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글쓰기 챌린지 Day 2 부모
으레 그렇듯, 큰딸인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어떻게 보면 또 엄마를 닮은 점도 많다.
유전이란 참 무섭다.
꽤나 많은 것들, 어쩌면 거의 "모든" 것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 같다.
외모부터 성격, 기질까지도. 어쩌면 "태어나보니 ~였다" 그런 것들 모두.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외모, 성격만 물려받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 양육자로부터 오는 사고방식, 가치관, 생활습관, 환경 등 모든 것은 함께 온다. 어쩌면 그때의 나의 입맛과 취향이 지금까지 이어져올 수도 있고, 평생에 걸쳐 나의 선호로 생각하면서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년의 경험은 인생의 주춧돌 같다는 생각도 든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엄마는 늘 부지런하셨다. 그리고 아빠는 긍정적이고, 아빠의 유머감각은 항상 우리 가족을 웃게 했다.
나는 성실과 책임감, 그리고 긍정적인 성격도 물려받은 것 같다. 물론, 후천적인, 사회적 경험으로 더 쌓인 성실과 책임도 있겠지만. 유년의 기억에는 행복한 것들도, 엄마아빠를 닮아서 좋은 점도, 감사한 점도 많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이 완전하지 않듯이, 때론 부모님으로부터 싫은 모습, 혹은 결핍을 발견하기도 한다. 내가 닮지 않았으면 하는, 혹은 그러고 싶지 않은 모습들. 그게 싫은 건, 같은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은, 그런 '나'의 모습이 싫은 것이다. 부모님 핑계를 댈 뿐이다.
부모의 결핍을 끊을 수 있다. 그러나 끊어내는 것은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오은영 박사님이 방송에 나와서 하신 말씀이다.
처음 봤을 땐, "뼈를 깎는 노력"이 먼저 보였다. 어렵겠다.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이미 9할은 다 정해진 운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니 앞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결핍을 끊을 수 있다는 말.
어릴 땐, 치기 어린 마음에 어떤 원망이 들기도 했다. 부모님의 결핍이 나에게 투영된 것에 대해서 억울한 마음도 있었다. 내가 어떤 상처를 받았었는지, 그에 대한 분노와 미움의 감정들.
그런데 지금은 흐려지고 또 옅어졌다.
지나간 일들, 그날들에 갇혀 그 결핍을 채우길 바란 건 오히려 나였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모두 불완전한 걸 알면서도, 나는 부모님께 불가능한 "완전함"을 바랐다.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건 부모님의 결핍 그 자체도 아닌, 나의 결핍이고 나의 생각이었다. 내가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는 걸 깨닫고 나선, 그냥 모든 것을 받아들이자고 마음먹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흐려지고, 또 바래지고, 깎여서 둥글둥글하게 되기 까진 나에게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그리고 새로운 길을 찾게 되자 원망이 사라졌고, 오히려 내가 자유로워졌다. 좋은 것들을 더 많이 보게 됐다. 이런 건 엄마를 닮아서 좋고, 저런 건 아빠를 닮아서 좋은.
나의 유전의 절반은 아빠로부터 절반은 엄마로부터 왔다. 부모님은 나의 뿌리고, 내 정체성의 근원이다. 나는 이렇게 태어났다. 그래도 나에겐 여전한 부모님의 사랑이 존재하고, 그곳은 나의 고향이기도 하다.
나는 앞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나에겐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것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안다. 그래서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도 이제는 다르게 보이는 것 같다.
운 좋게도, 아직은 언제든 내가 돌아갈 수 있는 부모님의 품이 있다는 것이, 다시금 다가올 내일의 고됨에 맞설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