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테나 May 28. 2018

<스탠바이, 웬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자폐증 소녀 웬디는 '스타트렉'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최고의 덕후다. 그녀는 파라마운트사의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에 시나리오를 내기 위해 직접, LA로 향하는 모험을 시작한다. 한 번도 가본 는 길을 가고, 해본 적 없는 일  하나씩 해 나가며, 웬디는 위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LA를 향해 나아간다.



웬디의 여정은 우리의 여정과 다르지 않다.

그녀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용기와 자혜를 발휘하며 인생 최초이자, 최대의 모험을 과감히 단행한다. 한 번도 건너본 적 없는 복잡한 신호등을 건너, 처음으로 장거리 시외버스 티켓을 물어물어 구매하고, 동물 출입 금지라는 표시를 보고, 자신을 따라 나온 피트를 요령껏 숨겨 버스에 오르는 융통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들키는 바람에 중간에 버스에서 쫓겨 어려움을 겪지만, 돈과 아이팟은 빼앗기더라도 수첩은 되찾는 영리한 선택을 할 줄도 알고, 자신의 여정이 강제로 종료될 위기에 처한 병원에서 몰래 빠져나오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나쁜 일들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녀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가게 주인을 꾸짖어 준, 요양원 할머니에게서 가족과 인생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말이 통하는 스타트렉 덕후 경찰관을 만나, 무사히 언니와 센터 선생님과 함께 여정을 마무리하는 행운을 맞기도 한다.


자폐증 소녀 웬디의 2박 3일간의 모험은 그 어떤 비장애인이라 해도 더 이상 잘할 수 없을 만큼 우여곡절을 잘 이겨낸 대견한 여정이었다. 그녀가 여행 중 겪은 나쁜 사람들과, 불운한 일들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이었다. 여행을 하며, 돈을 도둑 맞거나,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쓰고,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는 비장애인들도 얼마든지 겪는 일 아닌가? 다만, 그 문제를 해결하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가 문제인데, 웬디는 처음 겪는 낯선 어려움들 속에서도, 스스로 "스탠바이 웬디!"를 외치며 꿋꿋하게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지혜와 의지를 보여준다. 특히 그녀가 쓴 시나리오 속, 대사 "함장님! 논리적인 결론은 단 하나! 직진입니다!"라는 말을 되뇌는 위기의 장면은, 좌절하지 않는 웬디의 굳건한 의지를 보여주며, 박수 쳐 주고 싶을 만큼 찡한 울림을 전해준다.


웬디가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영화 속 여정은, 어느 순간, 우리 삶의 여정을 그대로 떠오르게 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영화 깊숙이 끌어들인다. 인생의 작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들과, 절망의 경험을 한 번이라도 했던 사람이라면, 웬디의 힘든 여정에 깊이 공감하며 그녀를 응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웬디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

웬디는 우리처럼, 낯선 환경에 나아가길 두려워하지만, 꿈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어려움 속에서도 문제를 해결해 가는 지혜를 발휘할 줄 알고, 어떠한 절망에도 좌절하지 않는 굳건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다만, 사람들과 감정을 교류하고, 의사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그 또한 조금 독특할 뿐 불가능한 일이 아니니, 그녀의 자폐증은 그저 남들과 조금 다른, 독특한 특징 정도로 이해할만하다.


사람들은 흔히 장애인이라고 하면, 우리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어떤 일들은 그들이 할 수 없을 것이라 미리 단정 지어 그들을 배제하고, 소외시키면서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 영화 속, 웬디의 언니 오드리 또한 조카를 보고 싶어 하는 웬디에게, 너는 아기를 돌볼 수 없을 것이라며 미리 단정 지어 얘기해서 웬디가 흥분하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달리, 장애인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들이 많다.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은, 비장애인이라 해도 할 수 없는 경우들이 많고, 직접적인, 신체적 정신적 연관성 있는 일만 아니라면, 생각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하다. <스텐바이 웬디>는 장애를 가진 사람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내 보여준다. 그들도 우리처럼, 아니 어쩌면 좀 더 많이, 힘겨운 인생의 여정을 함께 하고 있으며, 그들도 우리처럼 꿈을 향해 한 발작씩 나아가길 원하고, 노력하며, 스스로 삶을 만들어 가는 우리 사회 구성원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여정의 공감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웬디의 여정은 자립의 준비가 됐음을 보여준다.

파라마운트사에 성공적으로 시나리오를 내고 돌아온 웬디는 언니 오드리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작은 갓난쟁이 조카조차 돌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언니에게, 자신이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목표한 일을 훌륭하게 마무리 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낸다.  


영화 시작 부분이 웬디의 '스타트렉' 시나리오 속 장면이었던 것처럼, 영화 마지막 씨퀜스 또한, 웬디의 시나리오 속 마지막 내레이션으로 장면이 시작된다. "그들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를 놓아줄 때라는 걸 알았다!" 시나리오 속 두 인물로 묘사된 커크와 스팍의 관계가 사실은, 웬디와 언니 오드리의 관계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 사막 같은 우주 공간에서 헬맷을 벗은 시나리오 속 주인공은 웬디로 그려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언니네 집 앞 장면. 웬디는 보고 싶었던 조카 루비를 품에 안고 언니 옆에 기대어 앉는다. 웬디는 언니로부터 조카를 돌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았고, 그렇게 같이 있고 싶던 언니 옆에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언니와 웬디의 생활이 언제까지 함께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서로를 놓아줄 때라는 걸 알았다' 는 시나리오 속 대사로 봤을 때, 언니는 웬디가 자립 능력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녀를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음을 알수 있다. 또, 웬디 자신도 여정을 통해, 언니로 부터 자립해야 할 때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Please Stand By!

영화 <스텐바이 웬디>의 원제는 <Please Stand By> 다. 이 말은, 영화 속에서 웬디가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느낄 때, 센터장이나 웬디 스스로가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외쳤던 말이다. 하지만, 뒤에 웬디의 이름이 붙지 않은 영화의 원제목은, 보다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Please Stand By"는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웬디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듣는 말이기도 하지만, 웬디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웬디는 자폐증을 갖고 있지만, 그 어떤 비장애인보다도 훌륭히 자신의 삶의 목표에 도전하고,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하며 인생의 여정을 훌륭하게 살아가고 있다. 돈을 지불할 때 오래 걸린다던가, 다른 사람을 쉽게 믿어 사기를 당하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주면, 충분히 적응하고 지혜롭게 일을 처리할 수 있으며, 자립적 생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웬디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시간의 배려를 받고, 옆에 서서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며, 그녀를 지지해 주는 주변 사람들이 필요할 뿐이다!

 "Please Stand By!"
그것은 우리가 그녀에게 보여줘야 할 태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라이크 크레이지> 에로스의 결말, 혹은 새로운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