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7년 쉬추킨 컬렉션 속 명작
쉬추킨 컬렉션을 처음 마주하면, 한 가지 사실이 즉각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이 컬렉션에는 오늘날 현대미술의 대가로 불리는 모네, 세잔, 마티스, 피카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유명 작가들의 집합’이라는 사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쉬추킨 컬렉션은 결과적으로 현대미술의 정전(canon)을 구성하는 이름들을 하나의 시야 안에 묶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컬렉션의 진정한 중요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작가들의 ‘완성된 명성’이 아니라, 명성이 아직 형성되기 이전의 시점에 있다. 쉬추킨이 이 작품들을 구입했을 당시, 이들은 아직 미술사적 합의가 이루어진 거장들이 아니었다. 모네의 후기는 “형태가 무너진 회화”로 비판받았고, 세잔은 난해하고 불편한 화가로 외면당했으며, 마티스의 색채는 폭력적이라 평가받았고, 피카소의 초기 입체주의는 이해 불가능한 실험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점에서 쉬추킨의 수집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완성된 명작을 모은 것이 아니라, 각 작가가 가장 논쟁적이고 가장 급진적이던 ‘특정한 시기’의 작품들을 선택했다. 다시 말해, 쉬추킨 컬렉션은 작가들의 커리어를 대표하는 하이라이트가 아니라, 회화가 변화하고 흔들리던 결정적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러시아 출신의 컬렉터로서, 그는 프랑스와 스페인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유럽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했다. 이는 쉬추킨이 자국의 전통이나 민족적 정체성보다, 당시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던 미술의 근본적 변화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음을 보여준다. 그의 시선은 국적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을 향해 있었다.
클로드 모네는 인상주의의 출발점이자, 회화가 더 이상 대상을 정확히 묘사하는 기술이 아니라 시각적 경험 그 자체를 번역하는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작가다. 그는 빛과 시간, 대기의 변화에 따라 동일한 대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집요하게 관찰했고, 이를 연작이라는 형식으로 발전시켰다. 모네의 회화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그렸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였는가였다.
루이비통 재단이 소개한 쉬추킨 컬렉션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쉬추킨 형제가 초기 인상주의의 성공한 모네가 아니라 후기 모네를 집중적으로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1890년대 이후 모네는 점차 대상의 윤곽을 지우고, 빛·색·대기의 진동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로 이동한다. 윤곽선은 해체되고, 형태는 색채 덩어리로 분해되며, 특히 수련 연작에서는 수평선마저 사라져 화면이 하나의 색면 장(field)으로 전환된다.
당대 비평가들은 이러한 회화를 “미완성”, “형태를 포기한 그림”이라 비판했다. 그러나 쉬추킨은 이 후기 모네에서 회화가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 즉 이후 추상 회화로 이어질 감각적 전환의 가능성을 읽었다. 쉬추킨 컬렉션에서 모네는 인상주의의 종착점이 아니라, 현대회화가 출발한 감각의 원점으로 기능한다.
La Cathédrale de Rouen 연작 중 쉬추킨 컬렉션을 대표하는 모네의 연작 중 하나는 〈루앙 대성당〉 연작이다. 이 연작에서 모네는 건축물 자체를 그리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 동일한 대상을 아침, 정오, 저녁, 안개, 햇빛 아래에서 반복적으로 그리며, 빛과 대기의 변화가 형태를 어떻게 해체하는지를 탐구한다. 이 작품은 회화가 더 이상 ‘대상의 본질’을 묘사하지 않고, 지각의 조건을 기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다. 쉬추킨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회화가 재현에서 경험으로 이동하는 전환점을 명확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Les Peupliers 연작 중 포플러 연작은 자연 풍경을 다루지만, 전통적인 풍경화와는 거리가 멀다. 강가에 늘어선 포플러 나무들은 안정적인 구도를 이루지 않고, 수직 리듬과 색채의 반복으로 화면을 채운다. 이 연작에서 모네는 자연을 ‘보이는 풍경’이 아니라, 리듬과 색의 구조물로 다룬다. 쉬추킨 컬렉션에서 이 작품은, 회화가 점차 구조와 리듬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다.
