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된밥에 물 뿌리는 영국인의 마음으로
지인과 밖에서 솥밥을 먹은적 있어요. 갓지어 김이 폴폴나는 밥에 양념간장을 넣고 수저로 살살 비벼서 전복을 올려 먹으니 맛있더라구요. 따끈한 밥이 씹을수록 입안에서 달달해지고 감칠맛 나는 해산물이 쫄깃한 식감을 선사했어요. 맛있게 먹다보니 가족들 생각이 나더라구요.
하지만 웨이팅 줄이 너무 길어서 연세지긋하신 부모님 모시고 오기에는 힘들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집에서 만들어봤습니다. 기왕 만드는 김에 혈당이 덜 오르는 솥밥을 만들어 볼게요.
당뇨가 있으신 분들은 이미 다들 잘 아시겠지만, 밥을 지어 6시간 이상 냉장보관 하면 저항성전분이 생겨 식사시 혈당을 덜 올린다고해요. 저희집에서도 일주일치 밥을 미리 지어 냉장보관했다가 냉동실로 옮겨두고 먹을때마다 데워먹어요. 하지만 데워먹는 밥맛은 뭔가 조금 허전하고 아쉬울때가 있어요. 솥에 갓지은 밥을 주걱으로 살살 섞어준다음 그릇에 소복하게 담아 먹는 맛을 즐겨보자구요.
재료
주재료 : 백미, 잡곡, 굴비
부재료 : 노루궁뎅이버섯, 우엉, 파
도구 : 1-2인용 밥솥, 냄비
마음의 준비 : 다 된 밥에 물 뿌리는 영국인의 자세
재료는 유동적이에요. 밥지을 쌀과 비벼먹을 고기 또는 해산물, 채소가 있으면 됩니다. 저희는 엄마가 좋아하시는 굴비를 준비했어요. 비늘과 내장없이 깨끗하게 손질해줍니다. 염장된 굴비의 짠기를 빼기위해 쌀뜨물에 한시간 정도 담가줄게요.
처음에는 굴비를 콩기름에 구웠어요. 노릇노릇 잘 구워져 예쁜 색이 났지만 비렸어요. 이대로 솥밥에 올리기는 어렵겠다 싶어서 엄마께 여쭤보니, 참기름을 발라 구우면 비린내가 잡힌다고 알려주셨어요. 굴비를 미리 손질해 냉동실에 얼려둘때도 참기름을 발라 보관하면 좋아요.
노루궁뎅이버섯은 새끼노루의 궁뎅이가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을정도로 보송보송하고 깨물어보고싶게 생겼어요. 폭신한 식감에 맛은 무맛이에요. 은은한 버섯향이 나기는 하지만 정말 은은해서 맛이 없는것처럼 느껴져요. 적당한 크기로 찢어놓아요. 노루궁뎅이버섯은 수분이 많아서 솥밥에 넣는다면 밥물양을 적게 잡는게 좋습니다.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과 풍미를 위해 우엉도 넣어줄게요. 우엉은 익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미리익혀둔 상태에서 솥밥에 올리거나, 잘게 채썰어 올리는게 좋겠습니다.
이제 밥을 지어볼게요. 일반 밥짓기 과정과는 조금 다를거에요. 저당밥을 지을거거든요. 저당밥을 짓는 원리는 다음과 같아요. 쌀과 물이 끓으면서 당질물을 만들면 그걸 걸러내서 당함유량이 적은 밥을 지을 수 있어요.
당뇨인을 위한 솥밥도 당질을 걸러내면 되겠죠.
냄비에 불린 쌀과 잡곡을 부어요. 물도 부어줍니다. 물이 왜 이렇게 많지? 죽되겠는데 싶은정도보다 더 넣어요. 쌀이 끓고 물과 섞여 당질을 내보냅니다. 보통같으면 수분은 날아가고 당질물이 다시 쌀을 코팅해 달달한 밥이 되겠지만, 우리는 그 꼴을 두고보지 않을거에요.
물이 뿌옇게 탁해지면 불을 끕니다.
잠시 차분히 서서 마음의 준비를 해요.
지금부터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쌀밥지을줄 모르는 영국인이다. 암시를 걸고 망설임없이 쌀을 채반에 쏟아요. 찬물에 씻어요. 이때 빙의가 덜되면 한국인의 영혼이 의식을 치고 올라와 다된밥에 물뿌리기를 거부 할 수 있어요. 영국인 빙의가 어렵다면 너구리에 빙의해보세요. 솜사탕 씻어먹는 너구리처럼 밥을 씻어먹으면 당질이 줄어듭니다.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췌장 크기가 작다는 연구결과가 있대요. 그래서 당뇨에 더 취약하다고. 그니까 뭐다. 코리안인 우리가 영국인보다 더 적극적으로 밥에 물을 뿌려야한다. 아니면 저당밥솥을 사거나요.
이때 설익은 밥을 생쌀 씻을때처럼 박박 씻으면 쌀이 으깨져서 떡밥이 되요. 힘을 빼고 대강 씻어요.
채반에 담아 물기를 뺴는 동안 냄비에 육수를 끓입니다. 요즘 한알육수가 잘나와서 이걸 넣으면 좋을거같아요. 물기를 뺀 거의 다 된 밥에 육수를 부어줍니다. 이 단계에서 밥물 양을 다시 잡는게 어려웠는데요. 여러번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밥물을 쌀의 반정도 넣는 레시피로 최종 결정했어요. 저랑 엄마가 먹기에는 밥맛이 딱 좋았는데, 된밥 또는 진밥 기호에 따라 물 양을 조절하면 좋을거같아요.
뚜껑을 덮어 중간불로 익혀줍니다. 10분정도 더 끓이다가 참기름에 구운 굴비와 노루궁뎅이버섯 우엉을 얹어 뚜껑을덮고 5분간 더 끓이고, 불을 끈 다음 3분정도 뜸을 들여줍니다.
솥밥이 완성되었어요. 주걱으로 살살 섞어서 밥그릇에 옮겨담아줄게요. 양념한 김이나 감태에 싸 먹으면 꿀맛이에요. 굴비의 감칠맛과 우엉의 아삭한 식감이 어우러져 고소한 밥이 완성됐습니다. 저한테는 많이 싱거워서 갈치속젓에 쌈장을 조금 섞어 밥에 얹어먹었어요.
집에서 만드실 때 좋아하는 재료를 넣어 한번 시도해보세요. 소고기, 전복, 도미, 금태, 명란젓, 성게알 등등 솥밥에 넣을 재료는 다양해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한 솥밥 드시며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