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책 여러권 읽기
엄마 - “이 책 다 읽는거야?”
나 - “응.”
엄마 - “무슨 책을 그렇게 이 것 읽다, 저 것 읽다 해?”
어릴 때는 책 한 권을 읽기 시작하면 완독할 때까지 한 권만 붙들고 있었다. 누가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나에게 말한 것이 아니었고, 딱히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운 기억도 없다. 왜 그렇게 해왔는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꼭 한 번에 한 권의 책만 읽었다.
순도 백프로 공돌이 남자와 결혼을 하고 나서 꽤 놀랐던 것은 이 사람이 정말 분야를 막론하고 책을 무지하게 읽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책 읽는 기쁨에 대해 제대로 깨닫게 된지 채 10년이 되지 않은 나로서는 어찌 저렇게 컴파일(고급 언어로 쓰인 프로그램을 번역하고, 컴퓨터에서 실행할 수 있는 기계어 프로그램으로 고치는 과정) 걸어놓은 잠깐 동안도 쉬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는지 의아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잠깐 화장실 가는 길에 읽을 책을 정해 놓은 이 남자의 엉뚱한 매력에 호감을 느꼈던 때가 떠오른다. 이 남자 주변에는 항상 책이 잔뜩 쌓여있다. 책상 위, 옆, 앞발치, 쇼파, 식탁, 테이블 어디든 눈길 가는 곳마다 책이 있다. 책 마다 노란색 포스트잇이 중간 어디 쯤에 붙어 있고, 군데 군데 알록달록한 색인지도 붙어 있다. 그렇다는 것은 저 책들을 다 읽고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저 많은 책들을 동시에 읽을 수가 있지? 한 번도 책을 동시에 여러 권 읽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나 - “책을 어떻게 그렇게 동시에 여러 권 읽을 수 있어요? 내용이 헷갈리거나 집중이 잘 안되거나 하지 않아요?”
신랑 - “이전에 읽었던 내용이 기억이 안나면, 몇 장 앞으로 돌아가서 읽으면 되죠. 저는 괜찮던데요.”
나 - “몇 권까지 동시에 읽어봤어요?”
신랑 - “글쎄요. 세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지금 읽는 건 4~5권 정도? 어떤 건 읽다가 멈춘 채로 몇 년 된 것도 있어요. 자기도 한 번 해봐요.”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무엇이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이기에 일단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들고 다니면서 읽기 쉬운 e북 중에 고르기로 마음을 먹고 찬찬히 구매 목록을 살폈다. 이게 어울릴까, 저게 어울릴까. 지금 <시민의 교양>을 읽고 있으니 비슷한 분야의 책을 읽는게 좋을까? 아니면 아예 전혀 연관이 없어뵈는 기술서적 중에 고를까? 어떤 책을 읽어야 채사장 아저씨가 좀 덜 서운해 할까. 단박에 고르지 못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을 멈추었다. 아니 내가 지금 채사장 아저씨한테 미안할게 뭐야. 바람을 피우는게 아니잖아. 그만 고민하고 그냥 읽던 책을 다 읽으면 읽으려고 마음으로 정해두었던 책을 읽기로 했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당첨. <시민의 교양>을 읽으면서 동시에 읽기로 한 책이 <조선왕조실록>이라니. 뭔가 좀 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택했어야 하나.
어쨌든 리디북스를 집어 들고는 자리에 앉았다. 책을 골라 파일을 열었더니 표지에 떡하니 설민석 아저씨가 해맑게 웃고 있다. 아니 그런데 왜 자꾸 <시민의 교양>이 머릿속을 맴도는 것인지. 내 손에는 설민석 아저씨가 “어서와. 뭐해, 빨리 다음 장으로 넘겨. 읽어봐.”라며 유혹을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시민의 교양>을 배신하는 것 같은 이 찜찜한 느낌은 뭐지. 채사장 아저씨, 글이 재미 없어서 그런게 아니에요. 저는 지금 하나의 실험을 해보려고 하는거라고요. 아니, 딴 짓 하는게 아니라니까요. 희안하게 약속한 상대를 앞에 앉혀두고 자리에 있지도 않은 다른 누군가와 시간을 들여 메신저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뒤이어 온갖 걱정거리들이 쏟아졌다. 내가 이 책 두 권을 온전하게 읽을 수 있을까? 두 책의 내용이 다 섞여 버리는 건 아닐까? 읽어간 내용이 이 책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저 책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제대로 구분할 수 있을까? 아, 그만 생각하고 그냥 해보자. 좀!
