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은 기억의 힘

by Ben Frost

통화되니?


선생님이 나에게 전화를 해서 제일 먼저 물으시는 첫 물음은 늘 동일했다. 나의 상황과 안부를 동시에 파악하면서 이어갈 대화가 가능한지를 물으시는 것. 카톡도 자주 해서 굳이 톡으로 하지 않고 전화를 할 때는 뜻이 좀 더 있으시리라 생각하여 나도 가능하면 선생님 전화를 놓침 없이 받곤 했었다.


그리고 이 물음은 다른 모든 장면들이 조금씩 지워져 가는 중에 내 귓가에 여전히 남아 울린다. 그 한 마디를 녹음을 못 했네,라는 후회와 함께.


지난 2024년 11월 말, 나는 아이를 씻기고 부지런히 재울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그때 핸드폰의 액정 화면이 켜지더니 카톡이 왔다는 알림이 떴었다. 내용은 보이지 않았지만 발신자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나는 얼른 잠금 화면을 풀고 확인했고, 그로부터 3초 후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는 나를 보고 만 3세가 되지 않은 아이가 덩달아 울기 시작해서 결국 나는 울음을 멈추고 아이의 울음을 달랬다.


다음 날 아침,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선생님이 선물해 주셨던 코트를 입고 운전해서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은 날이 참 맑고 화창했다. 쌀쌀한 공기 속에서 히터도 틀지 않고 운전하는 4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추위를 느낄 새 없이 자꾸 차오르는 눈물을 마음속에서 누르고 내려보내고를 반복했다. 생각보다 작은 장례식장, 그 안에 들어가서 마주한 선생님의 학원 강사 프로필에 있었을 듯한 사진을 보고 비로소 실감이 났다. 선생님이, 가셨구나.


그렇게 1년, 그리고 조금을 더한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와 같다.


사랑받은 기억이 갖는 힘은 그 어떤 기억의 힘보다 강하다. 미움, 원망, 분노의 기억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례식장에는 선생님의 남동생과 선생님의 어머니가 계셨다. 두 분 모두 나는 처음 보고 얘기조차 거의 못 들어본 분들이었지만, 나에게 선생님은 단순히 은사님이 아닌 친구이자 엄마 같은 분이셨기에 선생님의 가족이라는 설명을 듣자마자 단번에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선생님은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위트가 넘치시는 분이셨다. 돈 주고 살래도 살 수 없는 위트를 가졌기에 참 좋아했는데, 그날 그 위트를 물려주신 분이 어머님이셨구나라는 생각을 숱하게 했다. 울어야 하는 장례식장에서 건네시는 거의 모든 말로 나를 계속 웃게 만드셨으니까. 그리고 딸의 장례를 앞두고 했던 선택들을 하나씩 알려주셨는데, ‘우리 딸이라면 이걸 좋아할 거야’라는 생각에 옷, 콘셉트, 꽃 등을 정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한아름 선물을 보내주시거나 건네주셨던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날 이미 몇 달 전부터 약속되었던 친구들과의 시간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나는 그 아침시간에만 장례식장에 다녀가고 이후의 발인을 보지 못했고, 카카오톡으로 왔던 부고장도 기한 만료가 된 바람에 선생님이 지금 어디에 안치되어 계신지조차 알 수 없고 연락을 따로 주시겠다던 남동생분의 약속이 어그러져서 나는 그저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붙들고 상실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보낸 끝에 내린 결론이 저와 같았던 것이다.


미숙함이 가득했던 나를 인정해 주셨던 분, 꼭 필요한 조언으로만 나에게 따끔함을 주시고 그 외의 것들엔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포용해 주셨던 분, 당신은 가지 못했던 인생을 살아가는 내게 진정한 응원을 덧대 주셨던 분, 동시다발적으로 이 역할들을 다 감당하셨던 분을 잃고 한순간에 공허해진 나의 삶을 나는 차마 손댈 수 없었다.


발인을 보지 못했기에 정말 돌아가신 게 맞을까라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는데, 나의 생일날 누구보다 먼저 진심을 다해 축하해 주시던 메시지가 오지 않는 것을 보고 최종 선고가 내려진 느낌이었다. 정말 나의 선생님이, 돌아가셨구나, 하고.


이 이후로 나의 인생에는 비슷한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될 텐데, 그 첫 시작이었기에 나에겐 더 크고 깊게 와닿는 것 같다. 그리고 힘들어하고 있는 나에게 건네진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거야”라는 엄마의 말이나, “이제야 철이 들어가네”라는 아빠의 말도 다 맞는 것으로 결론 나겠지.


며칠 전, 선생님의 생일이 지났다. 너무 이른 나이에 다 이루지 못한 많은 것들을 뒤로하고 고통 없는 곳으로 가셨던 선생님이, 오늘 특히 더 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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