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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테나 Feb 04. 2017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 그 가치로움과 아쉬운 점

드라마 도깨비 마무리 분석 및 정리 2.

 드라마 도깨비가 끝난 지 2주가 되어 가는데, 도깨비 후유증이 여전하다! 우연히, 재방송이라도 보게 되면, 여전히 안타까운 심정이 되어 눈을 돌릴 수 없고, 각종 연예 프로그램과 CF에 나오는 도깨비 음악에 절로 설레며 <도깨비> 드라마 한 장면을 떠올리고, 다른 드라마를 보는데도, 영~ 뭔가 아쉬워서 여전히 마음 둘 곳이 없다!  3주쯤 되면, 도깨비 없는 현실의 헛헛함을 조금은 극복할 수 있을까? 내 마음속에 들어 차 있는 도깨비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조금은 흐려지고 무뎌질 수 있을까? 조금은... 마음의 평정심을 되찾아,  정서적 무(無)로 돌아갈 수 있길 바라며 도깨비 드라마의 가치와 아쉬운 점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 살펴볼 것은... 드라마 <도깨비>의 가치로움이다!


그 첫 번째는 도깨비 설화를 재발견한 작가의 창의적 소재 확장의 가치이다. 

김은숙 작가는 몇 년 동안, 도깨비 관련 자료에 대한 조사도 치밀하게 하고, 드라마적 상상의 공간을 찾아다니며 오랫동안 드라마 <도깨비>를 구상해 왔다고 한다. 특히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이마에 뿔 달리고, 어리석은 모습의 도깨비에서, 현대적 캐릭터의 멋진 능력자 도깨비로 변환시킨 그녀의 창의적 재해석으로 볼 때, 그 노력과 공부가 얼마나 깊이 있게 이루어졌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도깨비 박사'로 불리는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김종대 교수는 드라마 <도깨비> 캐릭터가 우리 고유의 도깨비 성격에 매우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사람을 좋아해서, 사람 가까이 살면서 친구가 되자고 하고, 결혼하자고 하기도 하며, 장난치기 좋아하고, 변덕이 심해서 때로는 심술도 부리는 모습이 설화 속 도깨비 캐릭터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또한 도깨비는 우리 조상들의 잘 먹고 잘 사는 소망이 투영되어 있어서, 황금을 만들어 내는 부(富)의 신이며,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캐릭터가 되었다고 한다. 도깨비의 어원은 세종 때 발간된 <석보상절>에 나오는데, 돗(우두머리)+가비(남자)에서 나온 말이며, 현대의 능력 있는 남자 캐릭터에도 어울린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이처럼 드라마 <도깨비>는 우리 고전 설화 속에서만 이야기되던 캐릭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주인공으로 발굴해 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은 우리 전통 설화 속 도깨비 캐릭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일본의 뿔 달린 요괴 '오니'와 도깨비 캐릭터를 혼동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박노현 교수는 "고전문학 콘텐츠를 가져와 변용하는 일은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권장되어야 하며, 기존에 내려온 우리만의 자산을 어떻게 흥미롭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적절한 예이면서 대중문화콘텐츠의 OSMU(원소스 멀티유즈) 측면에서도 적합한 경우"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번에 재 해석된 도깨비 캐릭터는 내러티브 장르 속에만 존재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모든 콘텐츠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신선한 캐릭터의 발견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만의 설화와 민담, 신화 속 캐릭터들에 대한 연구와 개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귀한 발견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가치는, 삶의 긍정적 의미를 확인시켜주는 드라마라는 점이다.

이 드라마는 본격적인 삶과 죽음에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이 도깨비라는 신이긴 하지만, 드라마는 지속적으로, 인간에게는 4번의 삶이 있으며, '운명은 신이 던진 질문일 뿐, 인간이 스스로 답을 찾아 풀어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드라마 초반부에 등장한 입양아 소년이, 정답을 알고도 자기가 푼 답을 써서 도깨비에게 격려를 받았던 에피소드에서부터, 저승의 차를 마시지 않는 선택을 한 은탁이 환생하여 도깨비와 재회를 하게 되는 결말에 이르기 까지, 드라마 곳곳에서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의지와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저승사자'와 '기타 누락자'라는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삶의 의미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 16회. 미녀 사자를 만나는 저승사자 대사 中 -

" 스스로 생을 버린 자들을 저승사자로 눈뜨게 해, 수많은 죽음을 인도하며 산자도 죽은 자도 아니게 살게 한 이유가 뭘까? ... 그 질문들에 답을 찾다가 어느 날 문득, 우리가 포기한 것들이, 이름이, 우리가 버린 생이, 갖고 싶어 지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이 간절해지면, 우리의 벌이 끝나는 건 아닐까?... 너도 너를 용서하게 되길 바란다. 신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자신을 용서하여 생의 간절함을 깨닫는 것일 테니... "

 

또, 기타 누락자인 은탁이 하는 대사들에는 삶에 간절함이 많이 엿보인다.

