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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재 Jan 01. 2022

건망증이 복이런가!

< 이제야 철드나 보다>

부부라면 누구나 '건강하게 함께 늙어가는 것이 복'이란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입 밖으로, 글로 나타낸다는 것은 그동안 그것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자백하는 일이다. 신혼초 징글징글하게 안 맞던 사람, 술 먹으면 다음날 몸이 감당이 안되어 일어나지 못하여 결근해야 하는 사람, 아파서 출근 못 한다는 말을 회사에 전화로 전달해야 하는 것, 술 드시지 않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소 아버지는 술 취해서 말하는 사람과는 이야기를 논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맨 정신에 해도 제대로 이야기를 할까 말까 한다 취해서 하는 말들을 어찌 신뢰하겠는가.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결혼을 못 했을 것 같고 안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는 사위 얼굴을 보지도 못했고, 교회에서 만나서 결혼했으니 술로써 내가 그리 마음속을 상하게 할 줄을 누가 알았으랴. 주위에서 아버지가 너무 술을 많이 먹어서 술 안 먹는 사람을 찾아 결혼했다는 권사님들을 보며 아버지가 술을 잘 못 드시는 게 복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까지 했으니~~  밤늦게 집에 오다가 속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했다고 연락이 와서 밤 12시 넘어  병원으로 간 적이 있었다. 아이들 초등학교 때.


결혼 후 한 5년 동안 매일 밤에 결혼하는 꿈을 꾸었든 것 같다. 어~ 나 결혼했는데... 이건 뭐지 아닌데... 몸이 약하니 술을 감당하지 못했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술은 회사생활에서 빠지지 않으니 딸은 코로나로 인해 좋은 건 술집이 일찍 9시에 문 닫는 것이라 할 정도다. 딸이 커서  대학시절 술로 인해 늦게 귀가할 때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속이 쓰리다, 아프다면 혼자서 그 괴로움을 이해하는 남편이었다. 운동하고 가서 술자리에서 양주를 마시고 병원으로 실려갔던 남편, 운동하고 몸의 수분이 빠진 상태에서 양주를 마시면 혈액으로 흡수되어 피의 농도가 너무 진해져서 혈액순환이 잘 안 된다. 35년 여의 시간에서 술로 인해 힘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었겠는가. 추석명절에 시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는데 술에 대한 강박증이 오죽했겠는가. 


이제는 35여 년 동안의 일이 가물거린다. 지금도 술을 마시지만 감당 못하여 와서 쓰러져 자는 것도 여전하지만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   딸들의 술자리도 예전보다는 줄어들었고. 코로나 덕분도 있다.


친정어머니 돌아가실 때 옆에서 힘이 되었고, 늦으막에 살아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도, 이제는 어제 일도 가물거리는 나이가 되었고, 오늘, 돌아가신 부모님을 함께  뵈고 오니까 예전에 날 놀라게 하고, 속상하게 하던 일이 횟수에 비해 덜 기억이 난다. 건망증이 복 이런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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