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거는 깨지는 거야 아니야?"
지난 국립현대미술관 방문 당시 1층의 어마어마한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한 작가의 초청전이 있었다. 작가의 초기 시절 작품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수많은 도자기 작품들이 있었는데 그 영롱한 빛깔을 기꺼워하던 아이가 문득 물었다. "깨지는 거야"라고 대답해 주면서 유리와 같은 계열이어서 떨어뜨리면 산산조각이 나기 때문에 절대 만지면 안 된다고 당부를 더했다.
결혼 후 첫 살림을 꾸리는 과정은 전적으로 시댁에서 빚을 졌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살림살이의 대부분을 많이 주셨는데 당장 써야 하는 것들 위주로 받았고 그중 하나가 식기들이었다. 나는 본래 심미안이 없다. 그리고 필요와 편의성에만 중점을 둘 뿐 이것이 예쁘냐 안 예쁘냐는 영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요리를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식기를 주신다고 했을 때 옳다구나 감사합니다 하고 받을 뿐이었다.
다만 직접 선택한 것이 아니다 보니 흥미로운 부분은 존재했다. 소위 국민 접시라고 불릴 만한 그릇들을 주셨는데 대부분 친정집에 있는 접시들과 동일했기에 결국 살림살이에 남는 그릇들이 비슷하구나 싶었다. 매일 쓰는 제품들이다 보니 내구성이 좋아야 할 것이고 색이나 모양이 튀지 않고 무난해야 할 것이기에.
남편은 주로 원팬 요리를 하는 편이고 플레이팅에 신경 쓰는 것도 좋아하는지라 신혼 초기에는 하루에 같이 먹는 한 끼 밥인 저녁에 완성된 플레이트를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종종 올리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님이
"맨날 똑같은 접시만 올라오는 것 같더라. 우리 집에도 있는 접시가 그 집에도 가 있고 하니 음식을 그릇이 충분히 못 담아내는 것 같아서 아쉽네."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어쩐지 그 이야기가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되지 않았다. 당장 둘이서 사는데 뭐 그리 접시가 많이 필요하겠나 싶은 생각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그 살림을 그대로 살아온 지 벌써 6년 차, 그 사이에 우리 집에 새로 온 그릇들은 한 손에 셀 정도다. 작은 종지 두 개,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만들어서 가져온 그릇 두 개, 선물 받은 그릇 하나 정도. 한편 사라진 그릇은 꽤 된다. 절대 안 깨진다는 튼튼한 그릇들 위주로 받았음에도 깨 먹은 그릇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중 며칠에 걸쳐 연거푸로 그릇을 깼던 날이 있었다. 나는 그릇이 깨지면 일단 정신이 너무 없어진다. 잠시겠지만 순간적으로 시간이 멈추는 느낌이 들고 그렇게 내 사고가 멈춘 채 몇 초가 지난 이후에야 으아 어떻게 해 라고 비명을 지르며 부랴부랴 깨진 접시를 줍기 시작한다. 비닐봉지를 들고 눈에 보이는 조각을 다 넣고 나면 청소기를 가져와 깨진 곳을 시작으로 파편이 흩어질 만한 반경까지 청소를 하고 그다음에는 불을 다 끄고 휴대폰 라이트를 켜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미세한 반짝거림을 찾아 헤맨다. 그렇게 십여 분을 들여 한차례 난리를 치고 나면 고요함과 허탈함이 함께 밀려온다.
손에 잘 가지 않는 그릇은 깨질 일도 덜하다. 그렇다 보니 우리 집에서 지금까지 깬 그릇들은 잘 쓰는 그릇들이었다. 난 자리가 표가 나고, 없으니 아쉬운.
"아버지, 내 마음이 딱딱했으면 좋겠어."
이건 전국민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던 드라마에서 실연의 상처를 입은 여자 주인공의 대사였다. 그리고 저 대사를 보면서 그 당시의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내 마음도 단단했으면 좋겠다 싶었던 시절이었어서.
하지만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표면적으로는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고 겪은 일이 많은 만큼 단단해져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단단함은 돌 같은 단단함이 아닌 유리나 도자기와 같은 단단함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른이 된다면 사소한 일에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마음에 금이 가고 깨지고 부서질 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건 내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거나 혹은 어른이 되었지만 어른 역시 별다를 게 없다는 뜻일 것이기에.
안 쓰고 찬장 안쪽에 넣어두는 그릇처럼 마음을 그렇게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깨짐을 방지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거라곤 그릇 안쪽까진 별 수 없어도 그릇 외부에 범퍼를 두는 것 정도이다. 그릇을 살 때 깨지지 않도록 외부에 덧대는 일명 뾱뾱이처럼 혹은 깨져서 떨어지는 바닥이 일반 마룻바닥인지 아님 충격 흡수가 가능한 매트 위인지에 따라 다른 것처럼.
그러려면 마음의 한계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의 한계가 아닌 마음의 근육의 수치를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의 충격에까지 괜찮은가를 알고 있는 것은 물론 어떤 환경에서 유독 충격을 잘 받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마음의 다침을 스스로 예방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해볼 일이다.
한편 금이 가거나 깨지기 직전이거나 마침내 깨어질 때, 그때는 적극적으로 수습할 일이다. 깨진 접시를 방치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발로 밟아서 손으로 만져서 더 큰 찢김을 유발할 뿐이기에.
그리하여 살아갈수록 나를 더 돌아보게 된다. 나의 마음의 온전함은 나만의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가족, 직장 내 동료, 친구 등 가까운 이들에게까지 미치게 되는 영향이 있다 보니.
재질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을 배워 가는 것이 곧 또 다른 나이 듦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