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쭉 지켜보고 내린 결론인데, 당신이 추구하는 건 저소비가 아니라 무소비야.”
얼마 전 남편이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넸을 때 처음에는 멈칫했다가, 다음 순간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이 그간의 나의 삶을 한 번 쓱 훑고 지나가는 느낌과 함께 들었다. 이것이었구나, 이것이 내가 지향하는 바였구나. 그런데 그것을 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남편의 눈과 경험을 통해 들으니 흥미로웠다. 이래서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말이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사람에 대한 신뢰의 부분이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이미 훼손된 채로 자라난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사회생활 초반의 바빴던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이 집 저 집 손 탄 데가 많아서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아서였을까, 선천적으로 의심이 많았던 기질 탓일까, 후천적으로 다소 비관적인 사고관을 가지며 자라나서였을까, 그도 아니라면 내 안에 있는 악한 마음을 그대로 꺼내 세상에 비춰봐서였을지도 모른다.
꼭 그래서라기보단, 그렇다 보니 나는 총무를 종종 맡았다. 자진해서 맡기도 했고, 성향상 계획을 짜는 것을 주도하는 편이라 맡게 되기도 했다. 적어도 내가 돈을 맡는 이상 이 돈이 다른 데 새지 않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던 탓도 있지만, 그보단 아껴 쓸 자신이 있었던 것도 있었다.
남편이 나에게 해 준 말을 내가 진작 알았더라면 그동안 있던 숱한 갈등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의 성향상 총무로서 수금하고 돈을 관리하는 것에만 그쳤어야 했는데, 돈을 쓰는 것까지 함께 담당하다 보니 항상 나는 깐깐함을 기본으로 장착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엄마, 친구, 남편 등 둘이서 여행을 갈 때는 그보다 더 직접적으로 갈등에 노출되곤 했다. 사실 여행의 묘미는 돈 쓰기에서 나오는데, 그 돈 쓰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돈을 맡고 있으니 먹는 것부터 시작해 체험하는 것까지 같이 가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 갈등의 씨앗이 나였다니, 그간 나와 함께 여행을 다닌 이들에게 뒤늦게 미안함을 한아름 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아이를 낳기 전 가장 걱정되었던 부분 중 하나가 이거였다. 살면서 해 본 적 없는 종류의 소비를 아주 많이 하게 될 터인데, 이것에 내가 쿨해질 수 있을까 하는 것. 그래서 나름 마음을 먹는다고 결제하기 전 뜨는 문구에 ‘아이 거는 아끼지 말자’라고 넣어둘 지경이었으니, 스스로를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이가 태어난 첫해에 일부 보일러가 고장 나 있었다는 사실을 그 집에 산 지 2년 만에 알게 되었는데, 몰랐던 이유가 그전에 보일러를 켠 적이 없어서였다. 보일러를 고치고 오가시는 부모님을 위해 보일러를 좀 틀고 살았더니 가스비가 어마무시하게 청구되는 것을 보고 어쩌나 싶어 아이가 태어난 다음 해에는 틀긴 틀지만 아껴 틀곤 했었다. 꼭 그 결과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아이를 데리고 3일이 멀다 하고 병원을 오가며 겨울을 보냈다. 그런 경험이 있은 이후 맞이한 이번 겨울엔 나는 적어도 아이가 생활하는 공간에는 보일러를 아끼지 않게 되었다. 뜨끈할 정도까지 틀진 않지만 자는 공간만큼은 따뜻하다 느낄 정도로 틀어주고 있다.
아이를 자주 병원에 데려가다 보니 느꼈던 것은 병원비나 약제비는 고사하고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것이었다. 사실 데려가는 중에는 못 느꼈는데 아이의 면역력이 좀 더 생긴 지난해에는 아이가 병원을 거의 가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씩만 가다 보니 하원 이후에 시간이 정말 많이 남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하원 이후에도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와 놀이터 투어, 체험 수업, 친구들과 놀기 등 시간을 온전히 보낸다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고 나니 병원행의 진짜 문제가 시간을 죽인다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어제는 시댁에서 명절을 보내고 올라오면서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기름을 넣었는데, 내 차를 사서 몰게 된 지 11년 차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기름을 가득 넣지 않았었다. 이래저래 말이 많은 것 중 하나가 차에 기름을 가득 싣고 달리는 것이 꼭 좋지 않다는 것이었고, 요동치는 휘발유 가격도 있었으며, 대부분 기름을 넣게 되는 주유소가 근처이다 보니 리터당 가격이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어제는 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기름을 가득 넣었다. 이유인즉슨, 아이를 태우고 주유소를 찾아다니는 시간이 쉽지 않음을 몇 번 경험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혼자와 둘, 그리고 아이까지 셋의 삶이 다 다름은 당연하지만 그것을 내가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에는 로딩이 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직도 셋의 삶을 적응해 가는 중이지만, 나중에 다시 아이가 떠나고 둘, 그리고 하나가 되면 이 적응의 역방향을 다시 겪어야겠지 싶어 한 번씩 픽 웃게 된다. 가성비를 따지고 최소 요금에 최고 효율을 따지는 나란 사람에게 기존 가성비의 개념을 새롭게 장착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요금은 좀 들더라도 시간을 아낄 수 있다면, 어른들 말마따나 흘러간 세월은 막을 수 없고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으니 어쩌면 이 방향이 더 지혜롭다 싶기도 하다.
무소비를 지향하는 사람인지라 돈을 쓸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여전하지만, 쓸모 있는 소비에는 좀 더 너그럽게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중이다. 스트레스를 줄여야 하는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적어도 가치가 있다면 잠깐의 후회보다 얻는 이득이 더 크다 여겨지는 차원에서라도.
그래도 결제하는 순간에는 늘 마음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