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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 Jul 24. 2019

[임신일기 #18] 16주차 - 감수성 폭발

자신감 하락. 눈물이 펑펑. 이게 우울증인가? 가슴이 두근두근

2019.02.21


모든 생각이 아이에게로 향한다. 이제 위험한 시기는 지났다고 하니 운동을 시작해도 괜찮을까? 뭘 먹을지, 어떤 것을 할지, 어떤 것을 볼지, 지금부터 태교를 해야 할지 말지. 아이가 생기고 난 후 모든 것은 뱃속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평소에 즐겨보던 드라마도 조심스러워진다. 깜짝 놀라거나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것은 원래도 잘 보지 않았는데, 간혹 무심코 돌리던 채널에서 이런 것들을 보면 더욱 심장이 두근거린다. 


책을 좀 읽어보자 싶어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임신, 출산, 육아 관련된 책들을 빌려 보니 모르는 것 투성이다. 잘 사용하지 않던 단어에 익숙해지는 것도 문제지만, 아예 무슨 뜻인지 몰라 하나씩 찾아보느라 시간도 많이 간다. 지금 내 상태가 정상인지 온라인으로 계속 검색을 하고, 새로 숙지한 책 내용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고 하다 보면 하루가 어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몇 주간을 보낸 것 같다. 




2019년은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작년에 시작한 사업을 미비하게나마 궤도에 올리기 위해 정부지원사업에 도전하고, 기술보증, 사무실 이전 등 여러모로 계획을 세웠다. 특히 올해 벤처, 중소기업 투자 예산이 크게 풀린다고 해서 좀 더 기회가 많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문서 작업을 어느 정도 마무리 짓고 있었지만,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혹 사업에 통과하더라도 내가 잘 끝마칠 수 있을까? 교육을 받으러 먼 곳까지 다녀야 하는데 가능할까? 계속되는 평가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를 내가 견딜 수 있을까? 평소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들이었지만, 아이가 생기고 난 후 이상하게 자신감이 없어진다. 내가 좋다고 일을 벌여하다 보면 우리 아이가 잘못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다. 막달까지 일을 하다가 미숙아를 나은 지인, 새벽까지 일을 하다가 안타깝게 아이를 떠나보낸 지인들이 두 손 들고 나를 말렸다. 


일은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시기를 놓쳐서 아이가 잘못되면 후회해도 소용없어.


무서웠다. 나는 뭔가에 집중하면 4~5시간은 거뜬히 꼼짝하지 않는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오로지 일만 한다. 이게 문제였다. 내가 그렇게 한 자세로 오래 앉아 집중하고 일을 해버리면, 우리 아이가 잘 자라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말? 정말 그런 거야? 나 정말 쉬기만 해야 되는 거야? 


나를 오래 본 친구들은 연락을 할 때마다 염려했다. 쉬라고. 꼭 쉬라고. 웬만하면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라고. 처음엔 웃어넘겼는데, 자꾸 들으니 내 스타일대로 하면 정말 아이가 잘못될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쉬었다. 졸리면 자고, 일어나면 먹고, 책을 좀 보다가 또 누워서 쉬고. 거의 두 달이 쉼의 연속이었다. 


위험할 수 있다는 임신 초기가 지났다. 입덧도 끝난 지 좀 되어 식사도 마음껏 한다. 그런데 두 달을 쉬어서 그런가? 계속 육아 서적만 읽어서 그런가? 일에 흥미가 뚝 떨어졌다. 5월 안에 마칠 예정이었던 프로젝트가 중단되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었다. 그럼에도 별로 걱정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좋아하던 일이 별로 재미가 없어졌다. 내 머릿속에는 태교, 출산, 모유수유 이 세 단어가 꽉 들어차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비슷한 분야에서 일을 하는 후배의 소식을 들었다. 해외로 취업을 해 자유롭게 지내는 후배의 모습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랜만에 온라인으로 안부를 물었다. 새 프로젝트에서 자리를 잡아 신이 난 후배가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언니, 임신하셨다면서요. 축하해요!
응~ 고마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안부 인사와 축하였다. 


갑자기.. 눈물이 터져버렸다. 내가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그 짧은 시간에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고자 했던 일들이 모두 어그러졌고, 자꾸만 아이 생각만 하는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은, 뒤쳐진 것 같은 억울함. 앞으로 최소 몇 년은 계속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 온갖 생각들이 뒤섞여 우울하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아직 아이를 낳지도 않고 벌써부터 이런데, 출산 후에는 얼마나 아이만 바라보게 될까? 내 주변에 나처럼 아이에게 집착하지 않고 일상으로 잘 복귀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나는 왜 이럴까? 도대체 나는 왜 이럴까.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기분 전환을 하려고 옷을 든든히 입고 나가 걸었다. 이상하게 며칠 전부터 숨이 찬다.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고 심장이 두근두근 했다. 땅이 나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주저앉고 싶고 눕고 싶었다. 경보 수준으로 걷던 내가 거북이가 되었다. 억울하다. 임신을 했을 뿐인데, 내 몸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 더 걸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또 눈물이 났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체념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몰랐다. 아니 어렴풋이 안다고 생각했을 뿐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왜 엄마가 자식을 위해 무한한 희생을 한다고 했는지. 엄마가 되려면 정말 상상할 수 없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하찮은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일일이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우리 엄마 얼마나 고생 많이 하셨을까. 또 눈물이 났다.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 가장 먼저 "어떡하니"라고 했던 엄마의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아.. 엄마가 그런 느낌이었구나.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잘 이겨내고 새로운 재미를 또 찾아낼 거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과 감정에 잠시 혼란스러울 뿐이다. 걷다 보니 우리 귤이에게 또 너무나 미안해졌다. 


귤아, 엄마는 귤이를 원망하지 않아. 엄마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래. 우리 귤이, 엄마 이해해 줄 거지? 우리 곧 건강하게 만나자. 엄마랑 같이 재밌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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