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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테나 Jun 08. 2017

안타까운! <시카고 타자기>

시청률 부진 이유와 진수완 작가 드라마의 가치

<시카고 타자기>가 끝났다.

나름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중간에 역주행 조짐이 보이기도 했지만, 드라마 성공의 척도로 꼽히는 시청률 반등에는 실패한 채 드라마는 끝나버리고 말았다. 나름 여러 가지 의미와 정서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던 드라마였기에, 개인적으론 많이 아쉽고 안타까운 드라마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종합예술로서 드라마가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변수가 존재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가 얼마나 힘든지, 드라마 플롯 구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였기에 마무리 분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시작 전, <시카고 타자기>는 <도깨비> 이후에 침체된 tvN 시청률을 끌어올릴 가장 확실한 구원투수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청률에선 남부럽지 않은, <해를 품은 달> <킬미힐미>의 진수완 작가에 유아인, 임수정 주연이니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시카고 타자기>라는 낯설면서도 고풍스러운 제목 또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랬던 드라마가 왜 시청률과 화제성에서 밀리게 된 것일까?



그 첫 번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초반 1,2회 드라마의 산만한 전개 때문이다. 

드라마 전개가 산만하다는 것은 시청자들이, 주인공 그 누구에게도 몰입하지 못했으며, 이야기가 어떤 흐름으로 전개될지 그 이야기 패턴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카고 타자기>는 전체 이야기를 볼 때, 주인공들 중에서도 가장 핵심 인물은 '한세주'인데, 드라마 초반, 까칠하고 안하무인의 신경질 적인 작가로, 평면적인 캐릭터 설명에 그치고 있다. 또, 여주인공 '전설'은,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호기심을 던져 주지만, 신선한 매력이 드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갈등의 핵심 키를 쥐고 있는 '유진오'라는 인물은 두 인물의 티격태격 시퀜스가 끝난 뒤에서야 등장하며, 뒤늦게 발동 걸리는 구성점이 되어버리고 만다. 결국, 작가와 작가 덕후가 벌이는 매력 없는 티격태격 시퀜스에, 갈등의 실마리가 너무 늦게 제시되면서 드라마 초반, 시청자들은 핵심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채, 산만하고 지루한 느낌만 갖게 된 것이다.


 라프 코스터의 <<재미 이론>>이라는 책에 보면, '사람들은 패턴 파악에 실패할 경우 어렵거나 지루하다고 느낀다'라고 한다. 드라마 초반, 유진오가 진짜 유령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시청자들이 드라마 전개가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실제로 이야기 전개가 어렵다기보다, 이야기의 패턴 파악이 안 될 정도로 인물이나 사건의 흐름이 산만하게 전개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 영화 <식스 센스> 방식의 유령 인물 설정은 이미 1999년에 알려진, 너무나 오래된 트릭이라, 전혀 어려운 설정이 아니다. -  그만큼 드라마 초반부가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인물에 대한 매력과 호기심을 만들어 내지 못했고, 이야기 전개의 중심 모티브가 명확하지 않아, 시청자들을 드라마 흐름 속으로 끌어들여 호기심을 가지고 인물을 알아가게 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요즘은 방송국도 많고, 드라마도 많다. 거기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사람들이 즐길거리까지도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다리지 않는다. 초반 1,2회를 보며 나름대로 봐야 할 드라마와 건너뛸 드라를 판단한다. 사람들은, 바쁘고, 할 것도, 볼 것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 초반의 치밀하지 못한 구성의 실수는 시청률에 더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고, 가장 뼈아픈 실수가 될 수밖에 없다.



