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이라는 로버트 프로스트 시인의 시를 봤던 건 내가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이 시가 신선하게 느껴졌던 건, 누구나 느끼는 것을 마치 혼자 느끼는 것처럼 적어 두었다는 데에서 그 신선함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 시가 새삼 새롭게 읽히는 건 왜일까.
선택과 책임, 그리고 다시 선택과 책임. 인간의 인생을 딱 두 단어로 줄인다면 나는 이 두 단어의 루프(무한 반복)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러한 부분이 10대까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시간표 안에서 살아갈 때까지는 희미하다 싶은 느낌이었던 나였다. 모든 10대들이 다 그러하진 않겠지만, 나는 공부라는 거대한 과업 안에 차곡히 짜인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10대를 보냈어서.
대학교에 가면 좀 덜할까 했는데, 내가 간 대학교까지도 이미 정해져 있는 틀 안에서 움직이는 시스템인지라 시간표도 이미 정해져 있었고, 나는 그저 몸을 이끌고 수강하고 시험을 보는 삶을 살다가 방학 때나 조금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다시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였을까. 대학 졸업 후 1년의 실습 끝에 스스로 ‘선택’을 처음 했던 때가 낯설고도 무서웠던 까닭은.
그때의 나는 1년의 쉼을 스스로 주기로 결정했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결정에 부모님은 퍽 유감을 표하시며 우려를 하셨다. 당신들은 그러한 쉼 없이 젊은 시절을 치열하게 사셨기에 더욱 그러하셨으리라. 결정을 유보하고 싶어 1년을 쉬었던 나는 그 쉼의 끝에서 결국 다시 결정을 마주하고 선택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그 ‘선택’은 꽤 큰 폭으로 나의 삶을 변화시켰다.
줄여서 말하면, 그 선택으로 나는 전공, 결혼, 이어서 현재의 육아까지 이어지는 삶을 하게 되었으니.
아직 한참 살아가며 삶의 시간을 쌓아가는 중이라 그럴까. 나는 때때로 선택에 대한 책임이 너무나도 무겁게 다가오곤 하는데, 그래도 그 책임이 아이와 관련된 것보다 더 크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무력’이라는 단어를 형상화한 갓난아기일 때부터 지금은 제법 커서 본인 의사를 다 표현하지만 여전히 손 안 가는 구석이 없는 다섯 살 아이까지. 아이가 없던 시절과 지금의 삶을 비교해 보면 삶의 무게가 너무 다르고, 그전에도 충분히 무겁다 싶은 나의 삶이었는데 지금은 단순히 ‘무겁다’라는 표현으로는 아쉽고, 선택에 따른 책임감이 더 중요해진 느낌이다.
흔히 어른들이 하는 말인 ‘결혼해 봐야, 아이를 낳아 봐야 어른이 돼.’라는 말에 대해 늘 반감이 있었던 나였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그 말은 결혼과 육아를 하지 않는다고 어른이 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선택과 책임’이 정말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결혼과 육아를 하면서 ‘어른’ 다운 책임감 혹은 무게를 짊어진 삶을 살게 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편, 한국은 참 신기한 나라인 것이, 무엇이든 중간을 가는 법이 없다. 트렌드다 싶으면 진짜 끝까지 내달리는 느낌인데, 꽤 오랜 기간 그 트렌드 중 하나로 가는 키워드가 ‘이혼’인 것 같다. 이혼을 위한 합의 신청서 제출을 위해 법원에 오픈런으로 갔다가 수십 명의 사람이 이미 와 있어서 깜짝 놀랐다는 에피소드를 읽으며 얼마나 놀랐던지. 하지만 그것도 벌써 1년도 더 된 이야기였고, 이혼을 키워드로 다루는 방송은 숱할 정도이다. 그래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결혼이란 사회적 합의를 하고, 그 합의 끝에 건강한 결론이 도출되지 않아 진행하게 되는 이혼이 이렇게나 비일비재한 사회라니. 선택에 따른 책임은 얼마나 힘든가.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들은 얼마나 수고가 많은가, 하고.
나를 바꿀 수도, 너를 바꿀 수도 없기에 우린 여기까지만 하자 하고 선을 긋는 것을 사실 나는 매우 바람직하게 보는 편이다. 극 J이자 극 T이자 극 S여서, 작은 단서로도 몇 초 사이에 5년, 10년 후까지 비극을 내다보고 돌아올 수 있는 편인지라 서로를 힘들게 할 뿐 끝이 보이지 않는 관계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게 맞다 싶으니까. 하지만 관계란 것이 복잡해질 때는 그 사이에 단순히 둘만 존재하지 않을 때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정말 수만 가지의 고려할 사항이 들어간다. 하지만 그 고려 끝에 내는 결론이 끝이라고 할 때, 나는 그 선택도 존중해야 맞다 싶다. 물론 그것도 ‘선택’이기에 그 결과에 따른 책임이 따라오겠지만.
나의 삶이 무탈하고 평온하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의 삶도 그러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