- 12회. 유회장 죽음을 슬퍼하는 도깨비를 위로하는 은탁의 대사 中 - 

"그러니까 남은 사람은 또 열심히 살아야 돼요! 가끔 울게는 되지만, 또 많이 웃고, 또 씩씩하게, 그게 받은 사랑에 대한 예의예요! "


- 16회. 저승이 선물하는 메밀꽃 부케를 받으러 온, 은탁의 대사  -

" 내가 기타 누락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무엇보다 인간은 언젠가 죽으니까요. 그래서 생이 더 아름다운 거고. 그래서 기억이 돌아오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이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야겠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이 기억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러니 매 순간 죽어라 살고, 사랑해야겠다! 그랬어요!"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이다!'라는 소포클레스의 명언처럼, 드라마 <도깨비>는 인생이라는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을 상기시키며, 죽음의 한계가 있어, 더 아름다운 우리 생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그것이 예의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팍팍한 현실에 지치고, 삶에 이유를 찾지 못해 헤매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 주었고, 사랑받고, 사랑했던 추억을 되살려 주었던, 따뜻한 드라마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좋아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세 번째 가치는 판타지 드라마의 진일보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발달한 CG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근 들어 텔레비전에서 판타지 드라마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특히 가장 눈에 띄었던 드라마는 jtbc의 <마녀 보감>으로 기존에 보았던 그 어떤 CG보다 뛰어난 기술적 완성도에, 웹툰과 함께 진행되어, OSMU(원소스 멀티유즈)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드라마 내러티브에 공감을 얻는데 실패함으로써 크게 대중적 인기를 끌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또한, 대부분의 판타지 드라마는 성공한 만화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것을 리얼 드라마로 옮길 때 생길 수 있는, 매체적 특성이나, 장르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드라마로서 내러티브의 한계를 보이며 화재성에 그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도깨비> 드라마는 이미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김은숙 작가가 본격적으로 쓴 오리지널 판타지 드라마라는 점에서, 드라마 트루기를 제대로 갖춘 판타지는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드라마에서 보여준 뛰어난 CG 기술은 드라마의 초반 분위기를 앞도 하며 극의 환상적 공간에 대한 현실감을 배가 시키는 기능을 충분히 할 만큼 완성도 높게 그려졌다. 이러한 기술력의 발전은, 탄탄한 드라마적 완성도를 높이는데 한몫을 해내고 있으며, 앞으로 드라마가 구현할 수 있는 세계가 무궁무진하게 넓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는, 감각적인 연출력과, 섬세한 촬영, 조, 단역을 가지리 않는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에, 장르적 편집력과, 드라마 OST를 비롯한 사운드의 효과적 활용 등 많은 제작 스텝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도 <도깨비>는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앞에 분석 글들에서 충분히 설명했으니 여기서는 패스한다) 한마디로, 이 드라마는 각 분야의 베테랑 전문가들이 만들어 낸 최상의 조합과 하모니의 결과로 만들어진, 진일보한 판타지 드라마였던 것이다.

 

이제 살펴볼 것은, 드라마 <도깨비>의 아쉬운 점이다!


내가 아무리 드라마 <도깨비>에 후유증을 앓을 정도로 좋아하고, 우리 공신님과 지고은 님의 눈물에 함께 울고 미소에 함께 웃고 있더라도, 이해가 안 가거나, 아쉬운 장면들이 눈에 띌 때는 조금씩 몰입에서 튕겨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솔직히, 이 드라마를 사랑하고 좋아하면서도 시종일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과,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을 곱씹을수록, 모순되거나 허술한 아쉬움이 드러나는 게 사실이다.


그 첫 번째 아쉬움은 극적 반전을 위한, 논리적 개연성이 치밀하지 못한 설정들이다.