<시카고 타자기>의 시청률 부진의 두 번째 이유는 타이밍이 조금씩 비틀어져 어색해진 구성과 정확하지 않은 표현력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묘하게 드라마의 구성이 한 회차 안에서도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느낌과, 결정적 앤딩 장면인데도 결정적이지 않은 느낌을 주는 부분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전생과 현생을 오가면서 보여줘야 할 이야기와 드라마 갈등의 긴장 고조 측면에서 조율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끌고 가는 일관성 있는 흐름을 잡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플롯 구성은 시청자들의 두뇌와 마음의 흐름을 이끌고 갈 수 있도록 정확한 포인트 지점과 정서적 흐름이 함께 호흡하며 상승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부분의 조율에 실패하면, 드라마는 정리 안 된 산만한 느낌을 주게 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많은 드라마들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것은 에피소드 자체의 설정 문제이기도 하지만, 디테일한 표현 방법의 문제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이자 이러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 한세주가 백태민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건물 옥상에서 떨어지는 14회 마지막 장면이다. 분명 구성적으로 가장 위기감과 긴장감이 넘쳐야 할 장면이 전혀 위태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음회에 유진오가 한세주 구하겠네' 예상까지 하게 하며 드라마가 끝난다. 그곳에 실수는 크게 2가지인데, 하나는, 한세주가 떨어지며 떠올리는 전생의 기억이 너무 긴박하지 않고 길어, 위기감 자체가 잊힌다는 것과, 한세주를 살려줄 유진오가 함께 등장함으로써 해답을 미리 알려주는 듯, 맥이 빠져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14회 마지막에 유진오의 등장은 편집으로 생략하고, 같은 씬으로 시작하는 15회 앞부분에만 등장시켜 긴장감을 살렸어야 했다. 또, 한세주가 떨어지며 떠오른 전생도, 연회장 총격씬을 주저리주저리 다 보여 줄 것이 아니라, 서휘영의 죽음의 위기가 느껴지는 힌트 같은 짧은 커트 몇 개만 들어가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연회장 거사 장면에 대한 설명은 얼마든지 15회에서 차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장르 드라마 편집에 탁월함을 보이는 tvN의 편집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긴장감을 고려하지 않은 맥 빠진 앤딩 씬은, 플롯 구조적으로도, 이야기 흐름을 조율해야 하는 연출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실망스러운 앤딩이었다.


물론, 이것은 기본적으로 작가의 설정 실수이다. 작가가 편집에 대한 감각까지 갖고 있어서 재미를 위해 긴장감 넘치는 씬의 편집을 완벽하게 해 놓으면 가장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누구나 다 훌륭한 편집 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뿐더러, 드라마를 만드는덴, 시청자에게 보이는 이야기와 화면 전체 내용을 조율하고 만들어 내는 연출이라는 사람도 있고, 화면 연결의 전문적인 경험을 다양하게 쌓은 편집자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작가가 놓쳤으면, 연출이 보완했어야 했고, 연출이 놓쳤다면, 편집이 그 부분을 수정할 수 있어야 했다. 수많은 단계를 거치며 수많은 변수와 싸워야 하는 드라마 제작 환경 속에, 드라마에 대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은 어느 순간, 어느 누구도 멈춰 선 안된다. 작은 실수, 작은 이해 부족, 작은 넘김이 드라마적 구성의 허점을 만들고,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어 재미를 반감시키기 때문이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는 어느 누가 잘했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다양한 요소들이 효과적으로 시너지를 내는 경우들이 많다. 스텝 한 명 한 명 모두가 그들의 자리에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할 때, 이야기 내용은 온전히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고, 재미있는 드라마, 몰입감 있는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너무나 많이 본듯한 설정들이다.

