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대하는 자세

생채기, 상실, 그리고 다시 쓰는 일

by Ben Frost

습한 기운을 견딜 수 없어서 몸부림치다가 어느새 그 습함에 적응하고 나면, 계절은 슬쩍 몸을 바꿔 생채기가 나기 쉬운 건조하디건조한 겨울로 탈바꿈한다. 요 며칠 손과 손목에 생채기가 여럿 났다. 칼이나 가위를 쓰지도 않고 오로지 손으로만 택배 박스를 뜯고 정리하다가 손목에 다소 깊은 생채기가 나는가 하면, 어제는 휘핑크림의 플라스틱 주입구 부분을 분리수거한다고 뜯다가 그 안쪽에 있는 날카로운 홈에 베였는데, 순식간에 세 군데의 생채기가 나버렸다. 이럴 줄 미처 모르고 몇 달 전 사놓았던 바르는 액상 메디폼이 꽤 쏠쏠하게 나의 상처의 아묾을 도와주고 있는 중이다.


근 1년 정도의 시간이 멈춰 있었음을 고백한다.


시간이 멈췄던 이유가 왜일까, 크게 고민할 것도 없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로 마주한 이별이 그 이유였음 역시 알고 있고, 시간이 멈췄다는 것조차 사실 알고 있었다.


글을 쓰고 싶었고 떠오르는 생각이 수없이 많았지만, 막상 글을 적다 보면 조금 적다가 자꾸 그치기 일쑤여서 그렇게 글을 쓰지 않은 지도 1년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세월은 흘렀고, 해가 바뀌었고, 한국 나이로 한 살을 더 먹었고, 옛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1년 반여 만에 만난 것이었다. 그 사이 몇 번의 약속이 있었지만 한 번은 내 쪽에서, 다른 한 번은 친구 쪽에서, 또 다른 한 번은 양쪽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깨졌었고, 이번 약속도 위태했지만 끝끝내 지켜져서 나는 조금은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친구를 만나러 갔다. 만난 순간 친구는 “아~ 역시” 이런 반응이었고, 헤어질 때도 비슷한 말을 건넸다. 아무리 오랜만에 만난다 해도, 만나는 순간 우리는 어떤 우리의 과거의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알고 보니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시간 동안 친구는 듣기만 해도 분주하고 견디기 어려운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 다르면서도 비슷한 상실을 그 사이에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남겨진 이후의 시간을 조용히 보내고 있는 친구에게 나는 쉽사리 위로의 말도, 공감의 말도 건넬 수 없었다. 아마 나 자신에게도 아직 건네지 못한 탓이리라.


상처가 난 곳에 1차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다른 이물질 없이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위에 연고를 바르든 무엇을 하든 간에 지저분한 상태로는 치유의 과정에 해가 될 뿐이며,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식염수를 붓기도 하고 알코올 솜으로 닦아내기도 하는데 사실 그 과정이 가장 아프다. 살면서 생채기 한 번 안 나 본 사람은 없기에 누구라도 이해하겠지만. 그리고 때론 그게 치료의 전부이기도 하다. 피부의 재생력과 회복력에 기대 나머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깨끗하게 해 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에.


신체적 상처는 그렇게 접근할 수 있지만, 정신적 상처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접근이 쉽지 않다. 피부와 뇌의 차이점 때문일까. 아니면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의 차이 때문일까. 회복력은 둘 다 갖고 있겠지만, 피부와 달리 회복력에만 기대기에는 어려운 때가 종종 있고, 그 정도의 차이는 개인적인 성향과 사건의 중증도에 따라 다르리라.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멈춰 있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고, 나 역시 그 시간 속에 살아가면서 멈춰 서서 너무 오래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친구를 만난 이후에 들었다. 그것은 어떤 의지적 혹은 결단적 표현이라기보다는, 아직 내가 살아 있고 살아가고 있기에 마땅히 그 속에서 겪어야 할 삶이 이어지고 있기에라는 인지적 표현이다.


그리하여 다시 글을 써 보려 한다. 글을 쓸 때만큼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때가 또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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