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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테나 Sep 28. 2017

<황금빛 내 인생>은  막장 드라마가 아니어야 한다!

연출과 대본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는 <황금빛 내 인생>

KBS 주말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은 여러 가지 면에서 주목받으며 시작한 드라마였다. 우선, <비밀의 숲>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신혜선이 처음 주연으로 나서게 되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함께 하는 남자 주인공이, 오랜만에 돌아온 박시후라는 점도 언론에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거기다 KBS 주말드라마에서 <내 딸 서영이>로 40% 넘는 시청률을 올린 소현경 작가와 역시 40% 넘는 시청률을 올린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김형석 PD의 만남이니, 주목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황금빛 내 인생>은 내용이 알려지면서부터 막장이라는 수식어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기존의 막장드라마라 불리던 드라마 속 '출생의 비밀'과 '  '남매간 사랑'이라는 설정 때문이었다. 이 드라마에 '막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던 사람들은, '출생의 비밀' 코드가 막장을 답습하는 것이고, 남매로 만나게 된 남녀가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막장 코드라는 설명이었다. 그럼, 그들의 의견처럼, '출생의 비밀'과, 혈연관계가 아닌, 가짜 남매의 사랑이 정말 용납할 수 없을 정도의 막장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한 번 살펴보자.


'출생의 비밀'이라는 코드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신화와 전설에서부터 발전되어 온, 매우 오래된 플롯 중 하나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제우스의 혼외 자식들은 변신에 능한 아버지 덕분에 출생의 비밀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이 흔한 일이며, 기원전 5C에 쓰인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까지 하는 파격적인 내용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오이디푸스 왕>을 막장 이야기라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비극적인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심리적 기저를 찾아내, '오이디푸스 컴플랙스'라는 심리학 용어까지 만들어 내며,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전으로 읽고 있다.


오이디푸스의 '출생의 비밀'과 파격적인 상황에 비하면, 혈연적 관계가 전혀 없는 남녀가 남매인 줄 알았다가 연인으로 발전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무난하기까지 한 설정이다. 또, 파격적이고 비윤리적 상황이나 관계를 보여주는 것 자체만으로 모든 예술 작품을 막장이라 몰아붙이게 된다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관계와 숨은 욕망을 포착해 낸, 미술과 문학 역사에 빛나는 문제작들은 모두 막장이 되어버리고 만다.


여성 누드화에 처음으로 여신이 아닌 매춘부를 그려 넣어 문제작이 된 마네의 <올랭피아>


막장 드라마라는 말은, 드라마 속 인물들의 관계 설정만을 가지고 낙인찍듯이 사용해선 안 된다. 그 말은 작가가 그려내는 인물들의 표면적 관계 설정이 아니라,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숨은  의도와 그것을 표현하는 완성도를 전체적으로 살펴본 후, 이야기되어야 한다. 흔히 말하는 막장 드라마의 문제점은, 인물의 관계 설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주제의식과 완성도는 내팽개친 채, 개연성 없이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이야기 전개와, 정서적 흥분만 유발하는 말초적 표현을 남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황금빛 내 인생>이 막장 드라마라는 말은 옳지 않다. 이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은 작가의 주제의식을 발현시키기 위한 서지안의 롤러코스터 인생의 출발 버튼으로서 필요성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남매간 사랑' 또한, 혈연관계가 아닌 것을 이미 시청자들이 알고 있는 데다, 극의 중반 이후, 등장인물들이 모두 알고 난 후에 일어날 일이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 아마도, 서민의 삶으로 복귀한 지안이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녀의 당당함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의미에서 꽃 피우는 사랑이 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다만, 막장 드라마가 아니라는 확신에도 불구하고 걱정되는 것은, 회차가 거듭될수록 하나 둘 드러나는 드라마의 개연성 부족에 대한 심각함이다.


