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는 정의로운가
며칠 전 독서모임에서 한 멤버가 소개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 관한 내용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신이 충격받은 학생들의 '차별'에 대한 생각을 쓴 글인데, 이 주제와 관련하여 꽤 열띤 토론을 했다.
한 사람이 '자신이 더 잘 되는 길'과 자신이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사회가 잘 되는 길'의 기로에서
전자를 택했다고 하여 우리가 비난할 수 있는가?
후자를 선택하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가?
저자는 여기서 세 가지 포인트를 던진다.
기회는 균등한가
과정은 공정한가
결과는 정의로운가
과연, 우리는 애초에 균등한 기회를 가졌는가?
이 부분에서 롤스(J. Rawls)의 정의론이 언급되었다. 롤스는 무지의 베일이라는 원칙하에서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를 소외시키지 않는 분배 원칙을 선택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노직(R. Nozick)은 사람들이 갖는 소유권을 존중하는 분배는 정당하다고 전제하는 권한으로서의 정의를 주장했다. 쉽게 말해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해서 더 좋은 대학을 나왔으니 더 좋은 곳에 취직하는 게 정당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롤스는 '그렇다면 태어날 때부터 당신이 더 많은 재능을 갖고 있었다면, 그것이 공정한 게임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사회적 정의(justice)라는 것은 정의(define) 하는 단계에서 너무나도 많은 변수를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학자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정의론이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나도 석사논문으로 '이민정책과 사회정의'를 썼지만, 아직까지도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은 내리지 못 했다. 당시 논문에서 이용했던 사회적 정의의 프레임워크는 프레이저(N. Fraser)의 정의론이었는데, 여기서는 서로가 가진 다름을 '인정' 받으며, 동등한 입장에서 '사회적 참여'권을 갖는 것을 정의롭다고 표현했다.
살면서 지키고자 하는 것 중 하나가 '정의로운 편에 서기'이지만, 가끔은 무엇이 더 정의로운지 도덕적 판단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 이유는 정의로운 결과가 나오기 위해 보장되어야 하는 균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에 대한 정보가 누락되었기 때문일 거다. 당시에 프레이저의 정의론을 썼던 이유는 내가 연구한 이민정책의 부당함을 증명하기에 가장 알맞은 이론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가 생각하는 '정의'라는 개념에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차별을 하고, 차별을 당연히 받아들인다. 내가 차별받는 것이, 그리고 내가 차별을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그 행위가 정의로운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대우', 즉 좋은 차별을 받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도 부당한 차별에는 발끈하게 된다. 내가 대우받는 입장이 되었을 때, 나로 인해 차별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까지도 고려할 수 있는 사람, 정의를 실현하려고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결론은, 정의를 지키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