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시카고 타자기> 리뷰
드라마 시작 전부터 <킬미힐미>의 진수완 극본, 유아인 임수정 출연으로 관심을 모았던 <시카고 타자기>는 기대와 달리 드라마 초반부에선 1~2% 시청률을 보이며 부진했다. 그런 <시카고 타자기>가 여기저기서 재밌어졌다는 입소문과 함께, tvN의 든든한 스페셜 지원이 더해지며, 몰아 보기라는 역주행 흐름을 타고 있다. 그럼 이렇게 역주행을 할 만큼 <시카고 타자기>가 재밌어진 이유가 뭘까? 그 달라진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최근 들어 tvN을 비롯한 여러 방송국들의 드라마는 초반 1,2회에 1시간 10분~20분 편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극의 본격적 갈등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관계 설정에 대한 내용을 차근차근 쌓는 시간이 필요한데, 1,2회의 시간을 늘려, 조금 빨리 메인 갈등의 실마리를 드러냄으로써, 드라마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와 몰입도를 높이겠다는 의도가 깔린 편성이다. 그래서 최근 드라마들은 초반부터 본격적 갈등이 일찍 시작되고, 극의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시카고 타자기>는 그렇지 않았다. 초반 1,2회에 타자기 사연에 대한 흥미로운 시작은 있었으나, 어떤 이야기가 중심인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며 어떤 흐름으로 드라마를 따라가야 하는지 주도적인 모티브가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그저, 한세주(유아인)라는 까칠한 작가와 그의 열혈 팬인 전설(임수정)이 꼬이고 얽히며 등장했을 뿐이다. 거기다 한세주는 다른 인간적인 매력은 드러나지 않은 채, 신경질적이며, 안하무인의 의심 많은 작가로, 전설은 작가를 연예인처럼 좋아하는 조금은 무리한 열성팬으로 그려지며 사람들의 호감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어디서 본듯한 상황 설정에, 별다른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인물 구성이라 생각되는 <시카고 타자기>는 전생을 다룬 다른 드라마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지 못 한 채, 시청자들의 관심 밖으로 밀쳐지고 만다. 그래서 3% 가까이에서 시작한 시청률이 조금씩 더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5회에 이르러서는 1% 대로 추락하게 된 것이다.
그 첫 번째 발판은 유령작가 유진오(고경표)의 등장이다. 유령작가가 등장하면서 드라마는 드디어 메인 모티브에 대한 실마리가 생기기 시작한다. 유령작가를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한세주와 유령작가 유진오 사이에 숨고, 들키는 모습들이 등장하며 두 사람의 티격태격하는 재미가 생겨나고, 유진오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5회에 가서야 유진오가 진짜 유령이라는 것이 밝혀지지만, 그 사이에 보여 준 고경표의 다양한 깐죽거림과 장난스러운 표정들은 까칠한 드라마 정서에 유머와 재미의 활력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거기에, 의심 많고 신경질적인 한세주와 지나친 팬심으로 부담스럽기까지 했던 전설과의 과거 인연과 아픔이 드러나면서, 우리의 주인공 한세주와 전설의 인간적인 매력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대중들로부터 쏟아진 비난의 화살에, 글을 쓸 수 없게 되는 슬럼프에 빠진 한세주. 급기야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차사고까지 나며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상태로, 아버지 같은 스승에게 배신당하고, <인연>이라는 자신의 소설까지 빼앗긴, 과거 사연의 실마리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또, 한세주가 그토록 경계했던 전설이 실은, 무명시절부터 한세주를 진심으로 응원했던 1호 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며, 둘의 관계 변화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특히 가장 흥미로운 내용은 유령작가 유진오와 함께 한세주가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다. 그 시작은 한세주가 유진오에게서 다음 회 소설 원고를 받아 들면서부터이다. 소설이 잘 써지지 않던 한세주는 유진오로부터 내용을 받아 소설을 다시 쓰게 된다. 원고 전송 버튼을 누르기 직전, 한세주는 독창적인 작가를 꿈꾸던 과거의 자신과 그런 자신을 순수하게 응원하던 전설을 떠올리며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전설을 찾아가 그동안의 고마운 마음을 까칠하게 표현하는 데이트를 한 후, 자신의 모든 것을 파괴할 수도 있는 유령작가의 존재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연다. 진짜 유령인 유진오를 보지 못하는 기자들과 대중들은 한세주의 고통에 공감하며 비난을 멈추게 되고, 한세주는 유진오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된다.