드라마는 초반부터, 수많은 전생에 대한 드라마들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점검하며 공을 들였다고 했다. 하지만, 보는 사람은 머릿속에 스치는 다양한 드라마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 일단은 전생과 현생이라는 설정상, 드라마 <도깨비>의 여러 가지 설정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죽음과 환생에 대해서, 그리고, 조우진이라는 매우 인상적인 배우가 겹쳐지기도 하고, 드라마의 정서를 이끌고 가는 음악 또한 <도깨비> 음악 감독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또한 배경도, 거대한 성 같은 저택이라는 측면이나 정원 장면이 매우 자주 등장하며 창문을 배경으로 이야기하는 대화 장면의 미장센도 그랬다. 거기다 시대적 배경이 1930년대이니 작가의 전작인 <경성 스캔들>의 내용들이 중첩되기도 했다. 비밀 독립운동가들의 이중간첩 소재나 한고은의 기생집과 신율의 카르페디엠이라는 술집이 독립군의 아지트라는 공통점도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매우 훌륭한 씬이긴 하지만, 한세주와 전설이 서로의 꿈속에서 이마를 짚어주며 걱정과 불안에서 벗어나 편안히 잠들게 해주는 행동은 <해를 품은 달>에서 무녀인 한가인이 왕의 침소에서 액받이 무녀로서 왕 김수현에게 해주던 행동이었다. 한세주가 차사고가 나서 전설에게 보살핌을 받는 장면은 영화 <미저리>를 연상시키는 패러디였지만, 재미가 없었고,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의 밤 줍기 씬을 연상시키는 유진오와 마방진의 팥 줍기 씬은 코믹한 요소를 첨가했지만, 설정상의 어색함 때문인지, 겉도는 에피소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엔 드라마나 영화가 워낙 많으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는 반문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 나왔던 중요한 정서적 장면들은 오래도록 시청자의 뇌리에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장면 설정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어쩔 수 없이 그 설정을 써야 한다면, 다시 재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거나, 그 전 텍스트를 비틀어 풍자를 해서 재미를 주거나, 더욱 중요한 정서적 명장면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때만,  작품 안에 녹아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들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드라마 에피소드는 그저 그런 어디서 본듯한 에피소드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세주가 전설의 운동화 끈을 묶어주며 세 친구가 함께하는 장면은 <태양의 후예>에 나온 풀린 운동화 끈 묶어주는 장면을 넘어서는 훌륭한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남자 주인공이 여주인공의 운동화 끈을 묶어준다는 행동은 같지만, 인물들 간의 말 못 할 사연과 바라보기만 하는 유진오의 애잔함이 효과적으로 드러나며, 훨씬 큰 정서적 울림을 주는, 발전된 씬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제 운동화 묶어 주는 씬 하면 떠오르는 드라마가 <시카고 타자기> 가 될 수밖에 없는, 작가의 필력이 돋보이는 씬이다.


누가 날 이렇게 그리워하나?
한쪽 신발끈이 풀리면
누가 나 생각하는 거라던데
나한테 그런 사람이 있겠냐구요?
다 미신이지...
있어. 그런 사람이...
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너만 기다려왔던 사람이...
질긴 인연의 끈으로 묶여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너는 모르겠지만,
네 주변을 맴돌면서 지켜보고 있어.
그러니까 씩씩하게 살아!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시카고 타자기>를 좋아하고, 공감하며 드라마를 볼 수밖에 없는 데는 어마어마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장점 중 하나는, 현재의 삶을 위로하고, 힘들었지만 열심히 살았다고 토닥토닥 안아주는 듯한 따뜻한 정서를, 제대로 힘 있게 전달해 주는 드라마라는 점이다. 초반의 전개가 산만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전생의 실마리들이 하나하나 등장하는 4,5회부터는 드라마에 흐름이 잡히며 극적 갈등이 서서히 고조된다. 그리고, 결정적 순간, 전생 인물들의 비극적 운명은 폭발되고, 그 결과, 현재의 인물 '한세주'와 '전설'의 삶에 이르게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점점 복잡해지는 구조 속에서도, 긴장과 갈등 상승의 큰 줄기를 놓치지 않고, 뒤로 갈수록 묵직한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힘을 발휘한다. - 그런데 그 힘을 빼버리는 14회 마지막 장면 같은 부분은 참으로 안타깝다- 앞 글에서도 밝혔다시피, 작가는 기획의도에서, 전생의 우정과 사랑의 순애보를 통해 사람들의 삶에 응원과 위로를 보내기 위해 이 드라마를 쓴다고 밝혔다. 그리고 작가의 진심은 선 굵게 잘 짜인 갈등의 상승 구조를 통해, 이 드라마를 열심히 봐왔던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었다.


작가의 주제의식은 고단한 현실을 사는 '한세주'와 '전설'의 환경적 설정에서부터 뚜렷이 보인다. 작가 한세주는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성공한 소설가이지만,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스승 집에서 눈칫밥을 먹고 자랐으며, 유일했던 친구에게 자신의 소설을 빼앗기고, 아버지 같은 스승에게도 배신당하는 아픔을 겪는다. 덕분에, 의심 많고 냉정한 외피로 자신을 두껍게 보호하며 아무에게도 자신의 여린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고 살아가는 중이다. 특히 아버지 같은 스승님에게 모진 말을 하고 가슴 아파하는 한세주에게 유진오가 건네는 말은, 의지할 곳 하나 없는 한세주라는 인물의 공허한 삶의 핵심을 꿰뚫는 대사였다.


