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에서 저보다 …를 잘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예능을 틀어놓고 밥을 먹던 중 남편에게 건넨 말이다. 그만큼 자신이 있나 봐,라는 남편의 대답에 나는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을 한 사람의 의도를 몰라서가 아니라, 저 말을 하기까지의 비하인드가 가히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내가 저 빈칸에 채워 넣어서 말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있을까. 있다면 무엇이고, 없다면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순식간에 흘러갔다.
한 가지를 꾸준히 하다 보면 나름의 요령이 생긴다. 요령이 생기면 그것을 더 잘할 수 있게 되고, 잘하다 보면 이것만큼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에 하게 되는 말일 것이다. 그럴 수 있겠지, 이해는 된다. 다만 내가 의문을 가졌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같이 모여 있는 사람과 직접적으로 비교해 본 것이 아닌데, 추측으로만 얘기하는 것일 뿐인데도 저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대체 얼마나 많이 해보았으며 자신의 실력에 대해 객관적으로 비교해 보았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장면 전환은 순식간에 이뤄졌고, 그 비하인드를 알 수는 없다. 검색을 해서 뒷이야기를 찾아볼 수는 있겠지만 아직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다. 다만 그 생각이 불러일으킨 나의 생각에 대해서는 꼬리를 물어보고 싶었다.
살면서 내가 자랑하듯 말했던 것들을 떠올려 본다. 그 순간엔 나름 확신에 차서 말했던 것들인데, 시간이 지난 지금 그 말들을 떠올려 보니 타이핑을 한 글자도 할 수 없을 만큼 낯부끄럽다. 그나마 한 가지가 있다면 누구보다 엄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 정도? 그게 자랑인 건가 싶어 씁쓸한 자조가 인다.
결국 남는 건 내가 좋아하는 것뿐이다. 책 읽는 것, 잠을 좀 줄이고 운동하는 것, 고요한 곳에서의 산책, 좋아하는 그림 등 이것을 나보다 더 좋아한다고 자신할 사람은 없다,라는 말을 할 수는 있겠지만 하게 되진 않는다. 자신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비교를 실제로 하고 난 결과가 아닌 이상 모든 것은 추정치일 뿐인데, 그 안에서 자신감이라고 하는 말은 사실 객기에 가깝지 않나 하는 거부감이 들어서이리라.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것도 내세워 얘기할 수 없다면 어떤 이야기를 내세워 할 수 있을까. 결국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일들은 내세움을 방지하는 차원으로 흘러가는 것인가. 그럼에도 인간의 본능은 무언가를 증명하고 내세우고 싶어 하는데, 그 본능을 꺾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노화인 건가 싶어서 씁쓸함이 더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가운데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꾸준함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꾸준함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좋아함 혹은 성취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고도 당연하다. 내게 있는 것 중 그러한 것들이 있음을 설명할 때 나는 종종 ‘중독’이라는 단어를 붙이곤 한다.
갓 성인이 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약 20년 가까이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것 중 하나는 헌혈이다. 전혈을 늘 하고 싶어 하지만 성별과 컨디션의 문제로 헤모글로빈 수치가 모자라서 성분헌혈도 자주 하는데, 2달 혹은 2주의 주기를 지켜서 하다 보니 연간 채혈량이 다 채워져서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나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 약을 먹어야 하거나 어떤 상황이 될 때마다 내가 가장 걱정하며 찾아보게 되는 것은 헌혈해도 괜찮을까이니, 이 정도면 중독이 맞다 싶다.
한편 아이가 태어나고 난 이후 단 하루도 새벽에 깨지 않는 수면을 취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까지 했던 아침 공복 운동을 3년이 훌쩍 넘게 못 하다가 어느 순간 잠을 좀 줄이더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시작한 지 몇 개월 되었는데, 알람이 울릴 때마다 한숨을 쉬고 조금 더 잘까 고민하지만 결국 눈도 못 뜬 채 일어나서 시작하는 운동의 끝에 느끼는 성취감은 나를 나답게 만들어준다. 그전만큼 매일, 혹은 하루에 여러 번까지는 아니지만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의 운동이라도 꾸준함을 유지하려고 하는 이것은 나의 오래된 중독 습관 중 하나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성취감 자체에 의미를 두고 그것을 이어가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누가 알아줘서가 아닌 나 스스로 만족하게 되는 순간, 어떤 결과가 만들어져서가 아닌 그 순간들이 쌓이는 그 자체, 혹은 그 순간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다. 소위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이 트렌디하게 사용되기 훨씬 전부터 이 보상 회로에 대해 생각하곤 했어서인지 그 결론이 나고도 크게 놀랍진 않았다. 다만 그것들은 살아 있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부분에서 그 가치가 상당하다고 생각된다.
잘하는 사람이 끝까지 가는 것이 아닌, 버티고 남아 있는 사람이 끝까지 가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버티고 남아 있고 싶은 곳이 어딘가.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계속하고 싶은 것, 만족감을 주는 것, 그것들을 끝까지 붙들며 살아보는 삶이 된다면, 그것이 곧 나의 빈칸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