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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테나 Jul 30. 2017

냉장고 속엔 머리! 얼어붙은 강 밑바닥엔 가슴이...

 영화 <해빙>의 아쉬움. 그리고 안타까움.

  영화 <해빙>은, 불안한 현실에 내몰린 중산층 지식인이, 위기 상황에서 비겁한 현실도피를 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리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배우 조진웅은 경제적으로 실패한 중산층 의사의 불안한 모습을 매우 사실적이고 진중한 연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으며,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배우 김대명과 신구의 연기는, 평범한 일상 속 공포의 그림자를 더욱 차갑고 섬뜩한 느낌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배우들이 제 역할을 훌륭히 해 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초반 홍보에 힘입어, 120만을 조금 넘긴 흥행 스코어를 기록했을 뿐, 재미에 있어서나 평단 평가에 있어서나 모두 아쉽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그 아쉬움의 이유, 흥행 부진의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스릴러 플롯 구성상의 계산 실수 때문이다.

영화는 처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공사 크레인이 떠 있는 남산타워의 야경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서울 한강변의 화려한 야경들과 밝아오는 아침 풍경 속에 목 없이 떠오르는 시체 한구. 화면 위를 흐르던 라디오 뉴스 소리는 아침 첫 출근하는 버스의 주인공 승훈으로 연결되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영화는 승훈이 여기 오게 된 개인적인 배경과,  친구 병원에서 수면내시경을 하는 월급 의사라는 사실, 새로 이사한 집 주변 낯설고 이상한 인물들을 소개하며 40분을 보낸다.


물론 감독이 생각한 이야기를 발전시키고 고조시키는 첫 번째 플롯 포인트는 정노인이 내시경 도중 내뱉는 토막살인을 고백하는 장면일 것이고, 두 번째는 이혼한 아내와 격하게 싸우는 장면일 수 있으며, 세 번째는 정육점 냉장고 속에서 머리를 발견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구성 포인트들은 주인공 승훈의 행동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불안한 분위기만 조성하고, 영화 전체의 핵심 갈등으로 자리잡지 못한 채 그냥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관객들은 초반 40분 동안 스릴러 냄새만 풍기는 영화를 보며 정서적 몰입감을 갖지 못한 채 지루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승훈이 정말 놀라고,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하는 장면은, 영화를 시작하고 40분쯤 뒤인, 자신의 냉장고 냉동실에 실제 사람의 머리가 발견되었을 때부터다. 정육점 사장은 의심쩍게 굴고, 간호사 미연의 비리가 밝혀지고, 아내가 실종되고, 형사가 찾아오면서 드라마는 극적 구조에 힘을 갖게 된다. 승훈의 주변 인물들이 정육점 사장에게 하나씩 노출되고, 그에 대한 승훈의 의심과 두려움이 높아져 갈수록 정육점 사장과 부딪히는 과감한 행동들이 이어지게 되고, 극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것이다. 그렇게 40분이 흐른 뒤, 클라이맥스라기엔 조금 마무리가 애매한, 정육점 남자와의 냉동실 격투가 벌어진다.


그 이후, 영화는 드디어 해결점을 향해 가파르게 달려가며 그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한 해답을 하나씩 하나씩 보여준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 이거였고, 이것은 승훈의 상상 속 인물일 뿐이고, 감춰진 진실은 바로 이것이었다고 말이다.  앤딩을 앞둔 조급한 시간에, 그것들을 친절하게 정리해서 탁탁 내어주다 보니, 영화의 마지막 20분은 그저, 감독이 알려주는 영화 퍼즐의 해답 맞추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가장 흔한 방식으로 정답을 맞춰주다 보니 여기서도 맥이 빠져 버리긴 마찬가지가 되어, 반전은 오히려 재미를 잃고, 어디서 많이 본 반전, 반전을 위한 반전이 되어버리고 만다.


