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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테나 Apr 16. 2017

사회 드라마 속 멜로! 성공할 수 있을까?

SBS <귓속말>  리뷰

   오랜만에 리뷰를 쓰고 싶은 드라마가 나타났다. <내 딸 서영이>의 이보영, 이상윤 커플의 재회로 관심을 끌었으며, 마니아들한테는 <추적자>와 <펀치>로 유명한 박경수 작가의 <귓속말>이다. 박경수 작가는 주로 검사나 형사, 재벌, 정치인 등을 소재로, 비양심적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 온 작가이다. 이번 작품도, 판사 출신 변호사와 전직 여형사가 정의와 양심을 바로잡기 위해 머리 좋고 빽 좋은 금수저 재벌과 법조인 등, 권력층을 상대로 한판 승부를 벌이는 이야기로, 전작들의 연장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박경수 작가의 다른 작품에선 보기 힘든 '멜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귓속말>의 완성도와 재미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기존의 박경수 작가 드라마 속엔, 주인공의 멜로 정서가 매우 약한 편이다. 그나마 멜로가 있었던 작품이 <황금의 제국>인데, 멜로의 설정은 드라마 속 플롯을 위한 장치로 사용될 뿐, 가슴 아픈 사랑의 아련함과 따뜻함 등의 멜로 정서가 많이 드러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남주인공 장태주(배우 고수)와 여주인공 최서윤(배우 이요원)은 정략적 제휴로 결혼까지 하게 되지만, 성진 그룹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과 암투 속에 사랑의 감정은 날아가버린다. 또 황금을 향해 끝없이 질주하는 장태주를 위해 살인죄까지 스스로 뒤집어썼던 윤설희(배우 장신영)의 희생적 사랑 앞에서도 태주는 인간적인 배려를 할 뿐, 애끓는 마음이나, 가슴 아픈 사랑의 정서는 끝내 펼쳐지지 않는다. 또, 가장 최근 드라마였던 <펀치> 속에서는 남녀가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나가는 장면은 전혀 없고, 최연진(배우 서지혜)이 주인공 박정환(배우 김래원)을 일방적으로 짝사랑해서 편들어 돕는다거나, 박정환이 자신의 딸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정의로운 선택을 하게 만드는 심리적 배경으로 가족애를 설정하고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박경수 작가의 드라마 속엔, 진심을 담아 사랑을 시작하는 설렘의 정서나, 가슴을 후벼 파는 폭풍 같은 감정의 사랑 내용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본격적인 성인 멜로를 내 걸고 <귓속말>을 들고 나왔다!


 박경수 작가의 멜로에 대한 의지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다. 권력의 비리를 파헤치는 사회 드라마와는 어울리지 않는 <귓속말>이라는 제목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추적자>, <황금의 제국>, <펀치> 등 강한 톤의 사회성 짙은 드라마 제목과는 매우 다른, 부드럽고 은밀한 느낌의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귓속말'이란,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하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상대편 귓가에 대고 소곤대는 말이라는 뜻으로, 그 어떤 제목보다 중의 적이면서도 매우 섹시한 느낌의 멜로드라마에 어울리는 제목이다.


  특히 1편에서 보여주는 파격적인 호텔 씬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여주인공 영주는 아버지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동준의 약점을 틀어쥘 목적으로, 술 취한 동준과 하룻밤을 보내는 동영상을 찍는다. 그리고, 그 호텔 방에서부터 영주와 동준의 모종의 관계가 시작된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박경수 작가 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정략적 목표가 있는 남녀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조금씩 변화의 지점이 보인다. 동준과 영주가 정략적 동지에서 조금은 더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3, 4회를 거치며 서로를 위기에서 구하고, 신뢰 관계를 다져가던 영주와 동준은 5회에서 위급한 상황을 모면하는 키스를 하게 된다. 계속되는 위기 상황 속에 영주는 아버지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모습을 솔직히 드러내고, 동준은 그런 영주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안아준다. 조금씩 달라져갈 둘의 관계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이쯤 되고 보면, 포스터에 있던 문구가 떠오른다.

 당신은 적이었고, 동지였으며,
단 하나의 사랑이었다!