드라마 전체를 봤을 때 가장 중요한 모티브이면서, 신에 한 수처럼 느껴지는 박중헌을 죽이기 위해 검을 뽑아야 한다는 설정은, 극적으로는 매우 탁월한 모티브였지만, 한편으로는 급조된 느낌이 드는 선택이기도 했다. 일단, 검을 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앞에 구조 설명에서도 언급했듯이 매우 훌륭한 모티브의 변곡점이었다. 하지만 김신이 검을 뽑고 무로 돌아가는 것과 박중헌과의 연관성은 어디서도 복선으로 언급된 적이 없었으며, 검을 뽑는 시점과 은탁의 운명을 생각하면, 앞 이야기의 설정과 배치되는 꼴이 되고 만다. 드라마를 끌고 온 모티브는 은탁과 김신이 진심으로 사랑을 하게 되면서 검을 뽑고 무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었는데, 박중헌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검을 뽑았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럼 김신은 무로 돌아가고, 박중헌은 계속 악귀로 구천을 떠돌 것인가? 저승사자도 데려가지 못하는 악귀를 어찌한단 말인가? 만일, 박중헌이 나타나는 타이밍이 검을 뽑는 타이밍이라고 신이 미리 계산한 일이었다면, 그동안 있었던 은탁을 향해 다가오던 목숨의 위협들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검을 뽑아 악귀 박중헌을 없애고 도깨비를 무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은탁의 존재 이유라면, 검을 뽑을 때까지는 안전하게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또는 검을 뽑는 것이, 박중헌을 없애기 위한 계산된 위기 상황과 타이밍이었다면, 은탁이 사랑을 하더라도 검이 완전히 뽑히지 않는, 무엇인가 충족되지 않은 조건과 타이밍이 있음을 알려주는 설정이 더 설명됐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니 박중헌 때문에 검을 뽑을 수밖에 없다는 설정은 차근차근 생각해 보면, 급조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는 설정이 된다. 이렇게 조금은 치밀하지 못한 설정의 혼란스러움은 다른 곳에서도 종종 보인다.


 은탁의 유일한 학교 친구였던 여고생이, 사실은 엄마의 친구였고 은탁을 돕는 귀신이었다는 점 또한, 극적 반전을 위한 무리한 설정이란 생각이 든다. 엄마랑 여고생 때 절친이었던 귀신이 뭔가 풀리지 않는 한을 품고 떠돌다가 친구 딸을 지킨다? 그럼 은탁이 학교에서 힘든 일을 당하고 있을 때 그 귀신은 뭐하고 안 나타났나? 나중에 알게 된 4명의 귀신 친구들이 은탁을 도와줄게 아니라 엄마 친구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닐까? 은탁은 항상 귀신 안 보이는 척하고 다녔는데, 왜 그 엄마 친구 귀신만 친구를 하고, 아는 척한 걸까? 그것도 머리에 피가 줄줄 흐르는 교통사고 귀신을... 또, 엄마 친구 귀신은 왜 은탁의 엄마가 죽었을 때, 절친이면서도 함께 저승에 가지 않았을까? 은탁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엄마는 저승을 갔는데, 친구가 왜? 은탁을 정말 간절히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은 엄마가 더 하지 않을까? 문제는 엄마 친구 귀신이 여고생이라는 게  문제다. 드라마적 반전을 위해서지만, 시간과 상황적 논리에 있어서 여고생 설정은 무리한 설정이었다. 물론, 작가도 그 점을 의식했는지, 떠돌던 중에 은탁을 보았고 지켜보다 조금 늦어졌다는 대사를 하긴 하지만, 그것은 무리한 설정을 이어 붙이는 땜질 대사일 뿐 부족한 개연성에는 계속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또, 기억을 잃은 은탁이 캐나다에서 만난 김신에게, 우리 만난 적 있느냐고, 당신이 김신이냐고 묻는 장면에서, 김신이 아니라고 김신 스스로 부정하는 내용은, 인물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어색한 설정이었다. 은탁과 사랑을 이어가고 싶어 하며 은탁 주변을 맴도는 김신의 심리적 상황과 행동이라면, 자신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다니는 은탁을 오히려, 추억의 장소로 이끌며 기억 찾기를 도와야 말이 된다. 이야기의 흐름상 반전을 위해서라면, 추억 찾기를 해도, 기억을 해 내지 못하던 은탁이, 뒤늦게 촛불 소환을 발견하거나 떠올리게 되면서 김신과 자신의 추억을 되찾는 설정이어도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무(無)의 세계는 어떠한가? 김신이 사라진 무(無)의 세계에서 신(神)과의 대화는 김신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논리적 근거를 충분히 설득시켜 줘야 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김신이 세상에 남겠다는 의지와 비와 첫눈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하며, 신(神)의 결정에 반하는 말을 하는데도, 신(神)은 별 다른 반응 없이 그저 이곳에 나는 없다! 라며 가버린다. 그리고 김신은 신이 떠나버린 중간계에서 힘들게 떠돌다가 은탁의 계약서를 근거로 첫눈 오는 날 세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삼신할미의 내레이션처럼 김신의 선택은 매우 어리석은 선택이다. 이제 도깨비 김신은 신(神)의 도움 없이 살아야 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계속 봐야 하는 영원히 쓸쓸한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는 그 점을 더욱 명확히 했어야 했다. 써니도 신(神)과 맞짱 뜨며 내 인생에 개입하지 말라고 하는 마당에, 신(神)의 입장에선, 자신의 배려에 반기를 드는 김신을 별다른 말 없이 두고 떠나는 것은 이상하다. 김신이 세상으로 돌아가는 데 대한 명확한 이유와 근거가 무엇인지, 타협이든, 새로운 임무든, 아니면, 약속에 대한 엄중한 책임감이든, 도깨비가 세상으로의 복귀하는 것에 대한 더 큰 의미와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 담판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단순한 계약서에 의한 세상 속 환생이 아니라, 신(神)의 허락과 인간의 의지가 합치되어, 도깨비라는 세상 속 가장 쓸쓸한 수호신이 세상에 남겨지는 이유로서의 정당한 개연성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깨비가 세상으로 돌아갈 때는, 상도, 벌도 아닌, 완전한 무(無)에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도깨비에게도 어떤 변화가 있어야 했다. 심지어 신(神)은 이제 너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까지 했는데, 세상으로 돌아온 도깨비가 그 전과 같은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어떤 차이도 없이 그 자리 그대로 돌아온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무(無)의 세계와 신(神)과 도깨비에 대한 설정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달려온 이야기의 흐름과 무게감에 비추어 볼 때, 드라마적으로 중요한 장면이, 턱없이 부족한 설명으로, 허무하고 애매한 설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드라마의 두 번째 아쉬움은 드라마 시작부터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었던 과도한 PPL이다.

