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건조하게 살기로 했다

by Ben Frost

아직 만 나이로 40이 채 되지 않았는데 심장이 고장 났다. 뚜렷한 심장질환 가족력도 없고 정상체중이며 음주는 한 달에 많아야 두어 번, 비흡연자이고 기저질환은 없는 사람인데 말이다.


전조증상이 있었을 때 해놓았던 검사들 덕분에 심장 자체의 이상은 없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병의 발생은 막을 수 없었다. 다음번 같은 증상이 있으면 응급실에 뛰어가라는 당부를 듣고, 6개월 뒤 즈음 어느 날 증상이 있어 응급실을 찾아갔다. 다들 다급하게 들어오는 응급실에 내가 느긋하게 걸어서 접수를 하고 대기하고 있는 간극이 흥미로웠다.


문진을 간단히 하고 침대를 안내받았다. 심전도를 지켜봐야 한다는 말에 몸에 주렁주렁 부착하고서 꼭 누워 있진 않아도 된다 하여 앉아서 핸드폰으로 바삐 하던 일을 마저 하는데 흔히 말하는 현타가 몰려왔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하고.


이 질환을 가진 사람의 절반 정도는 평생에 한 번의 이벤트로만 끝난다 하여 나도 그렇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었는데, 그 기대감을 가진 지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응급실에 앉아 있게 되니 허탈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심장질환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은 이전과 같지 않아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없앨까, 무엇을 줄일까, 무엇을 더할까, 무엇을 먹을까.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쉼 없이 찾아보고 고민하고 결심했다. 찾아보니 심장에 좋은 것들은 대개 건강에 좋다 알려진 생활방식과 식품들이었다. 이대로만 살면 정말 건강해지겠는걸, 이라고 중얼거리며 허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전화위복, 화가 바뀌어 복이 된다는 것을 내가 해볼 수 있으려나. 몸이 못 견디고 내뱉는 증상을 무시하지 않고 몸이 견딜 수 있게끔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아는 것이 아닌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것을 실천적으로 삶에 적용하는 건 완전 다른 문제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심장에 가장 안 좋은 것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술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기존에도 간헐적으로 먹는 편이었지만 강제적으로 끊게 되었다. 혹여라도 맥주의 그 캔 따는 소리가 그리우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좋은 세상인지라 0.00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는 무알콜맥주로 대체할 수 있을 듯하여 내심 안심하였다. 피할 수 없는 술자리에는 저걸 사가면 되겠구나 하고.


또 무엇을 바꿀까 하고 돌아보니 기존에 나의 사고방식이 눈에 띄었다. 나는 사소한 일을 지나치지 못하고 그것이 가지고 올 최악의 상황까지 미리 생각해 놓은 이후에 직면하는 스타일이다. 그렇다 보니 현대인의 고질병이라는 스트레스가 아주 까마득하게 어릴 때부터 늘 있었던 것 같은데 이대로 계속 살면 안되겠구나 하는 심정이 드는 것이다.


어떻게 지나칠 수 있을까. 어떻게 끝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서 일단 피해보자 하고 한 달 정도를 살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어제저녁, 아이의 저녁을 준비하면서 주방 한구석에 쌓여 있는 분리수거용 쓰레기들을 정리했다. 그중 며칠 전 시켰던 후라이드 치킨의 치킨박스가 있었는데, 다 먹고 미처 치울 시간이 없어 박스 채로 둔 것이었다. 보통은 안에 있는 부스러기들을 닦고 털어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종이로 분리수거를 하는 편인데 평소처럼 안에 있는 박스를 쓰레기통 위에서 탁탁 털어내니 기름기 가득했던 튀김 부스러기들이 멀끔히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 순간 입에서 탄성이 나온 것 같았다. 이거구나 하고.


스트레스를 점성으로 표현하면 나에겐 끈적함이다. 쫀득함이 아닌 기름기 가득한 눅진함. 털어버리려고 애써도 그 자국과 흔적을 여실히 남기고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애써 스트레스를 없앤다, 덜어낸다 라는 것은 강제적으로 그 양을 줄어들게는 할 수 있으나 머물렀던 흔적을 없애기에는 요원하다.


기름이 가득 배인 후라이드 치킨의 부스러기가 건조한 초봄의 집안에서 며칠간 있는 동안 그 녹진함을 어느 정도 덜어냈다면, 나 역시 조금 건조한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다 덜어내려고 애쓰기보다 조금 건조하게 방치하듯 두며 녹진함이 조금 덜어졌을 때 떨어내면 어떨까.


내 마음은 참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라고 다소 자책하며 일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몸 한구석이 고장 나고 보니 차라리 마음은 좀 더 쉬운 생각이 드는 것이 흥미롭다. 매일 아침 작고 하얀 알약을 하나씩 챙겨 먹으면서 나의 안위를 바라는 것과 달리 마음은 아직 내가 건드릴 여지가 있는 듯하여 말이다.


한편 어떤 것도 공격하지 말 일이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도, 아파본 사람도, 아픈 사람도. 각자의 길을 걷는 인생 속에서 누구의 잘남과 못남을 비교하며 살아도 그 끝이 비슷한 것을. 애늙은이같이 사고하지 않고 싶다 종종 생각하지만 나의 몸은 나의 사고를 부추기듯 모든 것을 앞당기는 느낌이다, 어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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