한 마디로 대대적인 영화 홍보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꽤 흥미로운 이야기 소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재미에서나 평단 평점에서나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던 것은 스릴러 영화가 가져야 하는 관객의 심리를 주도하는 극적 구성의 흐름을 잘 못 계산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핵심적으로 초반부터 가지고 있어야 하는 중심 갈등에 대한 질문과 호기심을 영화가 시작한 지 40분이나 지난 뒤에서야 작동하게 했으며, 반짝 40분 갈등이 고조되는 듯하다가 마지막 앤딩을 설명하듯이 뻔하게 정답 맞히기를 하는 바람에 앤딩 반전에서 오는 재미를 오히려 많이 감쇄시켜버리는 결과가 된 것이다.


두 번째 흥행 부진의 이유는 이야기에 관객들을 몰입시키는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스릴러라는 장르가 치열한 머리싸움 같지만, 실은 어느 장르 못지않은 관객의 몰입감이 중요한 장르다. 호러처럼 대 놓고 깜짝 놀라게 하고, 기괴한 느낌으로 기분 나쁜 공포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사람의 심리에 파고들어 긴장감을 높여야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릴러 영화는, 각종 위기상황들을 통해 관객 스스로가 갖고 있는 불안 요소를 자극하면서 주인공의 긴장과 두려움을 관객이 함께 느끼게 하며 주인공의 심리에 천착해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스릴러 영화를 보는 사이, 살아 남기 위해 행동하는 주인공의 선택에 동참하며 간접경험처럼 실감 나게 만들거나, 주인공은 모르지만 관객만 알고 있는 영화 속 위험에 다가가는 주인공을 보며 안타까움 속에 공포와 연민을 느끼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결론에서 펼쳐지는 해결의 카타르시스를 시원하게 느낄 수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풍부한 시청각적 효과와 이야기 긴장감의 강약 조절, 정서적 전달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러분도 인상적인 스릴러 영화들을 한 번 생각해 보라. 명작이라 일컫는 스릴러일수록, 서정적인 아름다운 음악이나, 재미있는 장면들, 또는 감동과 정서가 풍부한 장면들이 꼭 들어 있다. 그런 장면들이 있어야 스릴러의 긴장과 공포가 더욱 대비되고,  그 매력과 깊이감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빙>의 경우는 우선, 주인공 승훈의 정서와 느낌을 관객들에게 심도 깊게 전달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우리는 그가 어디서 왜 왔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공포를 갖고 있는지 그의 감각적인 정서적 내면을 느끼지 못한다. 감각적으로 와 닿지 않는 사람을 우리가 정서적으로 밀접하게 느끼고 공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적어도 영화 초반부에는 승훈에 대한 매력이든, 연민이든, 관객이 그에 대해 어떤 마음으로 바라봐야 하는 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정서적 표현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삼각김밥이라는 코드는 매우 아쉬움이 남는다. 삼각김밥이라는 설정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혼자 사는 이혼남의 정서를 보다 느낌 있게 전달해 줄 수 있는 에피소드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초라하게 혼자 먹고, 목 막혀하는 장면만 보여 줬더라도 말이다.


또, 영화의 몰입도를 증가시키는 데는 시청각적 요소들의 풍성함이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런데 영화는 미술적인 면에서 그 색깔이 애매하다. 승훈의 방을 제외하고는 미술적 완성도가 높지 않다. 특히 정육점 공간들이 더욱 그런데, 일단 정육식당 안의 모습도 모습이지만, 가장 부실한 점이 느껴지는 것은 냉동실 장면이다.  냉동실 안을 푸른빛으로 하는 게 맞았을까? 에서부터 그 속에 있어야 할, 분위기를 북돋을 수 있는 수많은 상상의 결과물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다 못해 걸려 있는 시 뻘건 육고기라도 더 있어야 했다. 또한 승훈이 자신의 화장실에서 보는, 정육점 부자의 여자 시체 절단 장면도 너무 아쉬운 장면 중 하나이다. 충분히 섬뜩할 수 있는 장면인데, 그저 주인공이 상상하는 목 없는 시체만 늘어져 있을 뿐, 섬뜩함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커트들과 조명장치 등은 보이지 않는다. 그 장면에서 그나마 표현적인 커트로 들어간 장면이 봉에 꽂힌 뾰족한 걸쇠들과 시체의 뒷발목을 칼로 그어 피를 내는 장면뿐이다. 정육점 사장의 얼굴에 튄 피라든가, 칼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 흥건한 핏물을 손으로 만지며 기괴한 표정을 짓는 정노인이라든지, 얼마든지 더 풍부한 공포를 만들어 낼 수 있는데 말이다.


