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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아 Sep 11. 2023

제 자식 귀한 줄 알아야

남 자식 귀한 줄도 알지

"아빠, 아빠는 제가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한 번쯤은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이는요? 아이도 낳아야 할까요?"

"결혼을 했으면, 아이도 한 번은 낳아봐야지."


어렸을 적, 언젠가 아빠와 나눴던 대화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나는 이따금씩 이런 질문을 아빠에게 던지곤 했었지만, '이유'를 자세히 물어보진 않았었다.


결혼이란 것을 했을 때 까진 기억하지 못했던 이 대화들이 아이를 낳고 나서야 떠올랐던 것은 왜일까.

'한 번은'이란 말에 함축된 수많은 의미가 어쩌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것들에 해당되는 것이지 않았을까.



자유롭게 거리를 거니는 것조차 공포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무차별적인 공격이 어디서 어떻게 이뤄질지 알 수 없는 것만으로도 참.. 무섭지만, 물리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폭력도 여러 방편을 통해 이뤄지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각 사람의 생명은 고귀하고, 그 영혼의 가치를 쉬이 측량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난 이전에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아니, 개념이 크게 없었다는 말이 맞을까.


결혼을 하고 둘이서 재밌게 지내는 시간까지만 해도 나는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너무 크게 달아놓고 있어 다른 이를 돌아볼 겨를도 마음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만나게 된 '자식'이라는 존재는 아무리 열 달 가까운 시간 동안 내 안에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고 해도 '타인'이기 때문일까. 갑작스럽게 다른 이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하루하루, 아이를 눈에 담고 애정이 깊어갈수록, 거리를 다니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까지 이런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저 사람도, 누군가가 이렇게 애정을 담아 키운 아들이겠구나, 딸이겠구나.'


나 자신이 귀하다면 상대방도 귀한 것이고

내 자식이 귀하다면 연령을 불문하고 내가 마주하는 사람 역시 누군가의 '자식'일 테니 귀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다 나 같으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런 경험이 없어도 충분히 생명의 가치를 고귀하게 인식하고 모든 이에게 가감 없이 마음을 열어줄 수 있는 이들이 당연히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다만 '이렇게까지 마음 다해 사랑하는 존재'를 만난 이에게는 이제 돌이킬 수 있는 길은 없는 것 같다. 내가 아이를 만나기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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