 이 문구는 앞으로 두 주인공의 관계가, 서로를 이해하는 동지에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극의 방향을 예고하며 멜로드라마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기존에 사회성 짙은 드라마를 써왔던 박경수 작가가 이번에는 맘먹고 멜로를 드라마에 접목시켜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아마도, 기존의 박경수 작가의 드라마들이, 이야기 구성에 있어서는 놀라울 만큼 반전의 재미를 선사하고, 현실을 반영한 살아있는 대사의 필력이 최고라는 찬사를 들으면서도, 정서적인 만족도가 떨어지는 데서 오는 시청률의 아쉬움을 멜로 코드로 정면 돌파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6부가 끝난 이 시점까지도 멜로드라마로서 <귓속말>의 완성도에 대한 확신은 들지 않는다. 가장 우려가 되는 점은 우선, 박경수 작가의 장점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구성력이지, 절대 섬세한 정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박경수 작가의 기존 드라마들은, 인물 정서가 중심인 드라마가 아니라, 이야기의 치밀한 구성을 통해 반전의 재미를 극대화시킨 사건 중심의 드라마였다. 또, 음모와 배신이 판치는 약육강식의 권력 사회에 대한 비판적 묘사를 주로 하면서 냉정하다 못해 비정한 정서가 드라마의 주된 흐름을 이어갔다. 물론, 그의 드라마에서도 따뜻한 가족애가 강조될 때는 가슴 뻐근한 감동이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가족애의 측면은 드라마의 주된 정서라기보다는 주인공이 처한 비정한 세계를 더욱 부각 시키기 위한 장치로서의 기능을 하거나,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주인공이 처한 현실적 안타까움을 증폭시키기 위한 부분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들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근 작 <펀치>의 주인공 박정환(배우 김래원)이라 할 수 있다. 정환은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하던 비리 검사로,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자신의 딸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정의로운 검사가 되어 비리 권력과 싸우게 된다. 정환이 딸아이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며 참회하는 장면은 깊은 울림을 주기도 했지만, 드라마의 주된 흐름은 대부분 비리세력과 정환이 벌이는 생존을 위한 치열하고 냉혹한 두뇌싸움이었다.


  사회성 짙은 드라마가 두뇌로 이해하고 호기심을 갖고 보는 드라마라면, 멜로드라마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정서에 몰입해서 보는 드라마이다. 그래서 멜로는 더 섬세하고, 감수성을 가진 장면들을 필요로 하며, 감각적이어야 한다. 따뜻한 사랑의 정서가 드라마 전체의 흐름에서 매우 중요하고, 주인공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정서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사건들이 벌어지고 위기와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드라마 플롯 구조로 살펴보자면, 박경수 작가가 시도하는 <귓속말>의 멜로드라마화는 사건 중심의 외적 플롯으로 진행되던 사회성 드라마를 인물 중심의 내적 플롯에 의해 전개되는 멜로드라마로 변신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한마디로 이야기와 정서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박경수 작가의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들과 달리, 정서 중심의 이야기 전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박경수 작가의 멜로드라마 시도는 매우 큰 방향 전환이자 새로운 도전일 수밖에 없다.


  걱정은 또 있다. 그동안 박경수 작가는 남자를 원톱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써왔다는 점이다. 딸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는 아빠가 주인공인 <추격자>는 물론이고, <황금의 제국>은 돈과 권력을 갖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장태주라는 야심만만한 남자의 이야기였으며, <펀치>는 내 딸이 살아갈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정의를 바로잡고자 하는 박정환 검사의 이야기였다. <귓속말> 또한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으려는 이동준 변호사가 모든 권력을 가진 금수저들과 벌이는 사랑과 정의의 승부라 할 수 있으니 역시, 남성 시각의 드라마라는 맥락을 함께하고 있다. 그것은 드라마 속 씬 들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1부의 첫 시작이 영주 아버지가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시퀜스로 시작하고 있지만, 두 주인공 영주와 동준이 마주 앉아 사건을 의논하는 장면에서 부터는, 동준의 입장에서 사건이 꼬이고 압박해 들어오는 갈등 상황으로 플롯이 만들어져 가기 시작한다. 드라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준의 생각하는 모습과 상상하는 내용에 대한 수많은 커트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드라마의 중심축이 남자 주인공 동준에게 기울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여주인공인 영주의 심리와 정서적 디테일이 부족한 상황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중 가장 아쉬운 장면은 동준과의 하룻밤을 보냈던 호텔 장면이다. 청부 재판을 한 동준을 협박하기 위해 하룻밤을 함께 보낸 영주의 심리를 "겁나? 어젯밤에 이 방에 들어 서던 나보다?"라는 대사 한 마디로 처리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또, 화장실에서 엄마와 전화하는 장면은 더더욱 영주의 심리 상태를 난해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어떤 딸이, 그런 위험한 일을 감행하는 도중에 엄마와 전화를 하고 싶을까? 그것도 형사 팀장까지 했던, 옳고 그름이 분명한 딸이 말이다. 차라리, 화장실에 혼자 들어간 영주가 절망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며, 분노하면서도 가슴 아파하는 복잡한 심경으로 있을 때, 엄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바라보기만 할 뿐 받지 못했다면, 시청자들은 영주의 안타까운 입장에 더 몰입하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여주인공의 심리와 정서가 표면적이고 애매하게 제시되면서 영주라는 캐릭터는 오히려 동준의 복잡한 상황을 옥죄는 또 다른 갈등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드라마 초반, 훌륭한 이야기 전개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답보상태였던 건 이런 여주인공의 심리묘사에 실패한 영향이 크며, 이때 영주 캐릭터에 대한 답답함을 이야기하는 기사들이 나온 것도 그런 맥락 때문이다.


