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0 파리
런던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에 왔다.
깜깜한 해저 터널을 뚫고 국경을 넘고 있다는 순간이 생경했다.
나는 다시 온전히 혼자가 되었고 절반이 넘게 남은 여행을 스스로 이끌어 나가야 했다.
앞서 파리의 악명 높은 치안과 불어에 대한 압박감이 몸을 움츠려 들게 했다.
지갑이 든 작은 크로스백과 캐리어를 꼭 붙들고 숙소로 이동했다.
내가 고른 숙소는 République역 근처였다.
평범한 하층민들과 유색인종들이 많이 살고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는 술집과 밥집이 많은 복닥 복닥 한 동네.
그리고 며칠 전 무자비한 총기 테러가 일어났던 동네.
동네를 설명하기 위한 단어들이 모두 무시무시하다.
한국에 살면서 치안과 총기라는 단어를 쓸 일이 별로 없어서 그랬을까.
이 나라, 이 동네의 일을 그저 남의 일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나는 이 동네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역에서 캐리어를 계단으로 들고 오느라 욕이 입 밖으로 나왔고
광장의 우뚝 선 동상과 추모의 메시지들을 보고 내가 한없이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2015년의 그들도 자신들이 행한 테러를 혁명으로 불렀을까.
자유와 권리를 위한 혁명을 기억하기 위한 장소가 나에게는 무고한 희생이 깃든 마음 아픈 장소로 기억된다.
내 방은 3인실 도미토리였는데 침대가 너무 오밀조밀 붙어있어서 당황스러웠다.
예약이 없길 바랬지만 두 명의 미국인 커플이 합류했다.
커플이 아닌 저스트 프렌드라고 말했지만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듯 보였다.
그들과 해브 어 굿데이 인사를 나누고 길을 나섰다.
긴장돼서 보지 못했던 파리만의 런던과는 다른 색감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레지구를 지나 퐁피두 센터로 걸어가기로 했다.
메종 키츠네에 들려 사고 싶었던 맨투맨을 매우 비싸게 샀고
아는 브랜드 매장 몇 군데를 둘러보며 계속 걸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멀끔하고 예쁘고 잘생겼다.
파리지앵이라는 게 이런 건가.
여행지에서 한없이 소심해지고 자괴감이 들 때가 수많은 사람 중에 나만 여행 처음 온 사람처럼 느껴질 때다.
다리는 이미 퉁퉁 부어있었지만 예쁜 옷이랑 구두가 신고 싶었다.
파리지앵 사이에서 계속 겉도는 듯한 마음 때문인지 종일 먹은 것도 없는데 소화가 잘 안됐다.
꾸역꾸역 걸어서 퐁피두에 도착했다.
짐 검사 때문에 입장 줄이 엄청 길었다. 조금 더 서둘러 올 것 그랬다.
퐁피두의 외형을 보고 든 생각은 '빨리 들어가서 놀고 싶다.'였다.
4세 아동이 발로 그린 그림도 감명 깊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건물 디자인이다.
전시 공간이 세분화되어 있고 에스컬레이터가 있긴 하지만 층마다 이동거리가 꽤 길다.
다리가 너무 아파 오고 시간이 없어서 휙 돌고 나왔다.
어떤 그림들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난 그림에 대한 조예가 별로 없다.
나에게 전시란 공간을 경험하고 그 순간의 나를 추억하는 일쯤 되려나.
퐁피두에 가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층을 이동하면서 파리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다.
멀리 불 켜진 에펠탑을 보고 나도 파리에 왔다는 어떤 성취감을 느꼈다.
더 늦기 전에 무언가 먹어야겠어 근처 갈만한 곳을 블로그로 찾아보고 둘러봤다.
주말 저녁 시간의 레스토랑은 친구와 연인, 가족끼리 모인 사람들로 가득했다.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의 메뉴판만 들춰보다 맥도널드에 왔다.
대충 시킨 치즈버거. 번이 한국보다 배는 크다.
듣던 대로 렌치 소스에 가까운 마요네즈를 준다.
이 햄버거가 원래 그런 건지 내 마음이 꼬인 건지 별 맛이 없었다.
반 넘게 남기고 버렸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걸어와 미리 한국에서 예약했던 유람선 바토무슈를 탔다.
바람이 세찼고 비가 조금씩 왔다.
감기에 걸릴까 봐 무서웠다.
미처 가보지 못한 센 강 근처의 관광 명소를 유람선이 속성으로 보여줬다.
에펠탑이 피날레를 장식한다.
찬 바람과 성가신 빗방울을 무시하고 모든 사람들이 밝게 웃었다.
이날부터였을까.
여행지의 멋진 것들을 보면 한국에 있는 내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