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산다는 말

by Ben Frost

오래 기다렸던 드라마 한 편이 드디어 공개가 되었고, 원래라면 자고 있을 늦은 시간까지 깔깔거리며 드라마를 보다 간신히 중간에 멈추고 나니 많은 생각이 밀려와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하는 늦은 밤이다. ‘통역’이라는 키워드로 제목, 이야기, 담는 메시지까지 전부 풀어가는 이 드라마에서 조연 배우가 지나가는 말로 남자 주인공에게 던지는 대사 한 마디가 인상 깊었다.


“세상에 다른 언어가 몇 개인 줄 아나, 우리 통역사 선생님?”

“7,100개가 넘는 걸로 아는데요.”

“땡! 아니야. 세상 모든 사람의 수만큼 있지. 사람들은 각자 다 자기 말을 해. 그러니까 서로 못 알아먹고 거꾸로 듣고 막말을 하지.”


7,100개라는 대답에서 이미 ‘우와’ 하고 놀랐는데, 이어지는 대사에서 ‘아…’ 하고 공감을 순식간에 끌어냈다. 새삼스레 이 드라마의 작가가 누구였는지 떠올리게 만들었던 대사이기도 했다. 오랜만이다. 이렇게 대사 한 마디로 글을 쓰게 만드는 드라마는.


나는 가정교육을 엄하게 받은 편이었다. 그 ‘엄한’ 가정교육의 최고봉은 식탁 예절이었는데, 밥 먹을 때 소리 내지 않기가 기본이었고 편식하지 않고 식탁 위에 올라와 있는 모든 반찬을 골고루 먹는 것이 그중 핵심이었다. 따르지 않으면 바로 손이 날아오는 무시무시한 식탁이었기에, 마늘이나 생강을 삼키거나 햄스터 마냥 볼 한쪽에 숨기고 있다가 식사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토했던 장면도 더러 있던 나의 어린 시절. 그 결과 나는 편식하지 않는 사람이 되긴 했어서 웬만한 음식은 먹을 수는 있다.


다만, 이러한 극단적인 교육의 결말이 늘 해피엔딩인 것은 아니라서 성인이 되어 더 이상 그러한 제약을 받지 않게 된 나는 아주아주 극단적으로 먹고 싶은 것만 먹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이 경험은 먹는 것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먹는 음식이 곧 그 사람의 성향에 반영이 되는 걸까 싶게, 나는 꽤 많은 것들에 편향된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즐겨보는 장르의 드라마나 영화, 노래가 정해져 있고 다른 장르는 굳이? 정말 꼭 필요하지 않다면? 보지 않는다. 그 결과 역대 천만 영화 중에서 보지 않은 작품이 대부분이 되었다는 사실까지. 그리고 그렇게 내가 편향된 성향을 보이는 것 중 하나가 글인데, 모든 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읽으려 애쓰면서도 그중 나의 마음 한구석을 건드리거나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드는 글과 대본의 작가들은 열 손가락까지도 가지 않는다.


이 드라마의 작가는 그 작가들에 속했다. 그리고 반전 없이 나의 잠을 미루고 키보드를 두드리게 만들었다.


배우가 가진 매력이 먼저냐, 그 매력을 살릴 만한 캐릭터가 먼저냐라는 질문에 나는 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접근하곤 했다. 그리고 대본과 연출의 힘을 더 우선시해 온 나는 캐릭터가 먼저라는 결론을 내리곤 했는데, 이 드라마를 보며 새삼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캐릭터를 소화해 내는 능력에 대해 내가 과소평가해 온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꼭 알맞은 역할’, ‘꼭 알맞은 옷’이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돌아왔다. 나는 배우가 아니고, 선택한 한 가지 일을 해 나가는 직장인이니까.


언젠가부터 내가 입고 있는 옷이 꼭 알맞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적성에 맞는다는 느낌과 함께 가끔은 ‘어? 아닌가?’ 싶은 순간이 들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그렇다. 물론 직업적으로 훈련되기도 한다.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일을 배우고 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그 일에 최대한 적합한 사람으로, 그리고 그 직업이라면 으레 그러한 사람으로 길러지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괴리감이 크다면 오래 지속하기는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꼭 알맞은 옷을 입고 꼭 맞는 역할에만 맞춰 살아갈 필요는 없지만, 나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다시금 돌아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의 입에 칼을 물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바르고 반듯한 말을 하고는 있지만, 그 말 끝에 공감과 응원이 있는지, 아니면 날카롭고 뾰족한 비난이 숨어 있는지.


여러 번 곱씹게 될 애정하는 드라마를 만난 밤이다.

아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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