이럴 땐 혼자 있는 게 아니지 말입니다.
예를 들면 친구나...
아직 친구 아니랬다.
힘들 때 생각나는 사람을 찾아가거나...
그런 사람 없으니까
제발 조용히 좀 있어!
작가님은 지금 살아 있습니까?
며칠 같이 지내보니까 유령인 저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였어요.


'전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에겐 버림받았으며, 다행히 친구네 집에 함께 살고 있지만, 하는 일마다 심리적인 불안이 찾아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심부름센터 일을 하며 근근이 살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 시카고로부터 날아온 타자기 속에 깃든 영혼 '유진오'를 만나면서, 서로가 전생에서부터 사랑하는 사이였음을 알게 되고, 세상을 함께 살아갈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들에게 사랑은, 전생에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삶에 대한 상(賞)이자, 고통스러운 삶에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노력에 대한 위로이고 격려가 된다. 갖은 고난을 겪으며 마침내 맞이한 그들의 행복을 보며, 우린 팍팍한 우리들의 삶을 떠올린다. 생각해보면, 지금 우린, 나라를 잃은 것도 아니고 목숨을 내놓을 상황도 아니니,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걱정은 작은 부분일지 모른다는 위안을 받는 것이다. 또, 고통의 삶을 잘 견뎌 내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을만한 것이며,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사랑의 작은 인연들이, 또는 소소한 행복의 기억들이 모두 우리 삶에 상(賞)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또 한 번 힘겨운 삶을 이겨내 보고자 하는 에너지를 받는다. 진수완 작가의 기획의도처럼 말이다.


<시카고 타자기>의 두 번째 장점은 믿고 보는 배우들의 몰입감 높은 연기력이다. 연기력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유아인! 때로는 피 한 방울 흐를 것 같지 않은 냉정한 악인이 되었다가, 20살 이상 나이 많은 여인을 사랑하는 순수한 열정의 피아니스트가 되기도 하며, 아버지 손에 죽어가는 비운의 왕세자가 되기도 하는, 나이를 넘어서는 베테랑 배우다. 그가 몰입하는 어떤 드라마, 어떤 영화 속 인물이든, 그 역할 그 인물 자체가 되어, 상상의 세계를 실제처럼 믿게 만드는 연기를 해 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의 연기는, 역할 그 자체 인물을 실감 나게 표현하면서도, 배우로서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고 녹여내는 부분들이 있다. 아마도 그에 연기에 생생함이 느껴지는 건, 맡은 캐릭터 속에, 배우 유아인이라는 색깔이 덧입혀지면서 그 존재감이 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야기가 산만하게 흘러가던 <시카고 타자기> 초반에도, 유아인은, 캐릭터의 맥을 잡고, 극의 안정감과 사실적인 존재감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드라마를 이끌어 갔다. 특히 '유진오'의 등장과 함께, <도깨비>의 공유, 이동욱을 잇는 브로맨스로 주목받을 만큼 배우 고경표와 치고받는 캐미가 훌륭했다. 자칫 어색할 수 있는 코믹 연기에 사실성을 부여해 주는 그의 진지한 연기는 더욱 재미있는 씬을 만들어 냈고, 특히 초상화 속에 숨은 유진오를 찾아내려 집필실을 뒤지는 장면은 드라마 속 가장 코믹한 장면이 되었다. 작가로서 까칠하고 진지한 모습과, 전생에서 친구들과 행복하게 지내는 편안한 모습, 또 류수현을 사랑하면서도 티 내지 못하고 가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그 변화무쌍한 변신에, 유아인이 저렇게 생겼었나? 싶을 정도로 얼굴의 느낌마저 다르게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또, 배우 고경표의 다양한 표정 연기도 드라마에 활력과 재미를 불어넣는데 큰 몫을 했다. 특히 그가 강아지 '견우' 몸속에 빙의한 연기는 두고두고 회자되기도 했다. 특히, 감정씬과 코믹씬을 오가며 만들어 내는 표정만으로 인물의 정서를 한껏 풍부하게 묘사하는 그를 보며, 그가 그동안 맡았던 무난한 역할 속에 감춰져 있던 배우로서 고경표의 가능성과 능력을 확인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특히, 그의 표정 연기의 백미는, 자유롭게 표현하는 코믹 연기와, 한세주와 전설의 키스나 포옹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는 정서적 연기를 할 때 드러난다. 얼굴 근육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그때그때 다양한 표정과 변화무쌍한 움직임으로 디테일한 코믹 코드를 표현하고, 정서적인 표현이 중요한 장면에서는 눈물 어린 눈빛으로 그 애잔함을 담아내며 드라마의 중반 부분의 정서적 몰입감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전설' 역할의 배우 임수정은 오랜만의 드라마 출연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드라마 초반,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신뢰가 가지 않는 캐릭터 표현으로 연기력 논란까지 야기됐었다. 아마도 씩씩 발랄에 저돌적이기까지 한 '전설'의 캐릭터가 부담스러웠거나 완전히 이해하고 몰입하지 못한 채, 촬영을 시작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드라마 중반, 정서적 장면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안정된 연기와 감정 몰입으로 연기력 논란을 잠재웠다. 특히 인상적인 연기는 8회에 주점에서 한세주에게 자신이 사격을 하지 못하게 됐던 이유를 이야기해주는 씬이었다. 두려운 듯,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의 이야기를 촉촉이 젖은 눈으로 웃으며 하는 모습이 전설의 아픈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또, 드라마 후반부, 한세주의 죽음을 깨닫고 울부짖는 장면과 자신에게 가족이자 스승이자, 동지였던 신율을 처단하기 위해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류수현을 연기하는 장면은, 극에 몰입도를 최고조로 높이는 집중도 있는 연기를 선보이며 후반부의 안타까운 정서를 극대화시킨다.