마치 무슨 경건한 의식이라도 치루는 듯 <시민의 교양> 위에 손을 얹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후 리디북스 버튼을 눌렀다. 버튼이 눌리며 딸깍하는 소리에 어찌나 마음이 무겁던지. 그렇게 나의 첫 경험이 시작되었다. 채사장 아저씨 특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초반에 집중하는 것이 좀 어려웠지만, 금새 언제 그랬냐는 듯 이성계 할아버지가 어떻게 나라를 세웠는지, 얼마나 어마무시한 사람인지 읽느라 신이났다. 책장을 넘기면서 더이상 죄책감이란 것은 없었다. 그 묘한 느낌을 죄책감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소파 위에 있는 <시민의 교양>을 보니 괜시리 더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너다. 가방에 고이 잠들어 있는 리디북스 속 설민석 아저씨는 괜찮을거야. 교육 파트 어딘가를 읽다보니 세종대왕 할아버지가 무슨 일을 했었는지 문득 떠올랐다. 훈민정음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중국어로 글을 읽고 있으려나? 음. 내가 지금 책에 제대로 집중을 하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독서의 또다른 재미를 알게되었달까. 우리가 받아온 교육이, 그 시스템이 이리도 심오하게 사회적, 경제적 영향을 받은 산물이었다는 것을 펜대 세워서 어떻게든 알려주고 싶은 채사장 아저씨에게 집중하다 보니 시간이 잘도 지나갔다.
이 날 이후로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심이 모두 사라졌다. 오히려 여러 책의 내용이 섞여서 이야기거리가 더 많아지는 묘미가 있다. 이제와 드는 생각인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 마치 얼마 안에 꼭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내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성실하게 빨리 읽어서 끝내버리지 않으면 의지가 약하고 게으른 사람이 된 듯 나 혼자 쭈글쭈글해 졌다. 이런 저런 핑계로 책 읽어버리기가 늦어질때면 괜한 죄책감에 오히려 그 책을 피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독서와 멀어진 나를 발견하게 됐다. 다시 돌아오려면 진지하게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책을 읽을 마음을 먹는다는 것. 그 것이 나에게는 그런 것이었다.
동시에 읽기가 가능해지니 책 한 권을 지나치게 소중하게 여기던 스트레스가 낮아졌다. 꼭 끝까지 읽을 필요도 없어졌다. 아무때나 그 순간 읽고 싶은 책을 집어들고 읽는다. 훨씬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두 권을 동시에 읽던 것이 나중에는 세 권, 네 권으로 점점 늘어났다. 우리 집 뿐만 아니라 엄마 집에도 내가 읽는 책들이 널부러지기 시작했다. 내 방에 한 권, 작은 방에 한 권, 화장실에 한 권.. 차 한잔 마시러 엄마 집에 들른 날, 깔끔쟁이 엄마가 온 사방에 널린 책들을 보다 못해 한 마디 했다. “무슨 책을 그렇게 이 것 읽다, 저 것 읽다 해? 동시에 읽으면 정리가 잘 돼? 나는 한 권 읽는 것도 힘들던데. 그리고 너 멀티태스킹 잘 못하잖아.”
멀티태스킹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명사」『컴퓨터』
하나의 컴퓨터가 동시에 여러 개의 작업을 수행하는 일. 다중 프로그래밍과 비슷하지만 뜻이 약간 다르다. 태스크라는 말은 엄밀하게 말하면 프로그램이나 프로세스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컴퓨터 쪽에서 볼 때의 작업 단위를 이른다.
<위키백과>
전산학 분야에서 멀티태스킹 또는 다중작업은 다수의 작업이 중앙 처리 장치와 같은 공용자원을 나누어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엄밀히 이야기 하면 책을 ‘동시’에 여러 권 읽는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한 번에 한 권만 읽는 것이니까. 하지만 책마다 전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섞여 버릴 수 있는데, 분리를 해서 읽는다는 매우 주관적인 해석으로 여러 책을 읽는 것을 멀티태스킹 독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엄마는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는 음악 들으면서 코딩 못한다. 라디오 들으면서 책 못 읽는다. 통화 하면서 메신저 못한다. 나는 멀티태스킹을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책을 여러 권 읽는 나라니, 엄마는 그런 내가 신기했나보다. 근데 말이죠. 그게 되더라고요, 엄마.
나 - “엄마, 드라마 동시에 못봐? 월화 드라마, 수목 드라마, 주말 드라마 다 보지않아?”
엄마 - “어, 그러게. 그건 잘 되는데.”
나 - “스토리 헷갈려?”
엄마 - “아니.”
나 - “책이나, 드라마나. 똑같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