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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재 Jan 30. 2023

어쩌다 보니 상담사 2

<청춘 회귀(回歸)>

내가 ‘청소년교육과’에 입학했을 때 두 살 차이인 두 딸도 그때 대학교에 입학(한 명이 삼 수)했다. 나의 ‘청교과’ 입학은 이야기할 분위기도 아니었고, 혼자 쉬쉬하는 마음이었다. 몇 년 전부터 P.E.T 부모교육 수련과 구청의 ‘찾아가는 자원봉사 교육-중•고등학교’강의와 동사무소 <방과 후 공부방>에서 주 2회 영어강의도 하느라 나름 바빴기에 나는 가족의 안중에도 없었다.  

    

이사를 하면서 과외도 그만두게 되었으니 약간의 비자금밖에 없었다. 친정엄마는 ‘공부한다’는 나를 보고 아버지 닮았다고 하시며, 한 학기 등록금 (교재까지 50만원 정도)도 주시고, 고등학교 때부터 활동하던 농촌봉사동아리에 등록금 지원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50만원 후원해주었다. 당시 간호사 하던 고교 선배는 ‘일문과’ 다니고 있었는데 후원받은 것 반납했다고 들었다. 봉사동아리라 지원을 해주는 곳이 있어서 나도 숟가락을 얹었던 것이다.

     

편입생이 30여명 정도 모여서 동아리 이름을 짓고 대표, 부대표, 학습 부장을 뽑았는데 학습 부장이 되었다. 미술학원 하는 분, 중국어 강사, 학교 행정직원, 나보다 나이 많으신 한 분 등 있었는데 양장점 하시던 분이었다. 열정이 어마어마했다. 매주 토요일에 공부 모임을 가지고 시험준비도 하고 중간고사때는 며칠간 학교 다니면서 수업 듣고 시험 치고 과제도 내고 모여서 밥도 먹고~


서울지역대학 뚝섬에 모여 수업을 듣는데 그 기분은 고등학교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다음 해는 동아리 신입생도 뽑고, 동아리중에서 ‘최우수상’도 받고 후배들은 ‘대상’도 받았다.     

MT도 참여해보고, 한탄강 리프팅도 해 보고... 50대 중반에 이게 웬 떡인가. 그때가 달빛 환히 비친 초가지붕 위의 밝은 ‘박’이 내 얼굴 아니었을까.  

    

청소년 지도사 면접시험 때 덜덜 떨었던 시간도 지나고, 하이라이트는 청소년 지도사 합격 후 합숙 훈련인 3박 4일. 아줌마에게 공인된 외박, 각 지역의 청소년 지도사들은 청년들보다 중년의 여자들과 수가 더 많은듯 했다. 청년들 앞에 나서지 않고 진행에 묵묵히 적극적으로 따라주는 미덕?으로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이런 시간이 여기서 끝은 아니어야 해 !!!!!!  

    

당시에는 청소년 지도사만 있었고 평생교육사를 따려면 두 과목을 더 들어야 해서 한 학기를 더 다녔다. 과목 신청 시 동기들 도움으로 빠박 재빠른 클릭에 성공했다. 지금은 청소년 지도사 뿐 아니라 청소년 상담사, 사회복지사( 2011~17 신입생만 사회복지 연계 전공자 취득 가능), 직업상담사도 공부하면 가능하다. 동기 중 과목연계로 사회복지사 취득 경우도 있었다.  

    

졸업논문 쓴다고 대표 주관으로 국회 도서관도 가보고, ‘동아리 논문집’도 만들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나이에도 아무 생각 없이 해맑았다.  동아리 졸업반 대표는 한양공대 대학원 나온 건축회사 운영하는 분인데 청소년을 도우려 했으나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해서 편입으로 ‘청교과’ 오신 분이다.


졸업할 때 대학원 가라고 나와 동기에게 ‘코칭 설명회’까지 따라와서 추천해 주었다. 대학원 갈 형편이 아니라고, ‘딸 둘이 대학 다닌다..’등의 이야기에도 아랑곳없이 강요?와 지지해줌으로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슬금슬금 대학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대학원 지원 원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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