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그리고 살아내는 일

by Ben Frost

"난 이 일을 평생 하고 싶거든."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친한 동생이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을 담아 한 이 한 마디가 나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왜 남았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을 때, 내가 저 말을 듣고 '그렇지' 하고 넘어가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을 것인가와 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을 것인가의 논쟁은 마치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와 같은 논쟁처럼 여겨졌던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고 잘하는 것도 분명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둘은 일치하지 않았고, 내내 고민하다가 잘하는 것을 선택하는 쪽으로 택해 대학교를 갔다.


와, 그랬더니 대학교에서 정말 흥미로운 일을 만났다. 내가 잘한다고 내내 생각해 왔던 것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발상이었는가였다. 유일했던 나의 특이점은 사라지고, 나는 그저 뭇 학생 중 한 명이 되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걱정하고 실습과 실기시험을 걱정하는 아주 평범한 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그중 나의 숨통을 틔워놓는 시간은 유일하게 대학교 별관 지하 1층에 위치한 도서관에 갈 때뿐이었다. 전공서적이 즐비하고 일반서적은 거의 없던 그 도서관은 볕이 안 드는 지하에 있어서, 분명 안쪽 구석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지만 늘 어두운 동굴로 들어가는 느낌이 입구에서부터 있었다.


출입문을 지나면 왼쪽에는 늘어선 책상과 의자, 그리고 컴퓨터들이 있고, 오른쪽에는 관리하는 사서의 테이블이 있었으며 정면에는 나열된 여러 개의 책장들이 있었다. 독서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프린터기를 이용하러 간간이 오는 학생들만 오가는 곳이었기에 그곳은 늘 적막했다. 동기들이 한 번씩 어디냐고 나에게 물을 때 내가 주로 대답하는 곳이었기에, 실제로 내가 책을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지금도 대학 동기들은 나를 '책 좋아하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몇 번이고 그만할까를 고민했지만 끝끝내 그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부모님의 착실한 지원이 첫 번째였고, 함께하는 동기들이 있음이 두 번째였다. 그런데 그 두 가지가 모두 없어지거나 희미해졌던 졸업 이후의 생활 속에서 나는 또다시 나의 길을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다시 이 길로 돌아왔을 때는 더 이상 다른 길을 고민하진 않았지만, 나의 마음속에 직업에 대한 일종의 사명감이 사라졌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친한 동생의 말이 나의 마음에 걸림돌이 된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동생은 내가 생각하기에 참 이상적으로 살아가는 것만 같아서.


한편 지금의 나에게 가장 가까운 어른들인 양가 부모님들을 볼 때 다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있다. 나의 부모님은 나와 비슷하게 각자 하고 싶었던 것을 내려놓고 잘할 수 있는 전공을 택하신 분이었고, 시어른들은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긴 했지만 좋아하기도 했던 전공을 택해 평생을 살아내고 계신다. 나의 부모님은 잘 알기도 하고 나도 비슷한 케이스라 그러려니 싶은데, 나와 다른 시어른들의 삶은 자꾸만 관찰하게 된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길이라 그런지.


곰곰이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고 질의응답도 가져보면서 내렸던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충이 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어서 선택한 길에서는 잘하는 사람을 만난다. 좋아하면서도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거기에서 오는 좌절감이 존재한다. 다만 그 좌절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결국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가 싶어서.


지금의 시대는 그야말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시대이고, 내가 나의 전공을 치열하게 고민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세대로 흘러가고 있다. 은퇴라는 개념이 다양해졌고, 어찌 보면 빨라지기도 했으며, 부캐라는 단어가 일반인들에게까지 퍼질 만큼 직업이 하나에만 국한될 필요도 없고, 수명이 길어져 삶의 호흡을 이전보다 더 길게 가져갈 필요까지 있는 시대다.


그리하여 나는 위로를 받는다. 나의 첫 선택이 설사 옳지 않았다고 해도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남아 있으며, 옳은 것이었다고 한다면 그 역시 살아갈 날이 아직 있음에.


첫 번째 직업을 마무리하고 다음 삶으로 넘어가는 양가 어른들을 보며, 아직 한창인 삶을 살고 있는 나이지만 자꾸만 다음 직업을 생각하게 되는 건 비단 나만 그런 것일까.


오늘도 나는 내 삶을 살아낸다. 다음 삶을 꿈꾸지만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는 건 지금의 삶이다. 꿈꿀 여지가 아직 있음에 한편으로는 답답해하며, 한편으로는 감사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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