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네치킨을 좋아한다고?”
이 문장에 붙인 하나의 물음표와 달리, 실제로 건넨 나의 말에는 물음표가 백여 개는 족히 달려 있었을 것이다. 연애할 때, 남편에게 건넸던 물음 중 하나였는데, 이 물음 뒤에는 치킨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애정과 동시에 구운 치킨을 치킨으로 용납하는 사람을 과연 나의 반려자로 삼는 게 맞을까라는 의구심이 있었다.
한국인의 대표적인 소울푸드 중 하나인 치킨,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치킨에 대한 애정은 세월이 갈수록 더해졌고, 가격이 상당하기에 자주 먹진 못하지만 거의 모든 특별한 순간(생일 등의 특별한 날, 아픈 날 등)에 나는 예외 없이 치킨을 먹곤 했다.
수많은 치킨의 종류 중 내가 먹는 건 양념치킨인데, 사실 양념도 브랜드마다 맛이 너무나도 갈리기 때문에 그 안에서 또 찾고 찾아 가장 애정하는 맛의 양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프라이드치킨이 근본이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그런 내가 대학생 때 처음 접한 구운 치킨은 그 실체가 오묘했고, 눈으로 보면서도 이걸 치킨이라고 하다니… 이건 치킨 요리지,라고 대뜸 마음에서 반감이 확 들어왔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이 구운 치킨 계통은 곧 없어지겠구나. 이건 치킨이 아니니까. 적어도 ‘치킨’이라는 이름을 쓰면 안 되지,라고. 그런데 웬걸. 승승장구하다 못해 비슷한 식의 치킨을 만드는 브랜드는 더 늘어났다. 그리고 그 계열의 마니아층들도 생겼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남자친구가 이야기하는 건 그 무게감이 확 달랐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조금씩 이지러진 것이.
나는 나의 취향이 꼭 대중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의 취향을 오래 즐기려면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이 좋다고 생각해왔다. 나만 좋아하는 메뉴는 결국 어느 틈엔가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니. 그런데 나와 정말 대부분의 취향이 다른 남편(a.k.a. 구남친)과 연애를 포함해 결혼까지 5년 정도를 살고 난 후 어느 날, 나는 드디어 나의 취향이 대중적이지 않고 굳이 따지자면 마니아에 더 가깝구나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경우도 있었다. 나와 남편의 입맛이 너무 달라 중간에서 만날 수 없는데, 그런 우리가 둘 다 맛있어한다면 그건 주저 없이 선물감이다. 대부분의 음식들은 특히나 호불호가 있기 때문에 잘 선물하지 못하는데, 둘 다의 입맛에 만족스럽다면 상대방도 높은 확률로 만족할 가능성이 높다는 자체 검열이랄까.
한편, 대중적이지 않다 보니, 어쩌다가 마주치는 정말 맛있는 무언가를 발견하면 그것을 오래 즐길 수 없는 비극적인 운명이다. 최근에는 배스킨라빈스의 ‘팥 있는 말차당’이라는 맛이 거의 10년간 그 배스킨라빈스의 수많은 맛 중에서 딱 하나인 ‘뉴욕치즈케이크’ 맛만 먹던 나에게 너무나도 신선하고도 맛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오래가지 못하고 그 맛은 사라졌고, 슬픔에 겨워 남편에게 투덜거렸다. 요즘 말차의 붐이 일고 있으니 부디 다시 살아나길 손 모아 바라보지만, 가능성은 글쎄…
살면서 지켜보니 사람들의 생각만큼 취향도 다양하고, 색깔이 확연하게 분류되는 정치색과 같은 카테고리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것들은 나의 어릴 때와 다르게 그 다양성의 범주가 참 넓어진 느낌이다. 나의 취향에 따른 것을 오래 고수할 수 없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다양성이 사라진다면 갖게 될 선택의 폭도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그 취향만을 고수하는 것도 답은 아니지 싶긴 하다.
맛만큼이나 사람도 그렇다. 학교와 같은 제한적인 공간에서 살아갈 때와 다르게 사회에서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각각 풍기는 분위기, 색채, 일하는 방식, 어투까지 다른 것 투성이인 조합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사회생활 초반에는 그런 사람들 하나하나를 파악하고 분류하기에 바빴던 나였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 분류가 말 그대로 의미가 좀 덜하다 싶은 느낌이다. 분류가 불가능하진 않지만, 결국엔 나의 분류와 무관하게 혹은 그 분류를 뛰어넘을 정도로 다양성의 범주가 늘어날 것이기에. 그래서 그 이후의 나의 태도는 적응과 수용으로 바뀌었다. 나조차도 스스로 바꾸지 못하는 나 자신이 누군가를 바꿀 수 있을 리는 만무하며, 바꿀 필요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니까.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그러할 테고.
나라는 사람도 대중적이면 참 좋을 텐데, 아쉽게도 난 그리 대중적인 사람이 되지 못한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취향은 마니아적이다 싶을 정도로. 그러한 내가 쓰는 나의 글도 그와 닮아 있으리라. 하지만 대중적의 반대인 마니아층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며, 마니아층의 가장 큰 장점은 그 수가 1이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감사하고 다행으로 여기며 오늘도 나의 취향에 대한 글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