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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회훈 Sep 26. 2024

'팔레스타인 점령 중단' 국제기구 결정 외면하는 언론

본 칼럼은 미디어비평 FNO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4. 09. 24

'팔레스타인 점령 중단'... 국제기구 결정 외면하는 한국 언론


지난 7월 21일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역 점령은 불법이며 점령 행위를 최대한 빨리 중단하도록 권고했다. 이어 지난 18일 유엔 총회 또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불법 점령을 12개월 이내에 중단하라는 내용의 결의를 채택했다. ICJ의 판결과 유엔 총회의 결의 모두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권고적 성격이지만, 두 건 모두 이스라엘의 행위가 국제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는 국제사회 ‘합의’의 결과다.

 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빅카인즈를 통해 지난 7월 14일부터 7월 28일까지 주요 언론 17개 사(전국 일간지 △경향신문 △국민일보 △내일신문 △동아일보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아시아투데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방송사 △KBS △MBC △OBS △SBS △YTN)의 보도를 분석한 결과, 키워드 ‘국제사법재판소 또는 ICJ’를 포함하는 기사는 단 5건이었다. 해당 내용을 다룬 언론사는 보도 순서대로 YTN, 경향신문, 중앙일보, 한겨레 4곳이었다.

 같은 기준으로 지난 9월 11일부터 9월 23일까지 키워드 ‘유엔총회 또는 불법 점령’을 하나라도 포함한 보도는 35건이었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유엔총회의 결의안을 다룬 보도는 순서대로 △조선일보 △문화일보 △중앙일보 △내일신문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OBS 8개 사의 9건의 보도가 전부였다.

 뉴스의 가치를 판단하고, 어떤 뉴스를 전달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각 언론사의 고유한 권한이다. 하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스라엘-헤즈볼라 사이의 피해 규모와 전황은 시시각각 추적하면서도 정작 국제사회가 제시하고 있는 주요한 변곡점들에 대한 보도가 적은 것은 의아한 결과였다. 키워드 선정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혹여 빅카인즈의 수집 결과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각 언론사 홈페이지를 통해 키워드를 검색해본 결과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번 유엔 결의안에는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 점령을 1년 내로 끝내라고 요구하는 내용 이외에도 구체적인 사항들을 담고 있다. 당사국인 팔레스타인이 초안을 작성한 결의안은 △팔레스타인 점령지의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생산된 모든 제품을 유엔 회원국에서 수입 중단할 것 △팔레스타인 점령지에 사용될 우려가 있는 무기, 탄약 등 관련 장비를 이스라엘에 제공 또는 이전하는 것을 중단할 것 등을 포함하고 있다.

 상기했던 것처럼, ICJ나 유엔총회의 결의는 국제법상 구속력을 가지지 못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결의가 아니면, 구체적으로 실현될 여지는 적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유엔 총회에서 구체적인 시한을 제시하며 불법 점령을 끝내도록 결의했다는 것은 국제정치 역사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결과임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나 표결에 참여한 181개 회원국 중 124개국이 찬성을, 14개국만이 반대해 찬성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한국을 포함한 43개국은 기권을 선택했다.

 투표 결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더욱 중대한 사안으로 볼 여지도 충분하다. 미국, 이스라엘 등 14개국이 반대를 선택했는데 미국과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서구 진영은 단 한 곳도 없다. 유럽 동구의 체코와 헝가리, 중남미의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가 반대표를 행사했고 아프리카의 말라위, 태평양 도서국 7곳이 전부다. 심지어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인 중국, 러시아가 예상대로 찬성을 행사한 데 이어 프랑스가 찬성표를 행사했다. 영국은 기권을 선택했지만, 현재 영국 역시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안보리 내부의 무게 추는 찬성에 완전히 기울어진 모양새다.

 G7으로 좁혀 살펴봐도 반대는 미국뿐이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는 기권을 행사했고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과 프랑스는 결의안에 찬성했다. 온 세계가 이스라엘의 대량 살상을 규탄하고, 미국의 위선적인 모습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각 언론사의 보도에 대한 조사 이후 혹시 키워드 설정이 잘못됐는지, 다른 조건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반나절을 헤메고 나서야 해당 사안에 대한 보도가 현저히 적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나치기엔 사안은 중대했고, 그저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서기엔 논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주요 매체 언론들의 보도가 더 풍부하고 다양한 가치를 담을수록 진실과 다수의 이익에 더욱 부합할 수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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