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함에서 비껴간 것들

우선순위라는 이름의 핑계

by Ben Frost

개념적으로 알고 있던 문구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


나의 세상이 좁고, 가치관이 아직 형성되는 동안에는 시간은 참 더디게만 흘러갔기에, 이 문구를 처음 접했을 때는 좀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고, 지금 내가 느끼기엔 참 느리다 싶은데 이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빠르게 흘러간다고 느끼게 되는 걸까 싶어서. 이 문장을 쓰면서 나는 그 당시 나의 생각에 새삼 놀라게 되는데, 이 아이러니는 또 무엇일까. 아마 ‘젊음을 청년에게 주기엔 너무 아깝다’ 같은 맥락이랄까.


시간의 가치를 잘 모를 때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기도 하고, 마구 써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의 가치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시간은 마치 밀당하는 연인같이,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잡히지도 않고 쓰는 것이 한없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 들어갈수록 ‘우선순위’가 참 중요하다고 느끼게 되는 듯하다. 시간은 정말 유한하고, 그 유한한 시간 속에서 나의 ‘에너지’ 또한 유한하기에.


MBTI로는 극 J 성향인 나에게 계획이란 호흡이나 다름없는 일상이긴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우선순위를 정하는 문제는 또 다르다. 대학생 때 『늘 급한 일로 쫓기는 삶』이라는 책을 통해 우선순위를 세우는 법을 배웠고, 그것을 10년도 넘게 삶에 적용 중이다. 책에서 배운 우선순위를 세우는 법은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였다. 급한 것, 하고 싶은 것, 해야만 하는 것 등 우선순위로 내세울 수 있는 모든 것들 중에 ‘중요한 것’을 먼저 두는 것. 그리고 이것을 삶을 살아가면서 적용하다 보니, 그것은 일적으로도 가정에서도 내 삶의 전반에서도 참 좋은 규칙이 되었다. 유한한 삶에서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살지만, 사실 맹점이 존재한다.


일상 속에서 스치는 얼굴들이 있다. 기억나는 사람들이 있고, 과거의 한 시점에 머물렀거나, 과거의 꽤 오랜 시점에 머물렀거나, 과거의 인물이지만 심적인 거리는 가까워서 늘 곁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거나, 과거의 인물이지만 나의 여러 가치관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 하지만 이들에게 연락하는 일은 ‘중요함’의 목록에서는 늘 비껴간다. ‘언제든’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 ‘지금 당장’은 그 마음을 실현시키기엔 여유가 없다는 생각. 그렇게 중요함에서 비껴간 채 벌써 수년 동안 연락을 드리지 못한 은사님도 여럿이다. 결국 중요함을 먼저 내세웠다는 것은 핑계가 될 지경이다.


하지만 자못 억울한 감정은 있다.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연락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도 아니지만, 시간이 흘렀고 바쁜 일상 속에 기회를 놓치고 지나갔을 뿐인데. 언제나 그렇듯 감정은 표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억울함은 들지만 나의 연락이 닿지 않은 그들만 할까 싶으면 또 마음이 무겁고 잠잠해진다. 애써 보낸 연락에 별다른 답이 없을 때도 있지만, 그 연락조차 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기에 말이다.


출근하는 길에, 일주일에 몇 차례는 마주치는 청소 부서에 근무하시는 분을 지나치며 들었던 생각이다. 남녀노소, 직위를 고하하고 큰 몸을 굽혀 공손히 인사했던, 하지만 꽤 오랫동안 인사를 드리지 못했던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 생각에서 시작한 오늘의 글. 글을 마치고 가볍게라도 톡을 드려야겠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면 무겁지만, 무거움에 짓눌려 시작조차 못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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