진수완 작가의 필력이 느껴지는 극적인 반전이다. 작가와 연출가는 유진오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대화인 듯, 대화 아닌 혼잣말로 치밀하게 계산된 독백들을 깔아 놓았고, 마주치지 않는 시선처리 등으로 그동안 유진오의 정체를 잘 숨겨 놓았다. 그리고 한세주와 유진오의 관계 정립이 필요한 시점에 빵 하고 그 실체를 터뜨리며 상황 반전을 일으킨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이야기 전개는 재미와 정서적 몰입을 배가시킨다. 거기에, 정체가 탄로 난 유령, 고경표의 다양하고 디테일한 표정연기와, 1회부터 꾸준히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가며 몰입도를 높여갔던 유아인의 진실성 느껴지는 연기는, 풍성한 감정선을 살려내며 드라마 속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인다. 3,4회에서 다져진 인물들의 다양한 사연 위에 5,6회의 드라마틱한 전개가 이어지고, 배우들의 살아있는 연기가 빛을 발하면서, 6회부터는 시청률의 반등과 역주행의 흐름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생 인물들의 숨은 이야기가 살아나는 7,8부에선 이중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독립운동가 서휘영과 류수현의 모습들까지 매력적으로 그려지면서 현재 상황과 교차 연결되는 재미까지 더해지고 있다. 특히 류수현이 저격수이자 클럽 가수로서 매력적인 여인으로 변신해서 노래하는 장면은, 남장 여자에 몰입할 수 없었던 임수정의 매력을 제대로 살려내며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또, 서로의 이마를 짚어주며 전생과 현생을 오가며 위로의 내레이션을 나누는 장면은, 고단한 인생을 사는 과거와 현재의 주인공들 모두를 위로하는 듯한 따뜻한 감성과 작가의 주제의식을 함께 드러내는 매우 훌륭한 장면이다.
당신 이마에 손을 얹는다.
당신 참 애썼다! 사느라, 살아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부디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직 오지 않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전설이 한세주에게 선물 한, 책의 한 구절인 이 내레이션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며,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작가가 건네는 위로의 말처럼 느껴진다. 특히 사랑으로 불완전한 마음과 정신을 치유할 수 있었던 <킬미힐미>가 작가의 전작이었기에, <시카고 타자기>의 전생이라는 코드를 통해, 진수완 작가가 어떤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게 될지, 그 호기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7회 앞부분에 나오는, 한세주가 유진오에게 전생이 어떤 도움이 되냐고 질문하는 장면은 매우 의미심장한 씬이 된다.
현생의 삶도 이렇게 지치고 피곤한데,
내가 왜 전생의 삶까지 짊어져야 하는데?
그걸 알면 현생에 어떤 도움이 되는데?
전생은 전생이고, 현생은 현생일 뿐이야!
우정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오랜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는 거라고...
모르나 본데,
우정이란 말 뒤엔 배신이 붙어있고,
부탁을 들어주면
끝 모르고 의지하는 법이야.
그게 현실이야.
많이 변하셨네요!
작가는 의도적으로, 한세주 입장에서 전생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를 물어보게 하고, 유진오의 입을 통해 우정을 언급하고 있다. 또, 한세주의 아픈 사연을 통해, 따뜻했던 우정의 가치가 현재에는 어떻게 변해버렸는지를 대비시킴으로써, 우리 시대의 우정과 순수한 사랑의 가치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시카고 타자기>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작가의 기획의도는 이렇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대의명분이 존재했던 시대! 우정과 순애보는 우리에게 위로와 응원이 되며,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어깨를 두들겨주는 따뜻한 손길이 되어 삶의 방향으로 이끌며 도와준다' 작가는 전생의 우정과 사랑의 기억을 통해 현실의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우리가 각종 매체들을 통해, 이야기를 보고, 듣고, 읽는 이유는, 삶의 의미를 떠올리며, 정서적 위로를 받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시카고 타자기>는 드라마 초반, 느슨한 구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지 못하긴 했지만, 그 때문에 시청자의 외면을 받기엔 아까운 드라마이다! 회가 거듭해 갈수록 드라마의 흐름과 정서적 몰입도가 높아져 가고 있는 만큼, 많은 시청자가 <시카고 타자기>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따뜻한 위로를 경험할 수 있길 바란다.
만일 당신의 마음속에, 사랑과 우정에 대한 그림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게 느껴진다면, <시카고 타자기>를 강추한다! 그리 긴 시간이 아닐 수는 있지만, 드라마를 보는 시간만큼은 따뜻한 마음의 위로를 받는,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