Nymphéas 연작 중 쉬추킨 컬렉션과 루이비통 재단 전시에서 가장 현대적으로 읽히는 모네는 단연 수련 연작이다. 이 시기부터 모네의 화면에서는 수평선이 사라지고, 하늘과 땅의 구분도 흐려진다. 물 위에 떠 있는 수련과 반사된 하늘은 하나의 화면 안에서 뒤섞이며, 회화는 점차 경험적 색면의 장(field)으로 전환된다. 쉬추킨은 이 작품들에서 회화가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계, 즉 이후 추상 회화로 이어질 감각적 가능성을 포착했다. 쉬추킨이 선택한 모네 작품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이 작품들은 ‘아름다운 인상주의 풍경’이 아니라, 회화가 무엇을 다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근본부터 흔드는 작업이라는 점이다. 루앙 대성당은 형태의 해체를, 포플러 연작은 리듬과 구조로서의 자연을, 수련 연작은 대상 이후의 회화를 보여준다.
폴 세잔은 생전 내내 난해하고 불편한 화가로 인식되었다. 이는 그의 화풍이 특이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대 회화가 기대하던 거의 모든 기준을 동시에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의 정물화에서 테이블은 기울어 있고, 접시는 동시에 여러 시점에서 보인다. 명암이나 선 대신 색의 면적과 밀도로 형태를 구축한 그의 회화는 “서투른 그림”, “미완성의 회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쉬추킨은 이 불편함을 회화의 결함이 아니라 결정적 전환의 징후로 받아들였다. 세잔의 작업은 자연을 감각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사고의 대상으로 재구성하는 회화였다. 그는 인상주의 이후 회화가 감각을 넘어 구조로 이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쉬추킨 컬렉션에서 세잔은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인상주의와 입체주의를 연결하는 구조적 교량이며, 피카소와 마티스가 출발할 수 있었던 사고의 토대를 제공한 작가였다. 쉬추킨이 세잔을 반복적으로, 연속적으로 수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쉬추킨이 수집한 세잔의 정물과 풍경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테이블은 기울어 있고, 접시는 동시에 여러 각도에서 보이며, 병과 과일은 서로 다른 시점에 놓여 있는 듯 보인다. 이는 기술적 미숙이 아니라, 단일 시점의 원근법을 의도적으로 거부한 결과다. 당대 관객에게 이러한 화면은 “잘못 그린 그림”, “미완성의 회화”로 보였다. 그러나 쉬추킨은 바로 이 불안정성에서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었다. 세잔은 대상을 ‘보이는 대로’ 재현하지 않고,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을 화면에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쉬추킨 컬렉션 속 세잔 작품들의 또 다른 핵심적 특징은, 선이나 명암 대신 색의 면적과 밀도로 형태를 구축한다는 점이다. 세잔에게 색은 장식이 아니라 구조였다. 붓질 하나하나는 형태를 쌓는 단위였고, 화면은 점진적으로 조직된다. 이로 인해 세잔의 회화는 즉각적으로 읽히지 않는다. 관객은 한눈에 대상을 파악하기보다, 시선을 이동시키며 화면을 ‘구성해 나가야’ 한다. 쉬추킨은 이 지점에서 세잔이 회화를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사고의 장으로 전환시키고 있음을 인식했다.
쉬추킨이 세잔을 수집한 방식 역시 중요하다. 그는 단일한 대표작 하나에 집중하지 않았다. 정물, 풍경, 인물, 특히 〈생트빅투아르 산〉 연작처럼 반복적으로 변주된 주제를 통해, 세잔의 사고가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연속적으로 수집했다. 이는 쉬추킨이 이미 완성된 결과를 소비한 것이 아니라, 회화가 변화해가는 과정 자체를 소장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세잔은 쉬추킨 컬렉션의 중심축이 된다.
