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량의 마음

by Ben Frost

나의 세탁기를 가지게 된 지는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엄마가 세탁해 주시던 16년을 지나 8년의 긴 기숙사 생활과 빌트인 되어있는 세탁기를 썼던 시간을 거쳐 마주하게 된 신혼살림 장만 때에서야 처음으로 구매했으니까. 세탁세제는 간간히 사서 쓰긴 했었는데 양을 가늠할 수 없어 그냥 대충 넣고 돌리면서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대충 살다가 아이가 태어난 후에야 나는 세탁세제의 케이스를 제대로 살펴보게 되었다. 아이의 옷인 만큼 잔여세제가 있다면 몸에 직접적으로 닿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였다. 통에 적혀 있는 간단한 그림과 설명에는 무게에 따라 뚜껑에 해당 양을 넣어서 빨래를 돌리라는데, 무게는 어떻게 재지? 다들 세탁하기 전에 무게를 재보는 건가 갸우뚱하면서 나는 이미 세탁조에 한가득 들어 있는 빨랫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것을 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세탁세제의 양이 과하면 안 되긴 할 텐데. 결국 세탁조를 노려보던 나는 세탁물들의 무게를 가늠해 보다가 그보다는 조금 적게 세제를 넣었다. 농축 세제라니 많은 것보다는 낫겠지, 하고.


아이는 자라면서 별다른 피부질환을 겪지 않았다. 조금 빨갛게 올라오는 듯 싶어서 보습을 충분하게 해 주면 가라앉곤 해서 세탁세제의 양을 오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던 중 권유를 받아 하게 된 세탁기 클리닝 서비스 때 기사님들이 폭풍 칭찬을 하시면서 관리를 잘하셨다 할 때 어안이 벙벙해서 제가요?라고 물었다. 쓰읍. 따로 관리를 한 게 없는데요 라며 의뭉스러운 대답을 건네니 세제를 적량만 쓰시는 것 같아요라고 기사님이 대답하셨다.


적정량의 세제라니. 그저 가늠해서 조금 적게 넣었을 뿐인데 그것이 결과론적으로는 아이의 건강에도 세탁기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단 말인가.


그리하여 오염을 물리적으로 덜어내기 위한 방법에 최적화된 세제이지만 그것의 양이 지나칠 때 남는 잔여세제라는 개념을 새삼 떠올려보게 되었다. 순간 기숙사에 살 때 많으면 깨끗이 빨아지겠지 하고 공용세제를 듬뿍듬뿍 넣었던 내가 스쳐 지나갔던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무지함이 가져왔던 용감함이었을까. 그로 인해 내가 입던 옷들에 어떤 영향을, 나의 피부엔, 결국 그 세탁기엔.


적정량이라는 개념이 새삼스러웠다. 적게도 많이도 아닌 정량을 지킨다는 것의 의미가 대체 무엇일까 싶어서.


수많은 레디메이드 제품들과 구하려고만 하면 레시피가 넘쳐나는 시대이기에 요리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도 적어도 재료의 양은 미리 세팅해 놓을 수 있는 시대이다. 최근 거실 화장실의 수도가 잘 내려가지 않아 다이소에서 뚫어뻥 제품을 하나 사 왔는데 그 사용설명서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한 통을 다 넣으면 된다는 심플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이렇게 적정량을 미리 알려주고 그에 따라서 살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면 얼마나 쉬울까.


하지만 어렵게도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들은 그렇지가 않다. 돌아보면 치기가 넘칠 때, 사랑이 넘칠 때, 울분이 넘칠 때가 번갈아가면서 지나쳐갔다. 적절함의 농도를 계산하듯 잴 수 있는 것은 이미 수십 년을 살아보고 난 뒤에야 겨우 가능해지기 시작했지만 그조차도 아직 걸음마 수준에 못 미친다.


나의 감정이 더해서 나보다 덜한 감정을 가진 이에게 서운함을 느낄 때가 있고, 나의 감정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데 넘치는 감정을 건네오는 이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지나고 보니 적절한 선이 가능했던 건 어쩌면 학창 시절까지만 가능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고 나면 감정은 점점 메말라진다. 넘치던 때를 지나 적절함을 지키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메마른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때론 사회생활은 감정을 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승자처럼 여겨지는 때가 종종 있다. 그리하여 덜 뜨겁고 덜 차갑고 덜 열정적인 사람으로 변모되는 걸까 싶은 것이다.


한바탕 깔깔거리며 지나가는 한 무리의 중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저런 순수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때가 그리워진다. 그렇기에 사회에서 만난 이들이 아닌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만남이 이어질 수 있는 듯하다. 각자의 삶에서의 건조함 따윈 만나자마자 단번에 날릴 수 있는 존재들이어서.


세제를 아끼겠다고 너무 적게 넣으면 오염도가 상당한 빨래들엔 턱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건조함을 더 점잖게 여긴다 할지라도 그렇게 살아가다간 어느덧 나의 마음도 얼룩덜룩해지겠구나 싶다. 넘치는 건 이제 감당하기 어려운 때가 되었더라도 한 번씩은 나의 마음을 제대로 세탁할 필요가 있으니 어떤 방법이 좋을까 생각해 본다.


몇 년 전에는 명상이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많은 이들의 심정이 얼마나 지쳤기에 아주 내려놓기를 택할까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물에 담가놓기만 해도 얼룩이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일까 싶은 것이다.


나처럼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는 어떤 방법이 좋을까. 명상을 하려 해도 시끄럽게 생각이 이리저리 널뛰는 나에겐 아예 환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제일 좋을 듯싶다. 순수하게 무언가를 보고 감탄할 수 있는 무언가, 생각을 멈추고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 오로지 호흡에만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환경을 찾는 것도 좋다. 하지만 조금씩은 더 의식적으로 감정을 실어볼 일이다. 늘 존재해서 감탄할 일이 적은 햇살, 공기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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