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부피와 우글거림에 대하여

by Ben Frost

우산을 챙길까, 퇴근을 앞두고 창가를 내다보며 내리는 비의 양을 가늠해 본다. 우산을 쓴 사람 서넛, 안 쓴 사람 서넛, 외투에 달린 모자를 쓴 사람 서넛. 이 정도면 우산 없이 가도 되겠다 싶어 옆에 있는 우산은 내려놓은 채 건물 밖으로 나섰다.


5분 정도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동안 외투가 제법 젖었으니 부슬비보다는 조금 더 내리는 비였다. 외투에 달린 모자를 믿고 나왔지만 하마터면 예상보다 더 젖었을 수 있겠다 싶었다. 지하철 입구 에스컬레이터에 오르자마자 모자를 벗으니 정전기가 훅 일면서 긴 머리를 손으로 정리하는 동안 몇 번씩 따끔하는 느낌이 난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비와 눈이 많이 내리는 동네였다. 서해안 특유의 습기가 늘 머무는 곳이어서였을까. 위아래 비슷한 동네보다도 유독 비도 눈도 많이 오는 느낌이었다. 지금처럼 어디든 기상 변화로 폭우와 폭설이 난무하기 이전인 훌쩍 전부터 그랬던 곳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어느 날, 하굣길에 주룩주룩 내리는 장대비를 우산 없이 맨몸으로 맞으며 학원도 안 가고 집으로 울면서 걸어갔던 적이 있었다. 초봄이어서 아직 쌀쌀함을 머금은 공기에 얇은 재킷을 걸치고는 있었지만 근 30분 정도를 그렇게 맞으며 집에 갔더니 당연히 옷이고 신발이고 잔뜩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도착했다. 하지만 그때는 몸의 추위보다는 마음의 추위가 훨씬 더 오싹하게 느껴졌고, 그래서였을까. 보통 드라마에서 이렇게 젖으면 감기에 걸리던데 그날의 비는 나에게 감기를 선사하지 못했다.


대신 나는 비 맞는 것을 혐오하듯 싫어하게 되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엄마와 함께 떠난 서유럽 패키지여행에서 살면서 두 번째로 간 파리는 첫 번째처럼 내내 비가 내렸다. 에펠탑을 조망할 수 있는 유람선에 탔는데 안 그래도 흩날리는 비가 내리던 중에 배에 올라탔으니 강 위의 바람까지 더해져 우산을 써도 비를 막기 힘들었다. 에펠탑 근처에 다다랐을 때 엄마가 사진을 찍어달라 하셔서 선실에 있다가 밖으로 나가 엄마의 독사진을 찍어드리는 동안에도 우산을 쓰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엄마에게 우산을 씌워드리자 엄마는 만류하시면서 됐다 하시며, 우산을 써도 소용없을 정도로 비가 오는데 왜 그리 우산에 목숨 거냐고 하셨던 듯하다.


그로부터 2년 후 혼자 다시 간 파리에서 차가운 겨울 강바람을 맞으며 오래 걸었는데, 그때 약하게 내리는 비를 우산 없이 맞으며 유람선에서의 그날을 떠올렸었다. 비랑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상처를 만난 겨울이었기에, 2년 전의 나는 겨우 비 정도만 싫어했구나 하면서.


비는 우산으로 피할 수 있지만 관계 속에서 오는 상처를 막을 수 있는 방패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걸까. 나도 상대방도 둘 다 살아 있는 생물이기에 인간관계란 유기적이고 역동적이지만, 그렇기에 관계 속에서 오는 상처는 더 치명적이다. 밖으로 드러나 있거나 어떻게든 물리적으로 접근 가능한 요소가 아니기에 봉합도 불가하고 양상, 깊이, 오염 정도를 측정할 수도 없다. 대부분 자연 치유를 기대하지만 기대대로 낫지 않을 때는 어떻게든 접근할 수 있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도 그래서일 테다.


옷은 빨아서 건조하고, 신발도 가방도 다 말릴 수 있지만 비 속에서 함께 젖은 마음은 말릴 방법이 없다. 마치 천 가방 속에 들어 있던 나의 가정통신문이 형편없이 구겨진 것처럼. 문제집이나 연습장처럼 부피가 있는 애들은 비에 젖어도 열심히 말리면 우글거림이 있더라도 살릴 수는 있지만 당시의 가정통신문처럼 일반 종이보다 더 힘이 없는 애들은 물기를 그대로 흡수하는 종이이기에 나는 다음날 선생님께 한 장을 다시 받아와야만 했다.


그리하여 마음의 부피를 좀 더 키울 일이다. 비를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피할 수 없다면 최소한의 막을 거라도 대비하고. 그럼에도 맞았다면 최선을 다해 바짝 말리기. 비록 우글거림이 남더라도 어쩌겠어. 살아가면서 모든 비를 피해 갈 순 없는 걸.



작가의 이전글왜 나는 웃고, 그는 굳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