한마디로, 감독은 영화 속 정서 표현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저 이야기의 숨겨진 비밀 찾기를 위해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고,  배우들만 데리고 직진하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인물의 정서적인 느낌은 살지 않고, 관객은 몰입에 실패하게 되고, 이야기는 줄거리 요약본처럼 재미의 디테일이 생략되어버린다. 그저 핵심 이야기 내용만 덩그러니 알려주는 꼴이니 관객들이 흥미를 느끼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다 감각적인 표현들은 조금 올드한 느낌마저 든다. 공포스러운 상황에 나오는 기괴한 초현실주의 같은 음악은 90년대의 저예산 독립영화들을 떠오르게 하며, 작가가 주제의식을 의식해서 넣은 신도시 개발 풍경은 80년대 초반 한 참 도시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거기다 커트 속도와 카메라 앵글 또한 풍성하지 않으니, 감각적으로 올드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일부러 그런 느낌을 준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만일 그것이 의도였다면, 영화의 감각적인 느낌에만 그 올드함이 묻어 날게 아니라, 미장센과 다양한 시각적 요소들에 대해서 그런 표현을 정확히 했어야 했다. 그리고 오히려 감각적으로는 새롭고 다양하게 하면서 시대상과 그 흔적을 드러내는 표현을 했다면, 영화는 훨씬 더 풍성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배우들은 주인공인 조진웅부터 조단역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만들어 낸다. 이것은 이수연 감독이 연기에 대해 안목이 있으며, 그 중요도를 알고, 배우들의 연기를 살려내기 위해 부단히 신경 쓰며 촬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녀가 가진, 그리고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럼 이제, 훌륭한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들을 한 번 살펴보자.

내과의사 승훈을 연기하는 조진웅은 자타공인 노력파 연기자이다.

 자신이 맡은 역할에 따라 몸무게를 줄였다 늘였다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진중하고 심각한 역할에서 코믹한 역할까지 매체와 장르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드라마와 영화 관계자들에게 믿음을 주는 배우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는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 재학 시절엔 연출 전공을 했으며,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과는 정서적 호흡에 신경을 많이 쓰는 감수성 넘치는 배우라고 한다.


특히 이수연 감독은 인터뷰에서 아내 수정 역할의 윤세아와 승훈 역할의 조진웅이 함께 사랑하고 싸우는 장면을 오롯이 두 배우가 만들어 낸 장면이라며 극찬했다. 이혼한 아내 역할의 윤세아는 극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단 두 씨퀜스에만 등장하는데, 중반 앞부분에 싸우고 폭발하는 장면에선, 신경증적이고 예민한 여자의 감정을 너무나 잘 보여줬으며, 마지막 조진웅의 회상 속에 나오는 아내 수정의 모습에선, 망가져가는 남편을 아직도 사랑하기에 걱정하고 분노하는 여자의 아픈 사랑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해낸다.


물론, 그 씬에는 든든한 에너지의 흐름을  만들어주고 정서를 북돋워주는 배우 조진웅이 있었다. 그는 뛰어난 정서적 몰입감을 심어주는 연기를 한다기 보단, 보는 사람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연기를 한다. 아마도 다른 배우들과의 조화와 정서적 호흡에 신경 쓰는 그의 연기 내공과 철학이 관객들에게 믿음을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특히 내가 인상적으로 본 조진웅의 연기는 겁먹은 표정이다. 커다란 눈으로 겁먹은 표정을 연기할 때면, 이 영화 속 장면들이 그렇게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줄 정도로 무섭거나 아슬아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긴장감 높은 정서를 전달해준다. 만일, 조진웅의 연기가 조금은 오버스럽다고 느꼈던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배우의 연기 잘못이라기보다는, 영화의 스릴러적 정서의 몰입도와 배우의 연기 몰입도에서 그 균형이 맞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준 두 번째 핵심 배우는 정육점 사장으로 나오는 김대명이다.

