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글쓰기 챌린지 Day 4 책
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한 달에 몇 권을 읽는지, 혹은 몇 시간을 읽는지, 그런 숫자들이 필요할까 머뭇거리게 되지만, 그래도 나는 책이 좋다.
책 그 자체, 물건으로써의 책도 좋아한다. 요즘 책들은 표지도 예쁘고 색감도 다채로워서, 책장에 꽂아만 두어도 컬러테라피가 되는 것 같다. 책마다 다른 책 냄새도 좋다. 그래서 새 책을 사면 꼭 코를 대고 새 종이 냄새를 맡아보곤 한다. 얼마 되지 않은 잉크 냄새랄까, 괜스레 풀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새 종이의 빳빳함도 좋아한다.
책과 함께하는 시간도 좋다. 행간에 몰입되는 그 순간들, 때론 활자에 감동하고 벅차오르는 마음이 들 때도.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는 것도 좋아해서, 자주 들러 어떤 새로운 책이 나왔는지 보기도 하고, 오래된 책들이 새 옷을 입고 재출간된 것들도 보곤 한다.
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든 책.
어떤 책이 나를 한 걸음 나아가게 만들었을까?
물론, 인생이란 한 권의 책으로 한순간에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움직이게 만든 책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여러 책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움직이라고 채찍질해 주는,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방법까지도 번호를 달아 제시해 주는 자기 계발서도 아니었던 것 같다. 때로 자기 계발서가 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그리 길게 가지는 않았다.
한 번씩 꺼내보는 책들을 생각했다. 그럴 때 떠오르는 책 속의 인물들이 있다. 그 인물의 이야기들. 결국에 나를 나아가게 만든 건 이야기, 서사인 것 같다.
내가 읽은 책들은 항상 그때 나의 삶에 가장 맞닿아 있는 책들이었다. 그 당시 내가 마주했던 고민들, 또는 흥미 있었던 것들, 때론 필요로 했던 것들. 그래서 비슷한 고민이 반복될 때, 혹은 같은 용기를 필요로 할 때는 신기하게도 같은 이야기가 떠오르곤 한다.
‘데미안’은 언제나, 한 번씩은 들춰보게 되는 책이다. 데미안에 대해 이야기할까 하다, 문득 소설 한 권, 그 주인공이 떠올랐다. ‘스물아홉,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무언가 고민이 많았을 때, 떠오르는 소설의 주인공, ‘아마리’ 때문이다.
이 책을 만난 것은 내가 스물아홉 즈음이었다. 서른이 오기 전, 무언가 20대가 끝난다는 공포감, 두려움에 서른이 되기 전 무엇을 해야 할지, 세상 밖에서 답을 찾고 있던 때였다. 그때 같은 나이, 스물아홉이란 단어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로, 주인공 아마리는 1년 후의 스물아홉 생일, 원 없이 소원을 이루고 죽겠다는, 스스로 시한부의 삶을 살겠노라 결심한다. 그 꿈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최고의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다. 아마리는 1년 동안 그 꿈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 어떻게 보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아마리가 살아가는 그 1년의 하루하루를 응원하게 되고, 어느 순간 아마리에게 내가 투영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마리처럼, 영원해 보이는 다가올 미래가 1년만 남아있다 가정하면, 지난한 일과도, 조금은 새롭게 느껴진다. 그때 아마리를 또 생각한다. 아마리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다시 한번, 작은 한 걸음이라도 움직여보자는 생각을 하게 한다. 물론, 한걸음 나아가는 날도 있었고, 때론 또 두 걸음 물러나는 날도 있다. 그래도 그런 소설 속의 이야기들이 내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이 책을 읽고 밖으로 돌렸던 나의 시선을 안으로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그전엔 ‘서른 전에 꼭 해야 할 일’ 같은 것들을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모른다. 타인의 욕망과 꿈을 찾아다니면서 나의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아마리를 만난 후 자문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것, 나의 삶을 위한 한걸음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책은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기둥이다. 책을 통해 지식을 얻기도 하고, 간접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독서는 나의 취미이자 위안이다. 앞으로의 시간에도 책은 옆에 있을 것 같다. 같은 책도 여러 번 들춰볼지도 모른다. 같은 책을 언제 읽느냐에 따라서도, 과거에 지나쳤던 문장의 행간에 오늘의 눈길이 오래 머무를 때도 있으니까. 책이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데 변하는 것은 나뿐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앞으로의 시간에도 내가 무엇인가 읽고, 쓰고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