<황금빛 내 인생>이 시작되고 2회 만에,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며 막장 드라마로 다시 한번 오해받는 데는, 극의 개연성 부족의 탓이 컸다. 자신의 친딸을 찾기 위해 미정(지안의 어머니)의 집에 쳐들어 온, 명희(최도경 어머니)에게, 데려다 기른 딸이 지안이라고 거짓말하는 미정의 심리를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 회차가 지난 뒤,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정규직을 빼앗은 친구와 싸우다 경찰서까지 간 지안의 모습을 보며, 미정이 안타까운 마음에 내뱉은 거짓말이란 사실이 설명되지만, 너무 늦은 설명은, 억지 변명으로 느껴지고 만다. 중요한 극적 전환점에서 드러난 부실한 개연성은 '출생의 비밀'이라는 신선하지 않은 코드와 맞물려 막장드라마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빌미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빛 내 인생>은,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보려는 지안의 노력하는 모습과, 사회적 약자로서 감내해야 하는 흙수저의 고통에 시청자들이 공감하면서, 꾸준히 시청률이 상승하고 있다. 또 다른 시청률 상승의 원인으로는, 드라마 구성상의 전략도 크게 한몫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주인공 지안이 재벌 집으로 빠르게 입주했다는 사실이다. 지안이 재벌집으로 빠르게 입성해 들어가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한 번쯤은 꿈꿨을 법한 신분상승 판타지가 충족되는 것과 동시에, 두 집 사이에서 갈등하는 지안의 모습이 본격화되어, 드라마의 핵심 갈등 속으로 빠르게 몰입해 들어가는 효과를 거둔다.


빠르게 전개되는 갈등으로 흥미를 더하던 중에, 중요한 장면에서 또다시 드러나는 개연성 부족의 문제는, 드라마의 재미에 찬물을 끼얹고 만다. 재벌 부모에게 가기로 한 지안에게 진실을 밝히려고 찾아온 아버지 태수가 아무 말도 못 하는 장면은, 갈등을 키우기 위한 드라마적 장치의 뻔함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진실을 말하기 앞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려는 태수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핵심에 다가서지 못한 말들이 지지부진하게 계속 나열되는 것은 갈등을 점점 꼬아가겠다는 인위적인 의도가 드러나, 개연성을 심각하게 손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지안이 재벌 집으로 가겠다는 결심과 태도를 빠르게 드러내서 아버지의 말문을 막는 것이, 개연성을 확보하는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또, 7회 마지막 장면에서 지안에게 나가라고 소리치는 도경의 모습 또한, 캐릭터의 개연성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어, 낯설고 어색하다. 8회 앞부분에 드러나는 도경이 화낸 이유는, 지안이 자기의 성의를 무시하고, 집에 적응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20여 년 만에 찾은 동생을 나가라고 말한다는 것은 도경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들을 볼 때,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다. 게다가 대사의 흐름 또한 산만해서 그 씬이 가진 중요도에 비해, 의미 전달력은 현격하게 떨어진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한동안 드라마에 뜸했던 배우 박시후의 부족한 분석력과 표현력 때문일 수도 있고, 드라마 속 감정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리듬감 있게 만들어내지 못한 부족한 연출력 때문일 수도 있으며, 아예 캐릭터 설정을 치밀하게 계획하지 못한 작가의 실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의 책임이 되었든, 그전까지 도경은 한 번도 진지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으며, 그의 비서와 함께 드라마의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주도하는 캐릭터로만 보인 게 사실이다. 그런 도경이 갑자기 심각한 모습으로 돌변해서는 지안에게 소리까지 지른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도 이상하다. 7회 앤딩 장면을, 궁금증 유발 대사로 끝내려는 작가의 계획된 의도가, 오히려 남자 주인공의 부실한 캐릭터만 드러내고 말았다.


8회에서 개연성 부족이 가장 뼈아프게 드러나는 장면은 장남 지태가, 여자 친구 수아의 소개팅을 목격하고 싸우는 장면이다. 가난한 집 장남으로서 지태의 현실적 고민을 보여 주는 장면이면서, 아버지가 우연히 그 장면을 보고 지태의 속 마음을 알게 되어, 삶의 비애가 더욱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중요한 씬이다. "내 자식한테 나 같은 가난, 대물림하기 싫어서 결혼 안 해"라는 지태의 대사를 통해, 작가는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과 깊이 있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표현해 내지만, 낯선 장소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우연히 만난다는 작위적 설정 때문에 개연성에 있어서는 약점을 드러나고 만다.  