쉬추킨 컬렉션에서 세잔은 단순히 인상주의 이후의 한 작가가 아니다. 그는 인상주의와 입체주의 사이를 잇는 구조적 교량이다. 세잔이 자연을 원통, 구, 원뿔로 환원하려 했던 시도는 이후 Pablo Picasso와 Georges Braque의 입체주의로 직접 연결된다. 쉬추킨은 이 연결 가능성을 누구보다 빠르게 인식했다. 그래서 그의 컬렉션에서 세잔은 취향의 선택이 아니라, 미술사의 방향을 예견한 판단으로 기능한다. 그는 안정적 미학이 아닌 의도적 불안정성이 강조된 회화, 재현이 아닌 구조와 사고 중심의 회화, 그리고 연속적 실험의 축적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선택 덕분에 쉬추킨 컬렉션에서 세잔은 ‘난해한 화가’가 아니라, 현대미술의 사고 방식을 가능하게 한 결정적 인물로 자리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루이비통 재단은 쉬추킨 컬렉션을 통해 말한다. 현대미술은 감각으로 시작되었지만, 구조로 완성되었다.
쉬추킨과 마티스의 관계는 단순한 수집 관계를 넘어선다. 쉬추킨은 마티스의 작품을 소비한 컬렉터가 아니라, 마티스의 실험을 가능하게 만든 동반자였다. 그는 1906년 이후 논란의 중심에 있던 야수파 회화를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이는 마티스에게 경제적 안정뿐 아니라 비판을 견디며 실험을 지속할 수 있는 심리적 지지를 제공했다. 이 관계의 정점이 쉬추킨의 주문으로 제작된 〈춤〉과 〈음악〉이다. 이 작품들은 회화를 벽에 걸린 이미지가 아니라, 건축적 공간 전체를 지배하는 감각적 환경으로 확장시킨 작업이었다. 마티스는 이 경험을 통해 색채와 형태가 인간의 신체 감각과 직접적으로 공명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마티스가 쉬추킨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이는 단순한 감사의 표현이 아니라, 자신의 예술을 가장 깊이 이해한 인물에 대한 존경의 표식이었다. 쉬추킨 컬렉션에서 마티스는 색채의 해방을 넘어, 회화가 삶의 리듬을 조직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구현한 작가였다.
쉬추킨이 수집한 마티스 작품들에서 색은 더 이상 대상을 설명하는 수단이 아니다. 색은 형태를 대신하고,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자율적 언어가 된다. 마티스는 자연의 색을 충실히 따르지 않았고, 색의 대비와 리듬을 통해 화면 전체의 균형을 구성했다. 당대 비평가들에게 이러한 색채는 “폭력적”, “미성숙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쉬추킨은 이 과감한 색채에서 회화가 이성 이전에 감각에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는 마티스를 통해 회화가 관람자의 신체 반응을 직접 자극하는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인식했다.
쉬추킨 컬렉션 속 마티스의 작품들은 형태가 극도로 단순화되어 있다. 인물은 해부학적으로 정확하지 않고, 공간은 깊이를 상실하며, 화면은 평면화된다. 이는 기술적 미숙이 아니라,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해 리듬과 균형만을 남기려는 의도적 선택이었다. 마티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그렸는가’가 아니라, 형태와 색이 만들어내는 전체적 리듬이었다. 쉬추킨은 이 리듬이 회화를 장식이 아닌, 삶의 감각을 조직하는 구조로 확장시킨다고 보았다.
쉬추킨 컬렉션에서 마티스의 위치를 결정적으로 만드는 작품은, 쉬추킨의 주문으로 제작된 〈춤〉(1909–10)과 〈음악〉이다. 이 작품들은 캔버스에 걸린 회화가 아니라, 건축적 공간 전체를 전제로 기획된 작업이었다.
이 두 작품에서 색과 형태는 개별 이미지가 아니라, 관람자의 시선과 신체 움직임을 지배하는 환경으로 작동한다. 이는 회화가 벽에 걸린 대상에서, 공간적·감각적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쉬추킨은 이 작업들을 통해 마티스가 단순한 색채 실험가가 아니라, 회화의 개념 자체를 확장하는 작가임을 확신하게 된다.
쉬추킨과 마티스의 관계는 단순한 후원 관계를 넘어선다. 쉬추킨은 마티스의 작품을 반복적으로 구매했고, 논란이 극심하던 시기에도 그의 작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이는 마티스에게 경제적 안정뿐 아니라, 비판을 감내하며 실험을 지속할 수 있는 심리적 기반을 제공했다. 마티스가 쉬추킨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사실은 이 관계의 깊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감사의 표시를 넘어, 자신의 예술을 가장 깊이 이해한 인물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었다.
