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아직 눈이 남아 있다.”
어린이집 하원길에 환호성을 지르며 눈으로 다가가는 아이를 다급히 말렸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눈은 더러운 눈이야.”
요사이엔 눈이 많이 내리지 않고, 한 번 내릴 때 한껏 내리는 편이다. 그렇게 눈이 내리고 나면 아파트 곳곳에 눈을 옆으로 치워놓은 눈더미들이 생기는데 아이를 만류했던 것이 그 눈더미 중 하나였다. 다른 눈들은 이미 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정갈해진 길 한옆에 쌓인 눈더미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누군가의 발자국들이 위에 난 채로 녹을 기미 없이 얼어 있는 모습이었다. 분명 눈이었을 텐데 눈더미는 기존에 하늘에서 내리던 눈과는 참 다른 모습이다.
어렸을 적, 나도 뭇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눈을 정말 좋아했다. 눈 내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눈 내리는 날의 설렘은 말로 다 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마음이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었달까. 눈이 조금만 흩날려도 그랬고, 펑펑 내리는 함박눈은 그야말로 행복의 절정이었다. 그랬던 내가 눈을 달리 정의하기 시작했던 시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로 올라갈 무렵, 아파트에서 시골의 주택으로 이사했을 때였던 것 같다.
이사를 하고 얼마 안 되어 친척들을 모두 초대해 집들이를 했었는데, 그때 막내 외삼촌이 하셨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현아야, 여긴 빈 라덴이 숨으면 못 찾겠다.”
당시의 유명 인물을 그대로 끌고 와서 하셨던 비유인데 20년도 더 지나서까지 이 말이 귓가에 남는 이유는 그 이후에도 몇 번 더 곱씹었기 때문이다. 집이 있던 동네는 양쪽에 큰 길이 하나씩 있는데 그 길들이 다 언덕길들이라 그 언덕을 넘어야만 비로소 보이는 동네였다. 게다가 서해안 특성상 눈이 많이 오기도 하는데 지역적 특성인지 눈이 오기만 하면 그야말로 고립될 정도의 수준으로 쌓여버리고 언덕길이 워낙 험준하니 하루에 세 번 오는 시내버스마저 막아 버리기 때문에 눈이 온다는 것이 이만저만한 불편이 아닐 수 없었다. 엄마 아빠가 출근하시거나 어디에 가시고 나면 그 시내버스만이 나의 발이 되어줄 수 있었는데 버스를 못 오게 만드는 눈이라니. 내가 눈을 곱게 볼 수 없던 출발점이 되기 딱 적당했다.
그 이후로 나는 눈을 불편해하면서, 눈을 불편해하는 어른이 되었음을 슬퍼하며 살았던 것 같다. 이제 눈이 오는 것을 보면 제설차의 올바른 역할을 기대하며 출퇴근길의 고단함을 그려보는 것을 먼저 하는. 그리고 가능하면 눈이 오는 날은 안전한 실내에 머무르기를 힘썼다.
하지만 10여 년 전,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여행을 위해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는데 나의 여행의 시작은 어떤 ‘꽂힘’이었다. 그 겨울의 나의 꽂힘은 드라마 ‘도깨비’였고, 신실한 여행 메이트인 엄마와 함께 퀘백을 굳이 겨울에 다녀왔다. 안 그래도 눈 많이 오는 동네인데, 우리가 갔던 시점은 그야말로 눈이 제대로 쌓여 있는 때였고 정리되지 않은 길 위로 계속 눈이 오는 나날들이었다. 관광객으로서는 퍽이나 불편했는데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서였는지 나름 잘 즐기면서 돌아다녔던 것 같다. 그중 어느 아침에 브런치를 먹겠다고 구글 지도로 좌표만 찍어놓고 오들오들 떨며 눈길을 지나 찾아갔던 브런치 카페에서, 도착하고 처음 마셨던 따끈한 코코아 한 잔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엄마가 하시는 이야기 중 하나인데 얼어붙은 몸을 단번에 녹여주었던 인상적인 기억이었다.
나의 아이도 눈을 정말 좋아한다. 다른 계절을 보내는 내내 눈 오는 겨울을 기다리고, 겨울이 오고 나선 눈 오는 날만을 기다린다. 그렇지만 요상하게도 눈을 비켜가는 느낌이 들어서, 이를테면 최근 눈이 많이 왔던 날에 마침 다른 지방에 가 있어서 눈을 못 본다든지 하는 등의, 눈을 아예 보러 눈이 쌓여 있는 나라를 가야 하나 하고 고민을 했을 정도였다. 그런 아이이기에 한옆에 쌓인 눈더미조차도 반가웠던 것인데 그것을 만류하면서 눈더미에 어쩐지 시선이 갔던 까닭은 무엇일까.
내가 살아오고 지나왔던 시간들 중에서 저렇게 눈더미처럼 녹지 못하고 한옆에 지저분한 채로 쌓여 있는 상처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스쳐 지나갔던 것 같다. 날씨가 영하에서 영상으로 올라가고 햇빛이 비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응달이라 햇빛이 잘 비치지 않아 계속 흉물처럼 고여 있으면 경비 아저씨가 삽을 가져와 들고 어딘가로 가져가시는 모습도 본 것 같다. 결국 저렇게 고여 있는 나의 상처도 그와 같은 식으로 대해야 하는 걸까 싶은 고민까지 이어졌던 듯하다.
나는 쿨한 사람도 되지 못하고, 기억력도 쓸데없이 좋아서 디테일한 기억들이 잘 사라지지 않고 남는 편이다. 뒤끝도 길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뒤끝에 더 희생되는 편이고. 하지만 이야기할 수 있는 주체가 있는 상처는 그래도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좀 더 있다. 한편, 상처를 준 주체 중 연락이 닿지 않거나 연락을 할 수 없는 이들이 있기에 이들로 인한 상처는 오래 가기도 하지만 손도 못 대고 있는 것들도 많다. 바쁘게 살 때야 모른 척하지만 조금이라도 삶의 여유가 있거나 떠올릴 만한 무언가를 만나면 순식간에 확 드러나는 면모는 늘 나를 소름 끼치게 해서 사실 어디론가 파내 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경비 아저씨는 삽을 들고 파서 어디에 갔다 놓으실까. 쓰레기장일까, 아니면 화단 한구석일까. 그럼 나는 파서 어디로 갔다 놓을 수 있을까. 간단하게 뚜껑을 열고 안에 넣은 후 닫을 수 있는 기억 쓰레기통이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게 없으니 나는 파서 적어도 햇살이 들 만한 곳에 갔다 놓아야 하나 싶다. 단번에 녹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녹을 수 있도록. 그렇게 녹아서 흙 안으로 스며들고 나면 그 형체를 보고 소름 끼치는 일은 없겠구나 기대하면서.
벌써 2월이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함박눈을 아이가 경험했으면 좋겠는데. 다소 교통이 불편하더라도 이번 명절 때 적어도 시댁이 있는 동네에는 눈이 가득 내렸으면 하고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