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개월이라는 시기에 대한 단상
“둘째, 생각 있어요?” 가끔씩 묻는 지인들의 말에 나는 늘 웃으며 대답한다. “아니요.” 그리고 이어지는 대답들은 때에 따라 길기도 짧기도 하지만 몇 가지 레퍼토리들을 가진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중 사람들의 가장 큰 반응을 이끌어내는 대답은 이러하다.
"사실 전 아이가 갖고 싶지 않았거든요. 신랑과 이 부분에 대한 합의를 보지 못해서 결혼하고도 2년 정도 서로 대립하다가 결국 제가 고집을 내려놓고 갖게 된 아이여서, 둘째는 생각이 전혀 없어요."
끝까지 듣지 않고도 첫 문장에서 다들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딩크족이 흔하고 결혼하지 않는 이들도 가정마다 한 명 이상씩은 존재하는 이 사회를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보여주는, 풍기는 분위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 짐작한다.
어느덧 아이가 태어난 지 40개월이 지났다. 12개월, 24개월, 36개월.. 각각 다 의미가 남다르고 생일이라는 것이 충분히 판을 가르기 좋은 지표라는 것을 느꼈지만 아직까지 그중 가장 크게 느낀 건 역시 36개월이었다. 36개월이란 숫자는 사실 객관적으로도 의미를 가지는데, 이제 만 36개월이 지난 아이에게는 여러 가지 제한이 생긴다. 뷔페 같은 식당에서의 식대,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입장료가 부과되는 공식적인 시기이기도 하고, 신경정신학적인 검사 도구들도 36개월을 기점으로 종류와 의미가 남다르게 폭이 넓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제로 36개월을 겪어보니 그럴만하다, 싶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 정말 아기에서 벗어나서 한 인간으로서의 느낌을 가지는 시기라고 느껴졌다.
또 다른 재밌는 지표로는 이 시기가 이제 아이를 키우는 부부의 숱한 갈등에 정점을 찍고 앞으로의 길을 함께 도모하는 데 점차 힘을 모을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아이를 낳은 부부가 가장 이혼을 많이 하는 시점이 만 3세까지이다. 경험적으로 보니 충분히 그러할 만한데, 육아라는 처음 겪는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정말 싸움거리가 심심찮게 많고 기질이 다른 남녀인 나와 신랑은 청중의 유무와 무관하게 정말 많이 다투면서 그 시간을 보내온 것 같다. 그런데 36개월이 지나는 시점부터 우리는 싸움의 끝을 파국으로 내기보다 감정을 추스르고 대화를 하고 지지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조금 더 노력을 하고 있다. 통계가 의미가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아이의 성장만큼이나 부모이자 부부로서의 성장도 있었던 것일까 싶어 신기하다.
그리고 이쯤이 되니 이제 나는 아이가 있는 삶 속에서 나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아이 이름에 덧붙인 엄마라는 호칭이 낯설고,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고, 내 가치가 사라지고 아이의 엄마로서의 가치만 남는 걸까 싶어 덜컥 겁이 났는데, 이제는 그 호칭이 나의 본래 가치를 퇴화시키는 것이 아닌 나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수식어가 되었음을 알아 거부감이 덜하고 한 술 더 떠서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아이가 있는 삶에서의 나의 가치를 찾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도.
그렇게 수많은 의미를 지닌 시간을 막 지나고도 4개월, 요즘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일견 고집 센 아이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첫 아이이기에, 매 순간 맞는 첫 경험들의 낯섬은 계속되고, 때때로 내리는 나의 선택들에 어떤 확신도 가지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간다. 하지만 의미를 찾는 것에 남다른 의무가 있는 양 나는 그 순간순간 의미를 찾으려고 애쓸 것이고,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