피카소의 초기 작업은 하나의 스타일로 정의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초기 경력은 끊임없는 변신의 연속이었다. 청색 시대와 장밋빛 시대에서 드러나는 강렬한 정서적 서사, 아프리카 조각과 원시미술의 영향, 그리고 초기 입체주의로 이어지는 형태 분해는 회화가 세계를 재현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쉬추킨 컬렉션에서 피카소는 ‘이미 위대한 거장’이 아니다. 그는 회화의 언어가 급격히 붕괴되고 재구성되던 가장 위험한 순간의 작가로 등장한다. 쉬추킨이 선택한 피카소 작품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그것들은 미적으로 안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형태·시점·인식이 동시에 흔들리던 실험의 정점이었다. 이는 쉬추킨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과 위험을 수집한 컬렉터였음을 가장 분명하게 증명한다.
쉬추킨 컬렉션의 핵심은 피카소의 입체주의 초기·분석적 단계에 있다. 이 시기 작품들에서 대상은 하나의 시점으로 보이지 않는다. 얼굴은 측면과 정면이 동시에 나타나고, 병과 기타, 인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해된 시점들이 중첩된 상태로 제시된다. 당대 관객에게 이러한 회화는 “이해 불가능한 그림”, “공격적인 형식주의”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쉬추킨은 이 파괴적 형식에서 회화가 세계를 재현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고 있음을 읽었다. 그는 피카소를 통해, 회화가 더 이상 ‘보이는 현실’을 닮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쉬추킨이 주목한 또 하나의 피카소는 아프리카 조각과 원시미술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흡수하던 시기다. 이 시기 피카소의 인물들은 해부학적 정확성을 거부하고, 각진 면과 단순화된 형태로 환원된다. 이는 장식적 차용이 아니라, 서구 회화가 전제로 삼아온 미적 규범—자연주의, 이상적 비례, 조화—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었다. 쉬추킨은 이 급진성에서 피카소가 단순한 양식의 파괴자가 아니라, 회화의 기원을 다시 묻는 작가임을 인식했다.
피카소의 초기 작업에는 청색 시대와 장밋빛 시대처럼 강한 감정적 서사가 존재한다. 그러나 쉬추킨 컬렉션이 집중한 지점은, 감정의 표현을 넘어 인식의 구조 자체가 문제화되는 단계였다. 피카소의 화면에서 인간은 더 이상 심리적 주체가 아니라, 분해되고 재조립되는 인식의 대상이 된다. 이 변화는 회화의 기능을 감정 전달에서 사고 실험의 장으로 이동시켰다. 쉬추킨은 이 지점에서 피카소가 세잔 이후 회화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쉬추킨이 피카소를 수집한 방식 역시 중요하다. 그는 피카소의 가장 논란이 많던 시기의 작품들을 선택했고, 대중적 인정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회화의 미래에 대한 판단이었다. 쉬추킨 컬렉션 속 피카소 작품들은 완성된 양식의 정점이 아니라, 변화가 발생하는 순간 그 자체를 보여준다. 이 점에서 피카소는 쉬추킨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과 위험을 수집한 컬렉터였음을 가장 선명하게 증명하는 작가다.
쉬추킨 컬렉션은 현대미술의 기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모네는 대상이 사라진 이후의 시각을, 세잔은 회화의 구조적 사고를, 마티스는 색채와 감각의 해방을, 피카소는 형태와 인식의 해체를 대표한다. 쉬추킨은 이 네 개의 전환점을 동시에, 그리고 연속적으로 수집한 인물들이었다. 바로 이 점이 루이비통 재단이 쉬추킨 컬렉션을 현대미술의 기원으로 제시하는 이유다. 이 컬렉션은 취향의 기록이 아니라, 미술사의 방향을 앞당긴 판단의 연대기이며, 오늘날의 컬렉터와 예술가 모두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현대미술은 예술가만으로 탄생하지 않았다. 그것을 알아본 눈과, 위험을 감수한 선택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