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덧칠할 수 있는 삶

by Ben Frost

또각또각 쿵. 나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 건 약간 외진 모서리에 일부러 빛이 덜 들어오게 한 구석에서 핀 조명을 홀로 받고 있던 작품이었다. 작품 제목을 살펴보기도 전에 이미 액자에 제목이 적혀 있었다. “Le Printemps” 그리고 옆에 적혀 있는 작품 제목과 이름을 본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할 그림을 만났구나 하고.


당시 오르세 미술관의 인상주의 관을 들어서자마자 만났던 첫 작품이자 어둠 속에서 홀로 고고히 빛나는 듯한 빛을 머금었던 작품이었다. 언젠가 나의 작업실이 생기면 저 그림은 꼭 사서 걸어놔야지라고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아직 작업실이 없기에 나의 휴대폰 사진첩 맨 위에 늘 존재하고 있을 뿐이지만.


어려서부터 독립하기 전까지 집에서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을 빈도순으로 세 개 정도 꼽는다면 그중 한 마디가 “넌 손재주가 없어서…”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참 다용도로 쓰이곤 했는데, 미술, 요리, 손글씨, 뜨개질, 하다못해 사과 하나 깎는 것까지였다. 남매를 키우는 워킹맘인 데다 남편이 늘 바빠 모든 집안일을 오롯이 홀로 감당하셨으니 엄마는 나에게 기회와 시간을 주는 데 인색하셨다. 대신 냅다 뺏어가서 “엄마가 할게”라고 하셨던 분이셨으니 나는 대부분을 할 기회를 채 갖기도 전에 빼앗겼다.


손재주가 없음은 사실이었고, 사실 그 손재주는 아직까지도 없다. 하지만 미술 시간마다 마음 졸이며 힘들어하던 나였기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중 단연 백미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었고. 대학생이 된 이후 처음으로 국내 전시회에 가서 고흐의 작품을 보고 머리가 띵해지던 그 첫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교과서에서 보던 작품을 실제로 만났을 때의 느낌이란,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사진 속에 갇혀 있던 그림을 크기뿐 아니라 느낌까지 완전히 다른 실물로 만났을 때의 감동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한편 이전에 일하던 직장에 걸려 있던 그림 중에 와, 정말 특이하고 너무 멋지면서 자꾸 눈이 가던 작품도 있었다. 박노수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전혀 모르던 화가였고, 단지 작품이 너무 멋져서 다른 작품을 더 보고 싶어 갔던 유일한 작가이지 싶다. 엄마와 세 번 정도 서울에서 만날 때 갔었는데 한국화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담대한 색채가 그림과 어우러지는 것이 정말 멋지다 싶어 갈 때마다 감탄했었다.


그림이 주는 감동 뒤에 화가들의 노고를 다 알 수 없었던 때를 지나 지금은 그 노고를 조금은 아는 때가 되었다.


엄마는 원래 꿈이 미술교사셨다. 고등학교 때 그림을 배우기도 하셨고 실제 소질이 있기도 하셔서 그 길을 더 가고 싶어 하셨지만, 6남매 중 다섯째셨고 공부를 하는 것 자체도 눈치가 보이는 집이었기에 배우는 데 품이 들고 발령이 더딘 과 대신 발령이 잘 나는 과로 바꿔 대학을 가셨고 그렇게 평생 교편을 잡으셨다. 그리고 나는 자라는 내내 그런 엄마의 손재주가 묻히는 게 아쉬웠다.


내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하고 엄마의 정년퇴임을 몇 년 앞둔 시점에 나는 엄마에게 그림을 다시 그려보시기를 추천했고, 초반 2년 정도는 내가 학원비를 지원했다. 그렇게 다시, 본인의 의지라기보다는 딸의 강권으로 시작한 그림이었지만 엄마는 아주 정성껏 그 모든 과정에 임하셨다. 이미 그림을 그려본 자의 여유랄까, 학원 다니는 초반 1년 정도는 다른 것 없이 데생만 하셨다. 언젠가 다시 그림을 시작하게 된다면 정말 기초부터 다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셨더랬다. 장르 중에서는 유화를 택하셨고, 그렇게 그림을 그리신 지 9년 차이신 엄마는 공모전 점수를 차곡히 채우셔서 올해는 작가로 등단하실 예정이시다.


최근 공모전 그림을 가지고 근 1년 넘게 씨름하시던 엄마의 모습을 보아왔다. 스위스에서 등산하시며 직접 찍었던 사진 한 컷을 그림으로 옮긴 작품이었는데, 워낙 큰 그림인 데다가 바위부터 모든 자연물을 그릴 때 일정하지 않은 빛의 반사까지 표현하시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셨다 하셨다. 한 작품일 뿐인데 그것에 그리 오래 매달리며 마음 쓰시는 것을 보고 있자니 화가가 자신의 작품에 방점을 찍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지켜볼 수 있었다. 그 마지막 방점이 자신의 이름을 한구석에 써넣는 것인데, 마침내 엄마의 이름이 들어간 최종작을 카카오톡 사진으로 받아 보면서 정말 고생 많으셨다고 인사를 건네었었다.


어렸을 적, 책 제목이 좋아 제목을 보려고 구입해 두었던 책이 있었다. “너만의 명작을 그려라.”라는 책이었는데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나에게 그 제목은 어떤 위안이 되었다. 나의 삶도 작품이구나, 그러면 나는 어떻게 그리면 좋을까 하여. 이건 손재주의 영역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행동, 선택이 모여서 그려가는 작품이면서 시간이 퍽이나 오래 걸릴 텐데 그 열려 있는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것이 설레기도 하고 아득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요즘 나의 머리 한구석에서는 현재를 살아가는 삶에 대한 고민이 늘 있다. 지나간 후에서야 “그때 참 좋았는데”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고 지금을 살아가고 싶은데, 지금을 오롯이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싶은 것이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세세하게 다 계산해서 살 수는 없지만 최소 하루의 시작에 앞서 흘러갈 하루를 그려보고 하루의 끝에 하루를 대충이나마 돌아보는 것.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 주 단위 혹은 월 단위로. 그리고 붓칠을 하기 전 가능하다면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그게 최선일지 가늠해 보는 것. 그러면서도 다시 다른 붓칠로 덮을 수 있으니 너무 고민하지는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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