 중 하나가 카카호텔이다. 깔끔한 로비와 친절한 직원의 응대, 무엇보다 체크인 3시간 전이지만 이미 룸은 준비되어 있어 바로 체크인을 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방을 배정 받고, 문을 여는 순간 창으로 보이는 풍경! 비록 에펠탑 뷰는 아니지만, 여기가 파리라고 알려주는 고풍스러운 맞은편 건물이 무척이나 맘에 든다.
아침도 먹지 못하고 이사했더니 배가 고프다.어쩌다 일주일 수 번의 끼니 중, 이탈리안 식당과 한식당 빼고는 외식 경험이 전무하다. 동네도 돌아 볼겸, 맛있어 보이는 프랑스 식당을 목적지로 방을 나왔다.
시타딘은 홍대 느낌이라면, 카카 근처는 청담동 같은 곳이다. 생 제르맹 지역 자체의 아파트먼트 가격도 꽤 비싼 부촌이란다. 식당을 가는 골목에도 온갖 명품샵들이 자리 하고, 무엇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 차림이 현란하다. 개성있는 멋쟁이들, 그 동안 궁금했던 파리지앵들의 행방을 찾은 듯 하다.
손님은 많지만, 대기는 하지 않고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둘이 왔다고 하니, 분명 테이블이 비었음에도 바에 앉아야 식사가 가능하단다. 짧은 다리로 힘들게 등반하여 앉은 자리가 그리 불편한 건 아니었지만, 드디어 인종 차별을 당하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이윽고, 두명의 손님이 또 들어왔다. 그녀 둘도 바자리 아니면 식사가 불가 하다는 말을 듣는다. 아!!! 그냥 둘이라 나 여기 앉은 거구나!!
2인분이 함께 서빙되는 요리를 주문했다. 칵테일을 주문하니, 칵테일은 저녁 한정 메뉴라 길래 맥주 한 병을 시키고,스팀 된 양고기와, 프렌치 프라이, 크리스피 포테이토를 사이드로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 전, 수제맥주를 한잔 시원하게 들이키는 순간, 온 몸이 나른 해지며 기분이 좋아 진다. 불타는 로즈 마리와 함께 서빙 된 스팀 양고기는 묘한 훈제 내음을 감싼 족발과 백숙 사이의 식감이었다. 매번 느끼지만, 음식 인심은 후한 파리인것 같다. 배부르게 먹었더니 계획한 디저트는 포기하기로 하고, 명품 상점 골목을 지나, 아시안 마트까지는 알아 놓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사를 한 오늘은 별 계획 없이 어슬렁 거리는 날이나, 시간이 너무 빨라 즐길수 있는 일정은 단 이틀만 남는 것이다. 단지, 점심 식사만 했을 뿐인데, 3시가 넘었고, 아직 해는 밝은데, 수빈이는 피곤한지 뒹굴 거리기만 원한다.
지금까지 사이가 너무 좋긴 했다. 위기와 갈등이 없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그리고, 이상하게 엄마들은 대화를 한다면서도 잔소리를 하고, 지금 얘기를 하면서도 옛날 얘기를 꺼낸다. 그럼, 나보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딸은 내 한마디 한마디에 반박하며 서로 날이 선다.
별 것도 아닌 언쟁인것이 며칠 남지 않은 일정, 아깝지 않게 조금 더 돌아다니자는 말로 시작해서 어제, 그제 뒹궁거리던 얘기로 들어가서, 네가 누리는 지금의 기회에 고마워해야 한다는 교훈적인, 수빈이에게는 그냥 잔소리 말이다.
얘기가 깊어져 맞지 않는 여행 스타일에 대한 언쟁도 하고, 섭섭했던 이야기도 하며, 사과도 했다가 비난도 했다가 , 다시 또 미안해 했다가, 나 혼자 나가보겠다 했다가, 거절도 당했다가, 가볍지도 않고, 상처만 남긴 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한 참 하고 나니 이젠 저녁때다.
집에 있었으면 저녁 반찬 무얼해야하나 고민이지만, 여행을 오래하니 저녁 무얼 사먹을까도 꽤 고민이 된다. 한 참 잔소리를 해댔으니 메뉴 주도권은 수빈이에게 양보한다.
일식 라멘집을 찾아냈다. 거리도 아름답다. 8분 정도만 걸어가면 저녁을 먹을 수 있다. 우린 기대했다. 돼지뼈를 우려낸 뽀얀 구수한 국물에 챠슈와 숙주를 듬뿍 올려 준 라멘!!
아직 저녁 장사 전이긴 하나, 사장님과 눈이 마주친 김에 손 짓으로 들어 가도 되냐 물으니 단호히 노!!라 신다.
정확히 6시 30분, 첫 손님으로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을 보니 우리가 기대한 라멘은 없다. 차라리 배가 아주 고팠다면 이것저것 시키기라도 할 텐데, 딱 메뉴 두 개만 선택해야할 컨디션이다.
나는 카레라멘을 수빈이는 돈카츠 카레 덮밥을 시키고, 방에서 꺼낸 이야기 덕분인지 서로의 성격에 관해 어느 때 보다 더 진지한 대화를 했다.
파리에서 밥을 먹으면서 좋은 것 중, 메뉴를 고르기까지도 대화를 하며 여유를 갖고, 식사를 하면서도 많은 대화들이 오가며, 식사가 다 끝나도 대화는 계속되는 그들의 식사법을 따르다 보니,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여전히 수빈이는 내 팔을 졸라 매듯 팔짱을 끼고 있고,
대화는 부드러웠으며,
파리의 청담동은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