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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회훈 Nov 15. 2023

대학살의 시대...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미디어비평 FNO 칼럼

선악 논쟁 속 가려지는 민간인 피해
'악마화' 끝에 남는 것은 또 다른 전쟁의 씨앗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지난 6일 가자지구에서 발표된 사망자 수는 1만 명을 넘었다. 발표에 따르면 그중 4000여 명 이상이 아이들이다. 1973년의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의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 이미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자 처벌’이 됐다.



 학살과 처벌은 죽은 자들을 기리는 진혼곡이 될 수 없고, 또 다른 전쟁의 씨앗이 된다. 이스라엘이 흩뿌린 백린탄은 가자지구에 강하게 뿌리 내릴 다음 전쟁의 시발점으로 자라날지 모른다. 찰스 브라운 미국 합참의장은 ‘민간인 사상자가 많아지면 미래의 하마스 무장 세력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스라엘의 일부 지도자들 또한 “우리는 4~5년 안에 그들의 아들들과 싸우게 될 것”임을 경고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가자지구의 200만 주민이 전염병 위험에 처해 있음을 호소했다. 아무런 힘없이 굶주리고 피를 흘리는 것은 민간인들뿐이다. 제3국들은 그저 관망하며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 범죄를 묵인하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끝내 가자지구의 병원과 학교에 직접 포탄을 날렸다. 다른 병원은 탱크가 진입해 병원을 짓밟았다. 국제인도법상 병원은 전쟁 중에도 공격이 금지돼 있다. 제네바협약에 따라 병원을 공격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곧 전쟁 범죄다. 난민촌 인근의 인도네시아 병원의 병원장은 "세계는 병원을 향한 이러한 잔혹 행위에도 불구하고 눈이 멀고 귀가 먹은 것처럼 외면하고 있다"라고 외신에 호소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축출하고 군사 작전을 완수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할 뿐이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하루에 4시간씩만 교전을 일시 중지하겠다고 나선 것이 전부다. 



 유엔은 지난달 27일 총회에서 결의안을 채택하고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했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개입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가자지구가 아이들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서방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 서방 국가들은 고개를 돌렸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인도주의라는 보편가치’를 관철하겠다며 핏대를 올리던 국가들의 위선적 태도에 아랍 국가들은 더욱 분노했다.
 연일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지원과 필요성을 언급할 뿐, 이스라엘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따져 묻는 서방 국가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은 이스라엘에 무기를 비롯한 물자를 공급하면서 직접적으로 휴전과는 반대되는 행보를 보였다. 인도적 일시 교전 중단을 외치는 대외적인 모습과는 별개로, 가자지구의 난민촌에 폭격이 이어지던 당일 이스라엘과의 무기 거래를 승인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에 따르면 거래된 품목은 일반 폭탄의 타격 정밀도를 높여 유도탄으로 바꿔주는 장비다. 같은 날 가자지구 난민촌에서는 민간인 수백 명이 이스라엘의 폭격에 목숨을 잃었다. 



 한국 또한 이스라엘의 그림자에 숨었다. 황준국 주유엔대사는 유엔 총회에서 “하마스를 규탄하고, 하마스의 인질을 즉각 석방해야 한다는 것은 결의안에 반드시 담겨야 할 핵심적인 내용이며 한국은 정당화할 수 없는 테러 행위를 가장 강력한 표현을 동원해 규탄한다”라고 발언했다. 하마스에 대한 규탄에 대해서 의견을 밝혔지만,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잔혹성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분명 하마스가 벌인 명백한 테러와 민간인 납치는 반드시 척결되어야 할 죄악이다. 자국의 안보를 관철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자구적인 행위와 이를 넘어서는 보복에 대해서 국제사회가 일방적인 비판을 가하지 못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전쟁에서 선악을 구별하는 일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테러리스트에 대한 공격은 이미 충분하다. 이스라엘이 가하는 보복으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오히려 보다 깊은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미래에 다가올 재앙의 크기를 키워낼 뿐이다. 



이에 지난 11일(현지시간) 개최된 아랍 • 이슬람 특별 정상회의에서 사우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이번 정상회의는 예외적이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열리고 있다"라며 "팔레스타인에서 우리 형제자매들이 겪고 있는 이 잔인한 전쟁을 단호히 거부한다"라고 규탄했다. 또한 모든 군사 작전의 중지와 모든 포로의 석방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국제사회와 유엔 안보리에 대한 비판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우리 앞에 놓인 건 인도주의적 재앙으로, 국제사회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스라엘의 노골적인 국제법 위반을 종식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세계의 이중잣대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서방의 결단을 촉구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달 10일 오후 3시(한국 시간 11일 오전 5시)에 이스라엘과 하마스 충돌에 관한 회의를 개최하고 진행 중이지만, 전쟁 중단을 결의할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바로 직전 개최된 안보리에서는 분쟁과 관련한 결의안이 네 차례 제안됐지만 미국, 중국,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결의안 채택에 실패했다. 유엔 총회의 결의엔 구속력이 없지만, 안보리에서의 결정과 결의는 유엔 회원국에 구속력을 가지기 때문에 안보리의 선택에 많은 것이 걸려있는 현실이다.



 여전히 종은 울리고, 가자지구에는 공습경보가 울린다. 국제사회의 진실한 대응이 없다면 누구도 종을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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