거기다, "감정은 끝났으니 헤어지자고 말해"라며 애인을 다그치는 지태의 분노 연기는, 재미없고 답답하기만 하다. 피아노 건반을 강하게 누른다고 해서 음악의 강렬함이 살아나는 게 아닌 것처럼, 소리만 지른다고 해서 감정의 격렬함과 상처 입은 마음이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한 번의 싸움 씬에도, 기승전결의 심리적 흐름이 있고, 순간순간 스쳐 지나가는 다양한 정서 변화와 호흡이 있다. 여자 친구의 옷이 찢겨나갈 정도의 격렬한 싸움이라면, 자책과 울분이 뒤섞인 복잡한 심경이 더욱 섬세하면서 강렬하게 표현됐어야 했다. 가난한 집 장남으로서 지태가 가진 컴플랙스와 비애감을 제대로 표현한 대사 덕분에,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장면이 될 수는 있었지만, 몰입감 100%의 리얼한 감정을 실감 나게 표현하지 못한 지태의 연기는 캐릭터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이 장면이 가장 뼈아픈 이유 중 하나는 정확하지 않은 연출력 때문이다. 배우의 감정이 밋밋하면, 연출이 감정 변화를 요구할 수도 있고, 싸움의 강렬함이 부족하다면, 연출이 동선과 액션을 통해 강렬한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또, 다양한 앵글과 커트의 변화를 통해 배우의 호흡과 리듬을 조율하고, 부족한 몰입감을 최대한 보완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보이는, 카메라 앵글은 전혀 효과적이지 않고, 호흡을 조율하는 커트 리듬은 어딘가 박자가 맞지 않는다. 인물의 동선과 대사 톤은 단조롭고, 심리적 디테일은 정서적 커트 리듬을 놓치면서 길을 잃었다. 그로 인해, 지태의 분노와, 싸움의 역동성, 섬세한 감정은 대사를 통해서만 전달될 뿐, 정서적 몰입감을 동반하며 깊이 있게 전달되진 않는다. 이 장면 말고도, 간혹 정서적 흐름이 끊기거나 튄다는 느낌이 드는 씬들이 종종 있었는데, 경험 많은 PD의 연출작에서 어떻게 이런 장면들이 연출되어 나오는지 의아스럽다.


연출은 각 분야의 전문가인 스테프들을 단순히 조율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드라마를 만드는 전문 스테프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서, 대본 속, 이야기의 내용과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연출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작가와 함께 소통하고 통찰해서, 굳건하게 지켜 내는 심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또, 작품 세계에 빠져 있는 작가를 대신해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개연성을 살려낼 수 있어야 하고, 정서적 감수성으로, 배우의 말과 행동에 리듬감을 조율해 낼 수도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연출자는 작품의 완성도를 마지막까지 책임져야 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기 때문이다.


솔직히, 드라마의 개연성이 허술해지고, 캐릭터의 부실함이 드러나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작가가 애초에 너무 쉽게 생각하고 어설프게 설정한 것이 잘못일 수도 있고, 배우가 대본 속 캐릭터를 잘 못 이해해서, 흐름과 입체성이 깨진 것일 수도 있으며, 전체를 통찰하지 못하는 연출이 현장에서 대사와 지문을 바꾸거나 정서적 흐름을 잘못 조율해서 꼬였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의 소통이 부실해지면, 이런 문제점들이 더욱 극단적으로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다. 어쩌면, 높은 시청률 덕에 지금은 이런 문제점이 가려져, 심각하게 생각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개연성 부족과 소통 부재 현상이 자주 반복되다 보면 드라마의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완성도가 떨어진 드라마는 당연히 정서적 몰입감도 깨질 수밖에 없고, 드라마 속 인물에 몰입하지 못한 시청자들은 다른 드라마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난 소현경 작가가 일관되게 그려온 "인간성 회복"이라는 따뜻한 주제의식이 좋다. 솔직히 불만스러운 장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작가가 가진 주제의식을 살려서 최대한 완성도 있는 드라마로 만들어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스텝과 배우들이 다 같이 노력할 필요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연출자와 작가의 원활한 소통과 공감이 가장 중요하다. 작가와 연출자가 함께 소통하고 협력하며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해 간다면, 부실한 개연성도 바로잡고, 캐릭터의 입체성도 살려내서, 막장 드라마라는 말도 안 되는 오명을 다시는 언급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황금빛 내 인생은> 절대로 막장 드라마가 되어선 안 된다. 소통과 협력으로 드라마적 완성도를 높여, 고단한 삶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금수저의 삶이 항상 좋기만 한 것만은 아니며, 행복한 삶은 우리 스스로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시민들의 작은 행복의 가치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좋은 드라마가 되어주길 바라고, 원하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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