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재 Jan 31. 2023

어쩌다 보니 상담사 3

<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특수 대학원 입학원서 A는 집 가까운 곳의 상담심리전공, B는 동기가 추천해 준 가족상담전공, C는 청소년 전공으로 선택했다. 

     

A 대학원은 필기와 면접을 봤다. 지원자는 현역들과 3, 40대들로 보였다. 면접실에 10명씩 들어갔지만 몇 명만 질문을 받았다. 눈•비에 바람까지 부는 추운 날 대기하면서 부들부들 떨던 기억이 난다. B 대학원은 면접만 보았는데 지원자가 많았지만 교수님들이 왜 선택했는가, 공부와 활동 상황에 대한 것을 질문하였다. 합격 발표 후 떨어진 사람들의 항의가 많았는데 '상담받을 사람과 상담할 사람을 구분했다'는 말이 있었다. 확실한 것은 모른다. B 대학원은 다음 해 필기와 면접으로 전형 방법이 바뀌었다.  C 대학원은 내게 등록금을 누가 낼 것인가, 청년들에게는 직장 다녀서 등록금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물었다. 정답은 '남편이나 부모가 뒷바라지하는 것'이었다. 


대학원 수업은 화•목반과 토요일 종일반이 있었다. 주중에는 부모교육 강의와 방통대 동기가 중2인 ADHD 아들의 공부를 부탁해서 토요반을 선택했다. 지방에서 특히 속초나 제주도에서 1주일에 한 번 온다는 동기도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해서 저녁 6시에 수업이 끝난 것으로 기억된다. 


점심 먹는 시간에 우연히 뭉치게 된 54년생 둘, 57년생과 47년생 네 명이 졸업할 때까지 서로 도우고, 의지하며 전문상담사 자격증 획득할 때까지 뭉쳤다.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순발력은 없었으나 열정과 노력은 지지 않았다. 교실 앞쪽에 앉아서 뒤의 동기 얼굴은 잘 몰랐는데, 47년생 선생님은 일부러 얼굴을 익히기 위해 중간에 앉으셨다. 47년생 선생님은 보충 교재를 살 때 내 것까지 사주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난 1년만 다니고 휴학계를 낼 생각으로 대학원을 진학하였다. '부모교육 '강의하는데 학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대학원 휴학 중'으로 강의를 하려는 생각이었다. A, C 대학원은 등록금이 600만 원이고 B 대학원은 등록금이 반이었다. 하나님이 내 형편에 맞는 곳으로 인도하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3학기에 대학원 원우회 부회장이 되면서 계속 대학원을 다니게 되고(강의료, 가지고 있던 비자금, 후배 후원금)  마지막 5학기는 대학생이 3명(두 딸과 나)이면 '분할등록'을 할 수 있게 되어 두 번으로 나누어 내게 되면서 졸업을 하게 된다.      


주중에 <청교과> 동기들의 도움으로 문체부에서 주관하는 <게임 과몰입 강의>가 있어서 서울과 경기도 주변 초•중•고에서 많이 하였다. 강의료도 괜찮았는데 돈이 제때 나오지 않아서 등록금 낼 때 마지막까지 애가 탔던 것으로 기억된다.

     

남편은 방통대 <청교과> 다닐 때도 학교 다니는 줄 몰랐고, '부모교육' 첫 강의 때 ‘부모교육’으로 돈을 버니까 그때 이야기했다. 대학원 다닐 때도 몰랐는데 ‘졸업여행’ 갈 때는 이야기 안 할 수가 없었다. 2박 3일이었는데 20여 명쯤 갔던 것으로 기억난다. 고등학교 때 동아리에서 놀러 가던 기분이었다. 


2010 학번들이 나이가 20~50대로 분포도가 넓었다. 현직에 근무하는 사람들과 상담 현장에서 활동하는 분들, 사회 복지대학원 졸업 후 다시 입학, 다른 대학교에서 상담연구원으로 공부하면서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던 사람들이 다시 대학원으로 입학한 경우도 많았다. 


대학원 졸업식에 친정어머니, 남편, 두 딸들, 동생 가족들이 와서 축하해 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보니 상담사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