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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회훈 Apr 23. 2023

인간성 투쟁, 보통인간을 위하여

<인간 실격>,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단면을 떠올리며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의 첫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수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필자는 작품 속에서 주인공이 보이는 '익살'로부터 끝내 세상에 의해 파괴되는 그의 마지막 순수성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삶을 돌아봤다. 작품에서 말하는 익살은 필자에게 있어서는 '가면'으로 치환됐다.


<드래곤라자>의 대사에서, 그 가면에 대한 아이디어는 다시금 정립됐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나'란 단수형이 아니고, 각자의 삶과 그 모든 상황 속에서 파편화된 수많은 스스로를 가질 수밖에 없다. 주관적으로 형성하고 판단하는 '자아'는 존재하겠지만, 사회적 상황에서의 개인은 다양한 분절과 왜곡, 그리고 '가면'으로 나타난다.


필자에 세계는 '가면을 쓰고 마주하는 세계', 그리고 '가면을 내려놓은 세계' 둘로 나뉜다. 어쩌면, 사회를 형성하는 개인으로서 누구나 마주했을 법한 고민일지도 모른다. 나를 판단하는 스스로의 자아와 메타인지를 벗어나서, 상황과 맥락에 맞게 만들어낸 가면을 뒤집어쓰고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는 작업의 무한한 반복이 삶 에서 무한히 반복된다. 마치 뫼비우스의 굴레처럼. 필자의 세계관은 가면에 근거하고, 동시에 준거한다.


가면 없이 세상을 마주하기란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불특정다수에게 내보이는 것이 공포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필자는 내가 원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동시에 세계에 적응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가면을 뒤집어쓴 채로 수많은 사회 속으로 나아갔다.


가면을 쓰고 마주한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얻게 된 결론은 조금은 난감했다. 그렇게 꽁꽁 숨긴다고 숨긴 민낯을 꿰뚫어 보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 가면 뒤의 세계를 열고자 했고, 이내 나체의 스스로를 내보이는 일로 이어졌다.


사상의 나체, 그리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자아를 내보일 수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해방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성'과 '보통인간'으로의 족쇄가 강요됐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다시금 '나는 단수가 아니다'를 떠올린다. 누군가에게 난 은인일 수도 있고, 악인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증오의 대상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각자의 다양한 단면 속에서의 다층적인 나를 일반화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저 나의 민낯을 궁금해했던 사람들, 그리고 나의 민낯을 이해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하나의 사회적 족쇄를 받아들이며 '그래도 내 사람들에겐 선한 이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내려놓는다. 


해방과 동시에 찾아온 족쇄는 필자의 정체성과 자기혐오와 정면으로 부딪힌다. 족쇄는 '보통인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사회성을 강요하고 강화하지만, 내 내면에 녹아있는 이기적 자아와 세상에 대한 혐오는 양존하기 어려운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다양한 타인이지만, 그 타인을 규정하는 왜곡적이고 폭력적인 틀을 벗어나는 일은 여전히 당면한 과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주인공인 토마시는 부모, 아내, 심지어는 자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배반하고 스스로의 욕구와 '본심'에 충실한 사람이다. <안나카레니나>를 든 테레사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토마시는 테레사를 들임으로 스스로에게 족쇄를 허용했지만, 모든 것을 배반한 스스로의 삶까지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테레사를 위한 사랑과는 별개로 존재했으나, 마찬가지로 그것은 양립될 수 없는 망가진 세계관이었다. 결국 토마시는 존재할 수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끝까지 견지했고, 이를 통해 본인의 삶과 테레사의 삶을 모두 파괴했다.


존재할 수 없는 세계를 탐한 토마시의 최후는 씁쓸한 끝맛을 남긴다. 그것이 참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스스로의 선택이었다고 할지라도,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토마시의 세계는 끝끝내 왜곡되고 파괴된 인간 실격의 생애가 아니었는가 싶다.


작 중의 또 다른 주인공 사비나는 상기된 세계의 바깥에 존재한다. 사비나는 모든 규정과 족쇄를 거부하고, 자신의 생명력과 욕구만을 위해 그녀만의 가면을 쓰고 있다. 그녀는 가면을 부정하지 않았고, 동시에 그 가면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 줄 아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족쇄를 거부함으로써 보통인간과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성을 정면으로 배격했고, 그 결과로 프란츠의 세계와 목숨을 모두 파괴한다.


그 책임의 주체가 사비나는 아닐지라도, 사비나는 톡시틱한 자아를 세계에 내비치고 이를 타인에게 전이하면서 그 인간성의 파괴까지도 끌어낸 것이다. 작품은 인간의 욕망과 쾌락에 대한 탐구, 그리고 자유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보통인간'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그저 아편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의 선택과 방향성,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물음이 남는다. 필자의 인간성에 대한 투쟁과 보통인간에 대한 염원은 사실 '자아'가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내 세계의 안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포기하고 족쇄를 찬 결정이라고 느낀다.


필자는 나의 세계를 사랑하고, 나의 사람들을 사랑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채워진 '사회성'이라는 족쇄를 저주하고 혐오한다. 그것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나를 허공에서 지탱하며 고통주지만, 실제로 나의 추락을 막는 유일한 안전장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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