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사람들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막 고맙다고 인사하면 기분이 어떨지 상상도 안 돼요."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에서 초반에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했던 대사 중 하나였는데, 이 말은 방영된 지 6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마음에 종종 파문을 일으킨다. 살면서 아쉬운 이야기를 밥 먹듯 들어왔던 여자 주인공이 작은 역사 안 분실물 센터의 직원을 보며 진심을 다해 부러움을 표하던 이 장면은, 이후 많은 일들을 겪은 후 동네 사람들에게 “고마워요”, “감사합니다”를 듣게 되는 서사로 이어지며 그 잔상이 더해졌는데, 나에게 이 말이 남았던 이유는 또 달리 있었다.
평소 루틴하게 나의 업무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생각지 않다가 설문지를 작성해야 한다거나 누군가에게 나의 직업에 대해 소개하게 되면, 그때 가장 많이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아주 전형적인 서비스직이다,라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소개할 때 쓸 수 있는 말이 다양하게 있으나, 유독 뇌리에 박혀 먼저 꺼내게 되는 설명이랄까. 그래서 일을 배우면서도, 또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하고 듣는 것을 제일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감사합니다”였다. 그래서였을까, 저 대사가 쉬이 흘러가지 않고 뇌리에 남았던 것은.
또 다른 일화로,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외국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자라온 친한 동생이 한 명 있다. 그 친구가 언젠가 나에게 하던 말 중 하나가 “한국 사람들은 버스 기사님에겐 고맙다고 안 해서 놀랐어.”라는 말이었는데, 나는 되려 그 말에 놀라서 “외국에서는 해?”라고 물었었다. 그 대화를 나누고 시간이 조금 지나 동생을 보러 밴쿠버에 갔을 때 버스를 한 번 탔었는데, 내리는 사람들마다 “Thank you”를 외치고 내리는 것을 보고 ‘와’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아이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고맙습니다는 따로 지불하는 것 없이도 상대방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최고의 말이야.” 실제로 그런 것 같다. 아주 많이 고마운 일이 있을 때야 당연히 고맙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마음을 건네기 위해서 나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자주 표하는 편이다. 그것만큼 가성비가 좋은 말이 또 있을까 싶어서.
일을 하면서 늘 듣는 “감사합니다”의 가치를 조금 더 무겁게 가늠하며, 이런 말을 일상적으로 듣고 살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음에 새삼 감사하게 된 것도 사실 저 대사 덕분이었음을 깨닫는다. 불평, 불만도 물론 듣는 서비스직이긴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의 감사를 듣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내가 처해 있는 상황, 나를 만나는 상대들의 상황이나 환경이 정확히 똑같다 싶은데도 누군가에게는 감사의 멘트를 듣고 누군가는 휙 나가 버리는 것을 5년 좀 넘게 겪다 보니 나름의 분석이 되었다. 10대 후반부터 80, 90대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나이대를 만나는데, 나이를 고사하고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갖출 줄 아는 태도가 이미 스며들어 있다 싶은 사람들이 있다. 반면 아직 젊은 나이대에서는 그것을 단번에 파악하기는 좀 어렵고, 나이 드신 분들 중에서는 행색이 단정하고 말투가 점잖으신 분들은 예외 없이 당신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나에게 감사를 잊지 않고 표하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잘 살아내기가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세상의 변화가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속도감이 있고 나의 상황과 환경도 매번 처음 경험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나는 감사를 잃지 않고 싶다, 내 마음속에. 받은 감사의 양보다 적어도 훨씬 많이 돌려주며, 나의 삶 속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감사거리를 찾아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