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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임신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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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 Jul 15. 2019

[임신일기 #17] 15주차 - 우리 아이 성별은?

네 번째 검진. 성별 구별&2차 기형아 검사


자기야! 자기는 우리 귤이가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아님 아들이었으면 좋겠어요?
자기는요?
음.. 저는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뭔가 좀 더 잘 챙겨줄 수 있을 것 같고.. 제가 엄마랑 지내는 것처럼 친구같이 가깝게 지낼 수 있을 것 같고... 같이 목욕탕도 가고.. 하하
그래요. 저도 딸이면 좋겠네요.


태몽과 아이의 성별이 직접적으로 상관이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상큼한 귤이 가득 담긴 상자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던 그 순간을 떠올리자니 예쁜 딸이 우리에게 올 것 같았다.


네 번째 병원 방문. 15주가 지나면 성별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해 검진 전날부터 설레 잠을 설쳤다. 2차 기형아 검사도 예정이라 우리 귤이가 건강할까 더불어 걱정도 됐다.




병원에 가면 항상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체중과 혈압을 재는 일이다. 14주가 지났는데 체중이 거의 1kg도 늘지 않았다. 정상인가? 임신하면 살이 팡팡 찌는 줄 알았는데 아니라니. 몸무게는 그리 늘지 않았는데 옷은 맞지 않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몸무게가 전혀 늘지 않는데 괜찮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초기에는 원래 몸무게 변화가 거의 없다며 정상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구나.


드디어 초음파 검사. 매번 검진 때마다 하는 절차지만 차가운 젤이 배에 닿는 느낌은 그리 익숙해지지 않는다.


여기가 머리 부분이고요.. 눈, 코, 입 보이세요? 다음 검진 때 정밀 초음파를 하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다 정상으로 보이네요. 심장 소리도 좋고 건강하게 잘 뛰고 있어요. 여기가 배 부분이고..


보이세요? 성별이 뭔 것 같으세요?


헉!

우리 귤이의 중심에는 그것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누가 봐도 바로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뾰족하게 튀어나온 그것. 고추가 달려 있었다.


아들..이네요?
네, 아들이에요. :) 여기 꼬추 보이시죠?
이게, 생겼다가 없어지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요. 하하


피식.

함께 초음파를 보고 있던 신랑의 피식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힝.. 왜 웃어요 ㅠㅜ
아들이라고 할 때 자기 반응 때문에요.


초음파 검진 상 모두 정상이었고, 검진 이후 2차 기형아 검사를 위해 채혈실로 이동했다. 피검사와 소변 검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신랑이 괜찮냐고 물었다. 그럼요~ 괜찮죠.라고 이야기했지만 뭔가 기분이 묘했다.




검진도 마쳤겠다 맛있는 것을 먹고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가보려고 했던 식당이 없어져서 근처 돈가스 집으로 들어갔다. 주문을 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 머릿속에는 온통 아들. 아들. 아들. 이 생각뿐이었다.


아들이었다. 아들. 이상하다. 내가 그렇게나 딸을 원하고 있었나?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는 줄 알았는데,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도 모르게 크게 실망한 것 같은 반응을 보이고야 말았다. 신랑은 초음파 검사 이후부터 계속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어떡해요. 딸이 아니라서. 많이 실망한 것 같아서..


돈가스와 우동을 우적우적 먹으며 신랑에게


와! 자기 DNA는 정말 대단해요! 자기 집엔 아들만 잔뜩 있잖아요 ㅎㅎ 서방님 댁도 아들만 둘이고.
그러게요. 우리 집엔 아들만 있네요.
아들이든 딸이든 무슨 상관이에요. 괜찮아요~


아들 기운이 강한 집에는 계속 아들만 나온다더니. 정말 그런 건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다고 입으로는 말하면서, 신랑 때문에 아들을 낳게 되었다고 핀잔을 주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앞뒤가 맞지 않았다.




집에 와서도 내 눈치를 살피는 신랑에게 미안해졌다. 우리에게 온 이 아이가 그 자체만으로 소중하고 사랑스럽기만 한데 내가 아까 왜 그런 반응을 보였을까? 귤이에게 미안하고 신랑에게 미안하다. 못난 엄마인 것 같아서 나에게도 좀 실망스럽고 복잡한 감정에 몽롱했다.


돌이켜보니 딸과 함께 보낼 미래를 나도 모르게 많이 상상했던 것 같다. 예쁜 옷을 입히고 머리도 해서 같이 손 잡고 공원 산책을 하고, 좋은 것 구경 다니고, 맛있는 것 먹고.. 그 상상 속 아이의 모습이 왜 딸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엄마와 나눴던 수많은 추억들을 그대로 연상했다. 당시 엄마의 모습이 나로, 엄마의 손을 잡은 나는 내 딸로 투영됐다. 아들과 보낼 미래의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빠들이 그렇게 딸 바보가 된다던데, 신랑에게 딸 키우는 재미를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우리 아들. 평생 “우리 딸”이라는 말만 듣고 살아서 그런지 어색하다. 귤이는 그냥 귤이 자체로 우리에게 왔다. 우리 아들. 아직 입에 착 붙지 않아 어색하지만, 이제 차차 익숙해지겠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서 다행이고 고맙다.


우리 귤이 서운했어? 미안해 귤아. 엄마는 귤이를 항상 기다리고 있어. 25주 후에 건강하게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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