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봐, 얼마나 감동했겠니? 보고 싶다는 한 마디에 그 먼 길을, 게다가 좌석도 비즈니스석밖에 없다는데, 당시 760만 원? 정도를 들여 만나러 갔다니 말이야."
요즘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에서 개그맨들이 만담을 나누다가 자신들의 공통 지인이 연애 당시 벌였던 지극정성이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는데, 한참 재밌게 보던 도중 여기서 일시정지를 눌렀다. 감동? 고개를 갸웃했다. 나라면 감동은커녕 어떻게 하면 나의 불편함을 상대방에게 적절하게 건넬까 하고 고민하게 될 텐데 말이다.
MBTI가 한참 유행이던 당시, T와 F를 구분하기 위한 대표적인 질문은 '나 우울해서 빵 샀어.'에 대한 반응은?이었는데, 어느 저녁 퇴근한 나를 붙잡고 남편이 이 질문을 대뜸 하길래 무슨 빵 샀는데 하고 대답하니 남편이 깔깔대며 역시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잠시 뒤 "혹시 꽃도 그래서 안 좋아해?"라고 물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가끔씩 꽃다발을 든 남자를 본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얼굴에 약간의 긴장과 설렘까지 묻어 있는 것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저 꽃을 받게 되는 여자는 기뻐하겠지?라는 당연한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면서, 한편으로는 그 꽃을 든 남자가 나의 남편이 아님을 다행으로 여긴다.
연애 때부터로 치면 햇수로 10년 차인데, 그동안 꽃을 선물로 받은 건 한 손에 꼽는 정도였다. 사실 그보다 더 자주 꽃을 주고 싶어 했지만, 단 한 번도 내가 좋아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굳이 꽃을? 이란 반응을 보였기에 토라진 남편은 더 이상 나에게 꽃을 선물하길 그친 결과였다.
비슷한 맥락으로는 빵도 있었다. 소문난 빵순이인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면서 퇴근길이나 출장 갔을 때 빵을 몇 번 사 온 적이 있었는데, 맛있다고 잘 먹으면서도 이렇게 당부했다. 나를 생각해 준 그 마음은 고마우니 사고 싶은 순간에는 꾹 참고 나에게 돌아와서 생색 내달라고. 자신의 성의에 대한 몇 번의 홀대를 경험한 이후에 남편은 이제 사고 싶은 순간에 꼭 전화를 한다. 그러면 나는 구매를 만류하며 생각해 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며 통화를 마친다.
호의로 대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이 예상과 다를 때의 실망감은 큰 것이 당연하다. 한편, 그 호의를 받아 들고 오롯한 기쁨을 상대에게 비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나를 생각하고 선물을 준비해 준 그 마음까지는 너무 잘 알겠으나, 원래 내가 좋아하는 꽃이나 빵이어도 그것이 나에겐 곧바로 기쁨으로 치환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꽃을 받기 싫어하는 마음은 이러하다. 생화를 받았을 때 아무리 며칠간 잘 관리한다 해도 꽃이 시들어감을 봐야 하고, 결국 그 꽃을 버리게 되기 때문에 버릴 때 상대방의 마음까지 함께 버리는 듯한 속상함이 든다. 한편 빵을 받기 싫어하는 마음은 이러하다. 소문난 빵집에서 구매하게 되는 특별한 빵이라면 대체로 가격이 평균 이상일 텐데, 그것을 바로 먹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몇 시간에서 하루 정도 지나서 맛볼 때 그 특별함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그저 빵일 뿐인데,라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상대방의 호의를 단순히 호의로만 받고 고맙다,라고 말할 순 없나 묻는다면 물론 그럴 수는 있다. 다만 선물한 상대가 누군지에 따라 고마움의 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인가, 잘 아는 사람인가에 따라 말이다. 나를 잘 안다면 자신이 건네는 호의가 어떤 가치인지까지 잘 아는 사람일 테니 말이다.
이렇게 높은 기준과 잣대를 가진 사람이라니. 호의를 호의로만 대할 수 있는 날이 오려면 나의 마음이 좀 더 낮아져야 할까 싶다. 상대에 대한 기준을 낮추고 나에게 건네는 다정한 호의에만 반응하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나를 잘 알아도 몰라도 어쨌거나 건네는 것이 '호의'라는 것은 같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