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도 기쁘지 않다, 탄핵을 바라보며 출구전략 찾기
정당의 부활과 다당제 내각을 생각하며
[학부생의 사견이자, 가장 진심인 고민]
솔직히 탄핵소추안 가결을 보고 환호할 기분은 아니다. 단지 ‘갈 사람은 가는게 맞다’는 이야기를 친구와 나눴다.
일단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대통령직을 붙잡고 민주주의와 공화국을 무너트리는 일은 막았다.
결국 탄핵에 대해 계속 뇌까리게 되는 것은 민주주의와 정당, 책임성과 반응성을 어떻게 여겨야 하는지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우선 대통령제와 실질적 양당, 단순다수 소선거구제가 유지되는 이상 대한민국에 제3지대나 이념형 정당이 존재하기 어렵다. 일관적으로 선거구 개혁을 외쳐도 실질적 양당제가 이를 제한하게 되고, 챗바퀴 돌 듯 유권자는 양당에 표를 던진다.
이것이 사표의 문제에서 기인하는지, 영향력과 정책 역량 차이에서 오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결국 어떤 논의를 거쳐도 ‘사람들은 양당을 찍는다’의 문제의 본질을 깰 수 없다.
강한 양당이 미국의 양당처럼 내부 스펙트럼이 명확하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한국 특유의 4대 균열, 북한의 존재, 역사적 갈등이 서로 미친 듯이 교차하고 영향을 주다 보니 ‘우리 정당이 정권을 창출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미친 실물 정치가 만들어졌다.
미친 실물 정치는 다시 유권자에게 강한 영향을 준다. 승리하지 못하면, 상대 정당이 승리하면 모든게 망가진다고.
이런 심리가 극명하게 대립하고, 실제로 현실화되는 순간은 대통령 선거다.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비판하고 비꼬지 않나. 내부 스펙트럼이 없어서, 한국 특유의 갈등 양상에 힘입어서, 역사적 경험에 의거하며…. 수십가지 이유가 들러붙어서 ‘마땅한 토의나 다양성은 없는 무식하게 힘만 강한 정당기율’이 형성된다.
정당기율은 기본적으로 정당 구성원들의 총의이자, 끝없는 내부에서의 인정투쟁과 챌린지를 거쳐 용광로에서 제련된 ‘강하고 뚜렷한 비전’이어야 바람직하지만 국내 정당은 이같은 과정이 부재하거나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부족장(라고 말하고 싶다)’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탄핵을 보면 생각이 참 복잡해진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이냐, 무엇을 바로잡아야 정상화가 가능한가. 무너진 균형에서 보수는 무엇을 해야하나.
앞서 이야기한 문제들을 그대로 나열해놓고, 현재의 지형을 위에 얹었을 때 생각이 스치는 지점은 선거제도 개혁과 내각제로의 변화로 보이긴 한다.
선거제도 개혁은 ‘선거구’와 ‘선출 방식’을 바꾸면서 시작된다.
사견으로는 광역단위의 선거구 획정이 필요하고 선출 방식에서도 단순다수 소선거구제에서 대선거구로 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유는 다당제를 되살리기 위함이다. 광역 선거구에서 정당이 중심이 될지, 후보자가 중심이 될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정당의 부활과 소신 투표의 여지가 열려있는 광역단위 선거는 사표 논쟁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이념형 정당이 의석을 가져가기 비교적 수월하다.
양당 내부에 스펙트럼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인 ‘선거 지면 끝장’이라는 의식을 근본적으로 깨는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내각제로의 변화는 ‘대통령’이라는 제왕을 없애고 정당과 의회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통치를 위한 협치’를 가져온다. 이념 정당이 정책 능력을 갖추고, 쓸데없이 이뤄지던 이합집산이 아닌 ‘실질 통치를 위한 협의의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만들어야한다.
내각제가 만능 해결책은 아닐지언정, 현재 한국 정치에 마땅한 처방이 있다면 양당제와 제왕적 대통령를 혁파하는 다당제 중심의 내각제로 이행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중임제 논의에서 벗어나 내각제로의 이행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이슈를 선점하는 일이다. ‘이재명이 대통령 출마 안하면요’라는 짜치는 조건을 달게 아니라, 이미 패배한 게임에서 룰을 바꾸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대통령제 하에서 국민의힘, 보수정당이 무너졌고, 잘못했고, 잘하겠다라고 적당한 레토릭을 구사하면서 멸망 직전의 국면을 어떻게든 피해야할 것 아닌가.
다수석을 가진 민주당과 다른 야당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미지수지만, 군소정당과 민주당 독재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굳이 양당에 속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지금의 민주당 지지자들도 크게 달라진다. 정의당이 죽은건 정의당이 똥볼을 차서지만, 그 뿌리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패악질을 떤 민주당과 국민의힘(자유한국당)의 문제도 있었다.
용혜인의 기본소득당처럼 똑똑하게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비전을 관철하는 군소정당들도 분명 있다. 생각보다 집권경험 없고 의정활동 경험치가 부족한 정당들이 실력이 부족하지는 않다. 오히려 똑똑하면 더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민주주의가 다수의 폭정이 되지 않으려면 정당의 역할이 중요하고, 내부투쟁과 인정투쟁의 각축장이 정당 내부에서 먼저 벌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대중의 감정에 좌지우지되면 언제든 다수의 전제정을 마주하게 된다.
레비츠키가 말했던 것처럼, 편견과 비합리적 선동으로 당파적 갈등을 극단적으로 키우는 정치가 민주주의를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파괴한다. 솔직히 말해서 비합리적 선동과 당파적 갈등에 가장 골몰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정당이 어디인지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정치엔 선악이 없다. 세상만사가 그렇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나은 것들을 찾는 방법이 있다. 누가 정치를 불합리하게 이끄는지, 비합리적인 세계관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지 자신의 ‘시각’을 갈고닦는 것이 중요한 시기가 아닐까. 그래서 여전히 정치 뉴스를 보면 머리가 아프다. 과연 무엇이 더 합리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