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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재 Jan 29. 2023

어쩌다 보니 상담사 1

<2010학번 >

영문과를 1987년에 졸업하고 큰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과외를 시작했다. 첫 과외는 큰 딸이 뱃속에 있을 때 그때가 졸업반이었다. 중1이었던 여학생은 내 속을 무지 썩였으나 첫 정이라 열심히 가르쳤고, 큰딸이 커서도 집에 와서 이뻐해 주었다. 옆집에 살던, 큰딸과 동갑내기 남자애와 같이 가르쳤는데 장사하는 집 아들이라 저녁까지 챙겨주기도 했다.


지인의 소개로 시작하여 그 친구들을 가르치면서 지경을 넓혀가고, 동네에서 서서히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영어 중등교원 자격증이 있어 걸어놓고 시작했으며 김대중 대통령 때는 과외 교습소 신고도 하면서 9명 가르쳤다. (10명 넘으면 학원으로 등록해야 한다고 했던가?)


그때 공부하던 여학생이 엄마와 갈등이 있었는데, 공부하는데 엄마가 쫓아와서 '넌 공부할 필요가 없다'면서 끌고 나가는 일도 있었고, 형제간에 내 앞에서 치고받고 하는 일도 있었다. 부모로서, 교사로서의 역할,  청소년에 대한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 당시 과외 선생으로 17년 정도 되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인 작은 딸 담임선생님이 학교에서 '부모교육'이 있는데 참여하여 공부를 계속하면 자격증이 나오는 것인데'라고 권유하였다. 과외 학생들이 오는 시간은 5시 이후니 오후 1시부터 3시간 하는 것이라 시간이 가능했다.


두 반으로 나누어 3시간씩 8주를 하는데, 과제는 '자녀와 있었던 일을 공감해 주며 지낸 일 '을 프린트해서 발표하는 게 매주 있었다. 첫날 24명 중 과제를 해온 사람이 3명 정도. 8주 끝날 때까지 과제를 해온 사람은 나 혼자였다. 과제는 '당연히 하는것'이라고 생각했고, 프린트에서 구워낸 따끈따근한  A4 용지를 받아든 손은 설레는 마음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선생님이 24명 중 나 한 사람을 건진 거였고 나는 그 후 부모 교육을 <한국 심리 상담 연구소>에서 216시간 받으며 2년 만에 '효과적인 부모 역할' Parent Effectiveness Trainning ( P.ET) 강사 자격증을 받았다. 그 후 그분이 나의 상담사 멘토며, P.ET 강사로서의 길도 열어주신 분이다.  P.ET 강사로 코로나 전까지 활동했었다.


 같이 공부했던 P.E.T 강사들이 대학원을 가라고 하였지만 졸업한 지 오래되었기에 자신이 없고, 청소년에 대한 공부는 하고 싶어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과학대학의 '교육학과'의 편입생 모집 '청소년 전공'에 응시하며 합격하였다. 당시 방통대는 서류만 넣으면 다 된다는 말이 있었지만, 명문대 출신인데 학점이 나쁘지않았는데도 떨어진 사람이 있다며 P.E.T 강사들이 놀라워했다. 그다음 해 '청소년 전공'이었던 과는 [청소년 교육과]로 되면서 나는 2008년 [청소년 교육과]의  1기가 되었다.(졸업은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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