난 첫 회를 보면서는 김은숙 작가가 하도 PPL을 많이 해서 이제 도사가 다 됐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PPL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잘 숨겼기 때문이다. iloom 전광판 위에서 맥주를 마시며 은탁 엄마가 사고 나는 장면을 바라보는 것도 대놓고 PPL이었지만, 괜찮았고, 카누 커피잔에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것도 일상적이니 괜찮았다. 그 이후에도, 디카에 대한 설정이나, 시계, 디스커버리 점퍼, 스키장 정도야 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무슨 광고 회사에서 찍은 드라마처럼 드라마에 극적 갈등이 조금 약해진다 싶은 흐름마다, 드라마 이야기 전개나 인물 성격 묘사에 하등에 관련이 없는 장면에서, 대놓고, 뜬금없이 넘쳐나는 PPL들은 눈살을 찌푸릴 지경이 되고 말았다. 어떤 치킨집 냉장고에 음료수가 콜라나 맥주도 없이 '토래타' 한 종류뿐인 곳이 있을까? 또, 아이스크림 케이크까진 좋았는데, 크리스마스 사은품 블루투스 스피커 설명에, 설렁탕집  선물세트 설명까지 덧붙이는 모습을 보고는 뜨악~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은탁을 버스 사고로부터 구하고 데리러 온 차 안에서 자신이 해 왔던 일들에 대한 과거 설명 씬에 등장하는 대놓고 하는 숙취해소제며, 일룸 가구 PPL은 그대로 편집해서 CF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솔직히 지금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 환경을 생각해 봤을 때 PPL을 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 특성상 PPL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과한 것은 무엇이 되었든, 반감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아무리 드라마 수익 창출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하더라도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지경에 이르도록 PPL을 도배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PPL 씬들 때문에 극의 흐름이 끊기고, 맥이 빠지는 경우가 생겨났고, 필요 없는 씬들의 남발로, 필요한 설명이 부족해지는 등 드라마 완성도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제발... 정도를 좀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아쉬움은, 6부까지 완벽했던 드라마가 점점 뒤로 갈수록 완성도가 조금씩 떨어졌다는 점이다!