개인적으로, <시카고 타자기>의 흥행이 부진했다는 점은 매우 안타깝다. 수많은 드라마들 중에, 이 정도로 깊이 있는 정서를 보여주며, 전생이라는 드라마적 구성, 인물 설정과 이야기의 인과관계에까지 드라마 주제를 녹여내는 훌륭한 짜임새의 드라마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드라마는 머리로 사건을 쫓는 재미가 있지만, 정서적 울림이 떨어지고, 어떤 드라마는 주제의식 따위 내팽개쳐버리고 그저 정서적 과잉만 드러내는 드라마가 있는가 하면, 어떤 드라마는 이것저것 다 들어갔는데 심심하기만 한 경우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카고 타자기>는 달랐다. 왜 전생이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하며 구조와 주제의식을 연결하고, 사랑의 완성으로 현생의 삶에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는 기획의도를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 힘 있을 가지고 있는 드라마였다. 이처럼, 커다란 정서적 울림과 주제 표현력, 후반부로 갈수록 재미를 높일 수 있는 플롯 구성력까지 함께 가진 <시카고 타자기>를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까운 것이다.


진수완 작가의 장점은, 시청자들에게 울림을 주는 감동적인 장면을 잘 그려낸다는 것과, 탄탄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선 굵은 갈등 구성에 힘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은 디테일과 흐름은 조율이 필요하고, 드라마 마무리가 훌륭한 반면, 초반 갈등의 도입부 구성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녀가 가진 드라마 작가로서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면서 작품적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은, 드라마 구성 디테일을 보완할 수 있는 논리적 감각과, 전체 흐름을 꿰뚫어 보며 조율할 수 있는 정서적 감수성을 가진 누군가와 드라마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사람이 PD가 되었든, 책임 프로듀서가 되었든, 함께 논의해 간다면 충분히 완성도 높고, 시청률에서도 아쉽지 않은 드라마가 만들어 질거라 확신한다. 드라마 플롯 구성 능력은 분석적 노력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지만, 정서적 감동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진수완 작가의 능력은 더 귀한 것이며, 그녀가 더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녀의 완벽한 작품을 볼 수 있길 응원하며, 기대한다. 진수완 작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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