  멜로드라마는 여성 캐릭터가 중심인 드라마다. 그래서 여자 주인공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몰입이 중요하다. 여자 주인공이 느끼고 생각하는 기준이 드라마의 중심이 되어, 남자 주인공의 매력에 빠져 들게 되고, 그 정서에 공감하며 감정이입을 만드는 구조를 갖는 게 멜로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귓속말>은 대부분 동준이라는 남자 캐릭터의 시선과 생각을 중심으로 드라마 흐름이 이끌어 지기 때문에 이 부분이 쉽지 않다. 물론, 남성이 주인공인 멜로드라마들도 얼마든지 있어 왔다. 대표적인 예가 <발리에서 생긴 일>이다. 이 드라마는  정재민(배우 조인성)과 강인욱(배우 소지섭)의 경쟁과 사랑에 대한 드라마였다. 물론 여주인공 이수정(배우 하지원)이 중간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삼각관계를 통한 갈등을 훌륭하게 만들어 내지만, 이수정의 행동이 모호하게 처리되면서, 여주인공 캐릭터가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결국, 남자 작가가 쓰는 남성 중심 멜로드라마는 여성 캐릭터의 심리와 정서 표현에 아쉬움이 생길 가능성이 많아서, 정서적 균형을 맞추는데 더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귓속말> 초반, 영주는 머리 좋고, 실력 좋은 강력반 형사로서 사건을 주도적으로 리드해 가는 강력한 걸 크러시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내면적 심리 묘사가 애매한 상황에 정체되어 있던 영주는 강정일과 최수연이라는 강력한 안티 히어로가 부각되면서 다시 살아나게 된다. 액션 알파걸인 영주가 동준과 같은 편이라는 위치를 명확히 하면서 강력한 안티 세력과의 대결 구도가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3,4회에서 드라마의 재미가 살아나며 시청률이 크게 상승한 이유는 그래서이다. 5, 6회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영주 아버지와 방산비리 자료를 둘러싼 동준과 영주의 심리가 균형감 있게 보여지며, 남녀 주인공의 정서적 균형이 맞춰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두 남녀 주인공의 멜로 감성의 본격화와 관계가 있다. 남녀 주인공이 사랑의 단계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깊이 있는 정서적 공감대 형성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영주의 심리적 갈등이 조금 더 심도 있게 다뤄질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귓속말>의 멜로적 감성이 살아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박경수 작가가 여주인공 영주의 캐릭터를 살려 내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 시청자들이 영주의 상황뿐 아니라 그 내면적 심리와 정서에 공감할 수 있다면, 동준과의 멜로 코드에 힘이 실리면서 드라마적 완성도를 갖추게 될 것이고, 만일 영주의 캐릭터가 시청자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한다면, 영주와 동준의 사랑은 정서적 몰입에 힘을 잃어 드라마적 완성도에 큰 타격이 될 수도 있다.


 아마도 작가의 특성상, <귓속말>은 본격 멜로드라마라기보다는, 사회성 드라마에 멜로의 감수성을 적절히 결합시키는 형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기존의 박경수 작가의 드라마에서 부족했던 주인공의 정서적 측면을 보완하고, 여주인공의 심리적 디테일을 강화시켜 시청자로부터 감정 이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면, 반전을 위한 반전, 머리로만 만족되는 반전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와 정서에 바탕을 둔 머리와 가슴이 모두 만족하는 반전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야기의 맥락과 구조적 측면에서도 한 단계 발전한 훌륭한 선택이.

 

 박경수 작가는 <귓속말>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어려운 도전을 하고 있다. 그의 약점이라 지적되어 오던 멜로적 감성의 부족함과 냉소적인 드라마 분위기를 뛰어넘어, 사회성 짙은 드라마에 멜로 감성을 접목시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장점인 반전을 거듭하는 놀라운 이야기 구성 위에, 주인공의 정서가 살아 숨 쉬는 멜로를 성공적으로 접합시킬 수만 있다면, 시청자로서는 매우 만족스러운, 완성도 높은 드라마 한 편을 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 개인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시도이기 때문에, 아직까진 불안하고 정돈되지 않은 느낌은 있지만,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작가인 만큼, 구조와 정서의 성공적인 결합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박경수 작가의 분투와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그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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