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곁에 사람을 많이 남겨두는 편이 아니다. 원래 그런 성향도 존재하지만, 크게는 고등학교, 대학교, 전공 선택 시 각각 한 번씩 지역적 이동을 해버리는 바람에 자연스레 정리된 관계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곁에 남아 있는 학창 시절 친구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보다 사회생활부터 늦었던 터라 그들의 결혼, 출산, 육아를 지켜볼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있었다.
한 친구의 결혼식에서는 마치 내가 신부의 가족이라도 된 것마냥 결혼식에 오는 사람들이 반갑고 감사해서, 하객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뒤까지 자리를 지켰다. 또 다른 친구의 출산 당일에는 280km가 조금 넘는 거리를 3시간 반 정도 달려가, 친구의 가족과 함께 아이가 태어나 처음 선보이는 순간을 함께 했다. 그리고 친구들이 아이를 낳은 이후에는 그녀들의 집으로 가서 늘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이질감 없는 자연스러움에 ‘엄마’라는 옷을 입은 그녀들에게 경외감을 갖곤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난 뒤에야 나는 결혼을 했고, 출산을 했고, 육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들에게 꽤 자주 이야기한다.
“내가 너무 몰랐어. 내가 너희에게 배려한다고 했던 배려가 턱없이 부족함을 이제야 알았어. 이런 삶을 살고 있었구나.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가 아냐. 정말 굉장해.”라고.
한편, 내가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보면서 그 삶을 물어보는 또 다른 이들이 있었다. 나의 친구들이 나의 이정표가 되어주었던 것마냥, 나의 삶이 그러할 진대 나는 그때마다 “생각보다는 할 만해”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그 말의 의미를 잘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놀랍고도 안도하는 표정을 보냈다. 그리고 덧붙였던 나의 한 마디는 “경험할 수 있으면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였다.
이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었다. 아이를 갖고 싶다고 다 가질 수 없는 환경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라는 놀라운 축복, 그 아이를 통해 경험하게 되는 가치관과 관계의 역동적인 변화, 예측 불가한 삶으로 던져져서 비로소 느끼는 삶의 무게감과 동시에 살아내는 삶의 가치 등. 다른 어떤 경험보다도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측면에서, 심지어 효율성까지 좋은 인생 경험인 셈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가까운 지인들의 출산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기다림 끝에 맞이한 그들의 변화는 기다림만큼이나 달콤하고 설렜으며 꽤나 흥미진진했다. 내가 아이를 만나고 지인들이 나에게 말했던 변화들은 내가 실시간으로 겪고 있는 것들이라 제3자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는데, 지인들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아, 그게 그런 말이었구나” 싶은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아이 앞에서 목소리 톤이 달라지는 것이 대표적이라면, 다소 부정적이고 냉소적이었던 나의 시선이 전보다 짙음이 덜해졌다는 것도 있고, 가족 간의 관계 회복에 대한 이야기까지 포함된다.
나는 아빠와 꽤 많이 닮아서 시시때때로 부딪치며 인생 전반을 살아왔다. 그리고 서른 즈음, 아빠에게 받았던 상처의 쓴뿌리가 쫙 올라오면서 아빠에게 날을 세웠고, 인생 후반부를 살아가시던 아빠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독으로 다가가 관계의 단절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로 연락도 일절 없고, 연락할 일도 없이 지내다가 임신하고 두 달 즈음 되었을 무렵, 갑작스러운 큰아빠의 장례식장에 직접 차를 끌고 내려갔다. 오랜만에 마주한 아빠와 악수하면서 응어리가 내려앉았었다. 아이를 품고 굳이 먼 길을 내려와 장례식장에 와준 나를 고마워하신 아빠와, 갑작스럽게 큰 형을 잃어 깊은 슬픔에 빠진 아빠를 마주한 나의 마음이 동시에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어제는 태어난 지 채 100일이 조금 안 된 아이를 낳은 친한 지인의 집에 초대받아 놀러 갔었다. 곧 출산휴가를 마치고 복귀 예정인지라 서둘러 일정을 잡아 갔었는데, 한 번씩 이름 대신 애정을 담아 “아기야”라고 자신의 아이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나까지 그 애정에 듬뿍 적셔진 느낌이었다. 부모라는 자리는 참으로 쉽지 않고 무겁지만, 그 자리에서만 오롯이 받는 축복이 있음이 새삼 보였고, 이렇게 제3자의 시선으로 봄으로써 내가 가진 자리를 또다시 관망할 수 있음이 감사했다.
아침에 출근을 서두르느라 제대로 눈에 담지 못하고 나왔지만, 퇴근할 때까지 나의 마음과 머리 한구석에 아른거릴 나의 아이를 포함하여, 이 세상에 부모의 빛이 되어 주는 모든 아이들이 오늘도 즐겁고 행복하게 하루를 보내고, 그들이 살아갈 미래가 그들에게 감당 가능한 미래가 되길 바라본다. 나는 이제 어른의 역할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그들에게 지지적이 되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