앞에서도 조금 이야기했지만, 드라마의 씬들은 이야기를 진행시키거나, 핵심 정서를 전달하거나, 인물 캐릭터와 배경 설명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조금씩 필요 없는 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에 말한 과도한 PPL 씬들도 그렇고, 없어도 전혀 궁금하지 않을 인물들에 대한 부연 설명 씬들이나, 알콩달콩한 사랑의 씬들도, 그 전과 다를 게 없는 상태와 정서들이 반복되기도 했다. 또한 기술적인 완성도에서도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은탁이 결혼식 축가 알바를 하는 장면은 편집에서 매끄럽지 못했고, 날아가는 은탁을 김신이 구하는 장면에서는 작은 전광판 트레일러 차량이 조금 밀렸을 뿐인데, 수십대의 차들이 파손되며 하늘에서 차가 2대나 떨어지는 개연성 없는 차량 액션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점을 지적하는 뉴스 기사들이 종종 눈에 띄는 것을 보니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듯하다. 어떤 기자는, 작가의 드라마 흐름이 너무 늘어져서 16부작이 아니라 13부 정도의 호흡으로 줄여야 한다는 기사도 있었고, 은탁과 김신의 멜로에 불이 붙지 않는다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13부 정도로 줄여야 한다는 기사는 아마도 필요 없는 씬들이 많아지며, 씬과 씬간에 긴밀함이 떨어지는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은탁과 김신의 멜로에 불이 붙지 않는다는 것 또한, 도깨비 커플의 주된 갈등이 약해지면서 오히려 써니 저승 커플의 애잔함에 멜로 라인이 밀리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을 지적한 것일 것이다. <태양의 후예>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있었는데, 드라마가 뒤로 갈수록, 주인공 커플에 사랑은 앞부분에 비해 애절함이 덜해지고, 오히려 써브 주인공 커플인 구원 커플의 이야기가 각종 고난과 역경을 겪으며 더욱 애절해지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태양의 후예>의 경우 구원 커플의 군대 계급, 신분 차이를 극복하는 극적 흐름이 극 후반부에 펼쳐지면서, 메인 커플인 송송 커플의 위기보다 정서적 파급력이 더 커졌다. 그런데, <도깨비>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은탁과 김신은 알콩달콩 사랑을 다져가기만 할 뿐 변화가 없는 사이, 저승과 써니는 운명적 사랑을 애써 감추며 헤어져야 하는 애절함이 표현되며 오히려 후반부엔 저승과 써니의 사랑에 정서적 몰입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 은탁과 김신의 멜로라인의 무게감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도깨비>에서는 탁월한 결론을 내림으로써 그 정서적 뒤바뀜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지만, 작가도 도깨비 멜로 라인에, 부족한 2%를 느낀 듯, 29세가 된 지은탁과 김신의 재회 장면에는 유난히 농도 짙은 키스씬과 스킨십이 많은, (시청자로서는 매우 설레는)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떨어지는 드라마 완성도의 아쉬움은, 드라마 사전제작이라는, 확실한 해결방법이 있다. 특히 촬영 기술적인 부분이나, CG, 편집과 사운드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얼마든지 완성도 높게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드라마의 강약 조절과 흐름에 문제도 대본이 완고 된 후에 연출과 제작자, 배우까지 함께 토론하며 만들어 간다면 충분히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배우들도 전체 흐름을 알고 연기하기 때문에 정서 변화와 흐름을 계산하기도 좋고, 연출에 있어서도 편차 없이, 보다 안정되게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전제작인 만큼, 과도한 PPL도 좀 줄테고 말이다. 드라마 완성도를 위해서, 사전제작은 많은 장점이 있으므로 지속적으로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금까지 드라마 <도깨비>의 가치와 아쉬운 점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어쩌면, 도깨비의 큰 가치로움에 비하면, 아쉬운 점이라는 것이 조금은 세밀한 부분이라, 드라마를 보고 즐기는 데는 아무 이상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와 드라마가 인생을 담아낼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힘이 센 예술이라 생각하고,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입장에서, 좀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보고 싶은 욕심에 더욱 치밀한 분석자가 되었던 것 같다. 아마도 공감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아니라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다양한 생각을 표현하고 나누는 것이 새로운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드라마를 이러한 관점으로 분석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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