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미국에서 잠깐 살 때의 일이다. 그 당시 구했던 집은 대학가에 위치한 2층 주택의 2층이었는데, 옵션으로 세탁기/건조기 일체형이 내부에 있었다. 그 외에 있던 식기세척기, 오븐은 거의 쓰지 않았지만 이 세탁기/건조기는 필수 가전 중 하나인 만큼 잘 썼었다. 그때까지 나는 세탁기만 써봤고 건조기는 써보지 않았는데, 어쩐지 쓰고 싶지 않아 꺼려졌지만 건조대가 없는 상태였기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세제를 사 와서 처음으로 세탁하고 건조기까지 돌렸던 그날, 먼지 필터를 들어 올리는 남편의 손을 따라 보며 깜짝 놀랐었다. 필터에는 그야말로 먼지가 그득했다. 그 양은 옷에서 이만큼의 먼지가 나왔다는 것을 차마 믿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다시 들어온 한국에서 가전을 사러 갔을 때, 나에게 건조기는 그 무엇보다 앞서 ‘필수 가전’이 되었다. 알기 전에는 몰랐지만, 알고 나서는 꼭 쓸 수밖에 없던.
그렇게 5년간을 지내던 지난여름, 아기 키우는 집에서 세탁기 청소 서비스를 한 번도 안 해봤냐며 얼른 받아보라고 재촉한 친구가 있었다. 등 떠밀려 신청하고 며칠 후 기사님 두 분이 오셔서 세탁기를 분해하고 청소를 시작하셨다. 어느 정도 분해한 이후에 중간 상황이라며 설명을 해주시는데, 한눈에 봐도 별로 낀 것이 없어 보였다. 나의 물음표 가득한 눈을 보셨는지 기사님도 멋쩍게 웃으시면서 “사실 이게 제 세탁기면 굳이 건드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물어보셨던 것이 섬유유연제 사용 여부와 헹굼 횟수였다. 아이 옷에 잔여 세제 남는 것 때문에 섬유유연제는 아예 쓰지 않고 있었고, 같은 이유로 헹굼도 늘 최고 횟수로 설정해서 했었는데, 그랬던 것이 자동으로 세탁기를 오염으로부터 잘 지켜줬던 것이다.
한편 건조기를 살펴보시더니 “오히려 건조기가 먼지가 많이 쌓여 있는 느낌이네요.”라며 빛을 비춰 안쪽을 살짝 보여주셨는데, 여긴 한눈에 봐도 쌓인 먼지 양이 꽤 되었다. 지금 당장 하진 않더라도 성능이 떨어졌다 느끼면 그땐 서비스를 신청하라 얘기하시면서 당부 사항으로 매 건조 시마다 필터 청소를 할 것을 당부하셨다.
뜨끔, 어떻게 아셨지. 기사님들이 다녀가신 이후로 나는 매 건조 시마다 필터를 빼서 세척하기 시작했다. 기사님들이 보여주신 대로 먼지 제거하고 샤워기의 물줄기로 한 번 더 제거하는 식으로. 그런데 그러면서 잊고 있던 첫 건조기 사용 이후의 놀라움이 생각났다.
부유하는 먼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몸에 치명적으로 좋지 않은 미세먼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먼지들이 뭉쳐져 있지 않으면 그것을 발견해서 떼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건조기 이후 필터에 쌓이는 먼지를 보면서는 이렇게 많은 먼지들이 실제 존재하는 것인가를 매번 놀라게 되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떼어낼 수 있는 건조기, 혹은 스타일러와 같은 가전의 힘을 빌어 의류의 먼지는 떼어낼 수 있지만, 나의 몸 안에 직접적으로 쌓이는 혹은 나의 마음에 쌓이는 먼지들은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 이미 쌓여 있는 양은 얼마나 될까, 그것들에 내가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가는 건조기를 바라보게 된다.
본디 세탁실에서는 멍 때리기가 참 좋다. 내가 처음으로 집을 나와서 살았던 고등학교 때, 기숙사의 공용 화장실에 있는 세탁기는 가끔 그런 나의 멍때림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세탁물을 넣고 세탁을 기다리는 초반 시간보다는 이제쯤 되었으려나 하고 나왔다가 아직 안 끝난 것을 발견했을 때, 들어갔다 나오는 것 대신 그 자리에 서서 남은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귓가에 들리는 규칙적인 세탁기 소리는 생각의 뻗어 남에도 정리에도 좋았다. 깨끗하게 만드는 것, 그것을 위해 저 기계가 애쓰는 저 모든 것이, 그 열심이 주는 동력이 좋기도 했다.
털같이 생긴 먼지떨이를 톡톡톡 치면 먼지들이 확 일어나면서 그 먼지를 뒤집어쓰는 느낌이 나서 대체 이건 어떻게 생겨먹은 물건이지 하고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다. “그걸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대신 쭉 밀어야지.” 정전기를 사용해서 먼지를 데려가도록 하는 거였는데 툭툭툭 치면 먼지가 풀썩하고 일어나지만 다시 그 자리에 앉아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훔친 이후에는 물티슈로 한 번 더 닦아주면 먼지의 입지가 참 좁아진다.
이걸 마음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마음의 스파크가 일어날 수 있는 것, 그것은 아마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먼지를 타닥 하고 일으켜야 하니까. 하지만 적어도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무언가로는 되지 않을 것일 텐데, 나에게 그런 역할을 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여행 정도였던 듯하다. 루틴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 나를 노출시키는 것, 평소 볼 수 없는 자연 혹은 조형물을 보며 느끼는 것, 때론 그렇게 낯선 공간에서 새롭게 발생되는 관계 간의 갈등까지.
그렇다면 그렇게 일어난 마음의 먼지를 밀어버리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깨끗한 물티슈는 무엇일까. 직접적인 물리적 접촉까지 할 수 없는 곳이기에 그것은 새로움으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런 새로움이 아니라 ‘촉촉함’이 깃든 새로움이라면 남은 먼지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하다.
명절을 앞두고 집을 비우기 전에 부지런히 이불 빨래를 했다. 빨래 후 건조기의 먼지를 정리하다 나의 마음에 쌓인 먼지를 그렇게 가늠해 본다. 그리고 다른 공간, 오랜만의 만남 속에서 나의 먼지가 풀썩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