그는 자타공인 생활연기의 달인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김대리 역할을 통해 한마디로 무명에서 일약 CF스타로 발돋움한 배우이다. 나 또한 드라마 <미생>에서 보여준 그의 사실적인 연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의 연기는 하루아침에 뿅! 하고 발현된 게 아니다. 수십 편의 연극과 영화, 드라마에서 단역과 조연을 거치면서 다져진 엄청난 내공을 축적한 결과였다.


특히 그의 매력은 감독이 의도적으로 인물의 의외성을 설명하려 했던 조진웅과 처음 캔맥주를 마시는 씬보다는 마지막, 아버지가 저지른 사고를 보고, 좌절하면서도 아들로서 어쩔 수 없이 처리해야 했던 마지막 앤딩 블랙박스 장면에서 드러난다. 아버지가 또다시 살인을 저지른 것을 보게 된 아들은 처음엔 한탄 같은 한숨을 쏟으며 좌절했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시체 뒤처리하러 다가가고, 반짝이는 차량 블랙박스를 보며 흠칫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가 다시 결심한 듯 차량 블랙박스 칩을 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마지막 앤딩은, 사건의 진실을 알려주는 것뿐 아니라, 김대명이라는 배우의 사실적 연기의 유려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나긋나긋한 말투와 목소리처럼 자상한 성격의 아들이지만, 또 너무나 능수능란하게 살인 뒤처리하는 시크한 뇌섹남! 정육점 사장의 매력이 마지막에 가서야 슬쩍 드러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만약 김대명이란 배우가 없었다면 그런 롱테이크 앤딩이 가능했을까?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거기에 유일하게 대본 쓸 때부터 염두에 두었다는 정노인 역할의 신구는 그 존재만으로도 영화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완벽한 캐스팅이었다. 별다른 연기를 하지 않아도, 넋 놓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야기의 정서를 표현해 낸다. 기괴함을 배가시키는 무표정한 얼굴. 웅얼웅얼하는 듯 하지만 또렷이 내용 전달이 되는 쉰듯한 마찰음의 목소리. 그건 분명 오랜 시간 갈고닦은 내공이 쌓여 있는 빛나는 고수의 연기였다.


허영심 넘치고 이기적인 미연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한 이청아는 그 전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색깔을 보여주며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정육점 부인 역할의 김주령 역시 착하지만 헤픈 아내 역할을 적절한 맛으로 살려내고 있다. 한 마디로 이 영화 속 배우들은 모두 믿음직한 연기를 해내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영화에 대한 아쉬움에, 영화에 부족한 점들을 더 많이 분석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난 이수연 감독이 매우 재능 있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매력 있는 소재를 잡아 낼 줄 아는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미스터리하게 끌고 가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매우 감각적인 탁월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그녀가 독립 단편 영화를 하던 시기에 만들었던 <라>, <물안경> 같은 영화들은 감각적으로 매우 탁월했으며, 독립영화에선 크게 신경 쓰지 않던 관객의 심리를 조율하는 극의 흐름을 만들어 낼 줄 알았었다.


하지만 상업 영화로 들어서면서 그녀의 영화는, 인물의 정서와 감정을 전달하는 데는 취약하고, 관객의 심리를 조율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플롯 포인트의 계산은 빗나가고 있으며, 반짝반짝하던 감각들은 점점 과거에 집착하는 고지식함으로 보이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만다. 전반적으로 모든 것을 자신이 결정하고 만들어 내야 한다는 독립영화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부각되는 한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수연 감독이 조금만 더 상업영화의 이야기 흐름에 대한 분석을 치밀하게 하고, 관객의 생각과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흐름과 방법을 연구했었다면... 또,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도 자신이 끌고 갈 수 있는 스텝보다, 자신의 영화에 풍성함을 더해 줄 수 있는 스텝들과 열린 마음으로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면... 지금 보다는 훨씬 멋진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이수연 감독이 14년 만에 들고 나온 영화 <해빙>이... 더욱, 많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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