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브랜드는 어떤 색깔이고 내세우는 슬로건은 무엇일까?
얼마 전부터 아이가 분리 수업을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부모 중 한 명이라도 꼭 수업에 함께 들어가야만 했는데, 이제는 아이 혼자 들어가서 수업을 듣고 있다. 그 첫날에는 어쩐지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있을 것 같은 느낌에 교실 앞을 벗어나지 못하고 서성였지만, 별일 없는 것을 경험하고는 그 이후부터는 수업이 진행되는 짧은 40여 분의 시간 동안 바삐 돌아다니곤 했다. 어제는 아이가 좋아하는 딸기를 좀 사놓는다고 옆에 대형마트에 다녀왔는데, 딸기를 사 가지고 계산대를 나와 다시 출구로 향하는 길에 쭉 놓여 있는 식당가를 보며 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치 가족오락관의 ‘방과 방 사이’라는 게임처럼, 벽으로 공간이 구분되어져는 있으나 앞에는 다 뚫려 있어서(다른 문이 없기에) 지나치면서 그 안의 공간을 다 볼 수 있는 곳인 만큼, 각각의 식당·카페들이 추구하는 바가 선명하게 잘 드러나고 그것의 대비가 벽 하나를 두고 극명하게 이어진다는 것이 재밌었다. 아, 이 카페는 이 색깔이 주된 색깔이구나, 혹은 이 식당의 대표 메뉴는 이것이구나, 이러한 철학을 내세우고 있구나 등.
SNS의 발달이 가속화되고 지금처럼 잠재적인 유튜버들이 가득한 시대이다 보니, 자신을 브랜딩 화하여 소개하는 것은 사실 어색하다 못해 자연스러운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컷이 갖는 의미가 있는 듯하다. 싸이월드의 대문 사진을 뭐로 해야 할까, 흘러나오는 BGM은 무엇으로 할까를 고민했던 것과 다르지 않게, 인스타그램의 프로필 사진, 유튜브의 채널명 등. 결국 사람들에게 단번에 보이는 한 컷의 의미. 사람의 뇌는 동시다발적으로 정보를 인지하기 때문에 그 한 컷에서 갖게 되는 포괄적인 개념이 결국 그 첫 이미지가 될 테니 말이다.
그러하다면, 나는 어떠한가. 브랜드를 만드는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나의 삶을 디자인하고 있는 디자이너이긴 하다. 그 삶을 디자인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중 가장 주춧돌이자 중심이 되는 건 역시 가치관일 테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가장 중심이 되고 흔들리지 않아야 마땅할 것 같은 그 가치관은 실상 돌처럼 단단한 것이 아닌 점토 같은 양상이다. 나의 굳기는 겉보기보다는 단단함이 덜한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어릴 적에 나를 대하는 거의 모든 어른들에게 공통적으로 많이 들었던 ‘고집이 세다’라는 말 덕분에 나는 나의 줏대가 꽤나 단단해서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는 귀가 얇아서 특히나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혹해서 흔들릴 때가 많았다. 또한 논리적인 것에 대한 맹목이 있어 나의 생각의 논리를 부술 수 있는 환경, 사건 혹은 누군가의 논리를 만나면 순순히 나의 기존의 논리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물론 이 과정들이 아무런 충격 없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한편, 색은 어떤가. 어떤 색을 내고 싶은가. 내가 좋아하는 색이 아닌, 내가 내 인생은 이런 색이었으면 좋겠다 싶은 색깔이 있었나. 향은 어떨까, 이러한 향이 나면 좋겠다 싶은 건? 음악은 어떨까, 정서(무드)를 예표할 수 있는 음악은? 누군가가 나를 생각할 때 저 사람의 인생은 저런 정서구나 싶은 건?
생각의 흐름은 어느새 나를 대표하는 나의 이름까지 흘러간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초반에 내가 남편에게 했던 말 중 이런 말이 있었다. “사실, 이름을 지어 놓고 그 이름을 제일 많이 부르고 쓰는 사람은 부모인 것 같아.” 사실이다. 지금의 세대는 조금 다를지 모르나, 적어도 나의 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부부가 서로를 부를 때 여보 대신에 ‘누구’ 엄마, ‘누구’ 아빠로 부르고. 실제로 우리 부모님도 그리 하고 계시니. 나는 또 장녀여서, 나의 이름이 엄마 아빠가 서로를 부르는 지칭어가 되어 40년 가까운 시간을 그리 부르고 계시니, 나의 이름을 나의 부모님보다 더 많이 부른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리하기에 부모가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고심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내가 태어난 집안은 나름 족보 있고 유서 있는 집안인 데다가 이미 정해진 돌림자가 있어 내 위의 사촌 오빠들은 모두 돌림자를 쓰고 있었으나, 집안의 둘째 아들인 아빠는 친할아버지의 첫 손녀인 나의 이름을 돌림자를 쓰지 않기로 결정하셨고, 두 자 모두 아빠의 의지대로 옥편을 찾아서 결정하셨다고 들었다. 그리하여 나의 이름은 오롯한 아빠의 소원이 담긴 이름으로 지어졌고, 자라는 내내 그 이름답게 자랐으면 하는 아빠의 바람을 여러 차례 들었다.
그렇게 나의 브랜드의 첫 삽은 부모님이 담당하셨지만, 그 이후로 만들어 가는 것은 오롯한 나의 몫이다. 사실 먹고살기에 그것에 큰 고민할 겨를도 없이 우다다다 달려가게 마련이다. 벌써 5년째 똑같은 인스타의 프로필 사진이나, 4년째 똑같은 카톡 프로필 배경 사진처럼. 하지만 한 번씩 멈출 때, 그게 여행에서든, 아니면 삶에서 큰 문제를 만나고 자의든 타의든 잠깐 멈추게 되는 때에서든, 나의 삶은 어떻게 브랜딩이 되고 있는지 한 번씩 쭉 훑어보게 된다.
그리하여 생각하게 된다. 어렸을 적에는 정말 ‘살아가고 싶은 삶’의 모습이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을 추구하거나 어떤 삶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하고. 과거도 미래도 차치하고 정말 현재,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요즘인지라 나의 의지든 의지가 아니든 조금씩 달라지는 그 모습까지도 내가 크게 불편해하지 않고 조금은 흥미로워하며 지켜보고 있구나 싶은 것을.
연일 시끄러운 연예계의 단면을 보고 있자면 소속사도 있고 대신 관리해 줄 수 있는 연예인도 저렇게 이미지가 여러 사건으로 달라지는데, 나의 삶 역시 내가 했던 말, 행동, 처했던 상황을 지나갔던 방법 등으로 달라지는 것이 어쩌면 공평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서는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쉰다. 오늘 살아갈 나의 하루도 또 다른 기록이자 브랜딩의 기반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적어도 순간에 충실하게 하루를 살아야겠다 하고 다시 다짐해 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